윤석열씨가 지난 19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내란 우두머리 혐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 사건 4차 공판을 마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피의자는 피해자 윤석열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어 피해자 윤석열의 명예를 훼손하였다.'
2023년 9월14일, 이렇게 적힌 영장을 든 검찰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부산저축은행 수사 무마 의혹을 보도한 혐의로 한상진, 봉지욱 <뉴스타파> 기자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두 사람 모두 대선 당시 윤석열 대통령 후보가 검사 시절에 담당한 부산저축은행 수사 무마 의혹을 보도했다.
<뉴스타파>는 대선 기간인 2022년 3월6일 신학림(전 뉴스타파 전문위원)-김만배 대화 녹음파일을 공개한다. 김만배 측이 과거 윤석열 검사를 통해 부산저축은행 수사를 무마한 것으로 추정되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이 사건은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가 승리하면서 선거가 치열한 시기에 벌어졌던 언론의 후보 검증으로 끝나는 듯했다.
지난 1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검찰 로고가 보이고 있다. 이날 김건희씨는 공천 개입 의혹과 관련 검찰의 소환 조사에 불응했다. (사진=뉴시스)
1년 3개월 후, 검찰이 잊힌 사건을 끄집어냈다. 이른바 '캐비닛 수사'의 출현이었다. 2023년 9월1일, 서울중앙지검이 신학림 전 위원 자택을 압수수색하며 수사는 시작됐다. 처음에는 신 전 위원이 대장동 사건의 주역인 김만배씨에게서 억대 금품을 받고 허위 인터뷰를 해줬다는 '청탁금지법 위반 및 배임수재 사건'이 검찰 프레임으로 보였다.
검찰이 움직인 지 사흘 뒤인 4일 이동관 당시 방송통신위원장이 이 보도를 가짜뉴스에 넘어선 중대범죄인 국기문란 행위라고 주장한다. 사흘 뒤인 7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최고위원회에서 "이 사건은 국민주권 찬탈 시도이자, 민주공화국을 파괴하는 쿠데타 기도로서 사형에 처해야 할 만큼의 국가 반역죄"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뉴스타파 보도를 인용 보도했던 MBC를 비롯해 KBS, YTN 역시 대선 공작에 놀아났음에도 여전히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고 했다. 김 대표의 이날 발언 중 '사형에 처해야 할 국가반역죄'라는 극언은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 몇 개월 후 봉지욱 기자는 검찰에 출두하면서 "나를 사형에 처하라"고 응수했다.
김기현 대표의 발언이 있던 7일 서울중앙지검은 특수수사 부서인 반부패3부, 명예훼손 전담인 형사1부, 선거 전담 공공수사부가 포함된 10여명 규모의 '대선 개입 여론조작 사건 특별수사팀'을 구성한다. 6일 후인 13일, 국민의힘은 KBS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진행자인 주진우·최경영 기자까지 형사 고발했다. 이어 검찰 특별수사팀이 다음날인 14일 한상진, 봉지욱 기자를 압수수색하면서 본격적인 '사형에 처할 죄' 수사의 막이 올랐다.
한국기자협회,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기자연합회 등 언론단체들은 '선거보도 한 건으로 검찰이 언론사들과 기자들의 압수수색을 군사작전 하듯 나서는 법치국가가 전 세계 어디에 있는가'라며 윤석열정부가 언론 장악을 위해 미쳐 날뛰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2023년 가을에 벌어졌던 주요 압수수색의 행렬은 다음과 같다.
-9월14일 <뉴스타파> 한상진, 봉지욱 기자 압수수색
-10월11일 허재현 <리포액트> 기자 압수수색
-10월26일 <경향신문> 기자 2명 압수수색, <뉴스버스> 기자 1명 압수수색
-12월6일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 압수수색
-12월26일 이진동 <뉴스버스> 대표 압수수색
주로 보수 신문은 서초동 검찰청에 흘러나오는 '검찰 관계자'발 익명 취재원을 출처로, 이들 언론사와 민주당이 공모해 고의로 거짓 기사를 쓴 혐의가 드러난 것처럼 보도했다. 일부 보수 언론의 힘을 받은 검찰은 뭔가, 굉장한 결과물을 낼 듯, 시끄럽게 움직였다. 봉지욱 기자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청탁금지법 위반 및 배임수재 사건에서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으로, 다시 대선 개입 여론조작 사건으로 명칭이 바뀌었습니다. 갈수록 무시무시해진 거지요. 검찰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보수 신문과 방송이 앞장서서 대선 개입 여론조작 사건으로 규정 지은 점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주변의 몇몇 기자들에게 사건 명칭이라고 바꿔달라고 했지만 수개월 동안 수정되지 않았습니다."
윤석열씨와 김건희씨(오른쪽)가 지난 11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를 나서며 지지자들에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008년 MBC <피디수첩> 광우병 보도 수사 때도 검찰은 특별수사팀을 꾸려 언론인을 명예훼손 등으로 기소했지만,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당시 농림부 장관 등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로 3년 4개월 동안 진행된 재판 과정에서 언론의 명예훼손 죄 한계와 범위가 확립됐다.
당시 대법원은 "언론보도의 특성에 비춰 내용이 객관적으로 최종 확인되지 않았더라도 공직 수행과 관련한 중요한 사항에 관해 의혹을 품을 만한 이유가 있고, 공익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엔 바로 공직자에 대한 명예훼손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언론보도로 인한 명예훼손이 공공적·사회적 의미를 가진 사안이라면 평가를 달리해야 하고, 언론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완화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 또는 국가기관은 형법상 명예훼손 피해자가 될 수 없으므로 언론보도로 인하여 그 정책 결정이나 업무수행에 관여한 공직자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다소 저하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보도로 인하여 곧바로 공직자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이 된다고 할 수 없다"고도 했다.
다른 국가기관도 아니고, 공직 1호인 대통령의 명예훼손 사건은 어땠을까. 이와 관련해 언론인이 재판에 회부된 사건으로 가토 다쓰야 전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사례가 있었다. 2014년 8월 '박근혜 대통령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누구와 만났을까'라는 기사에서 박 전 대통령의 사생활 의혹을 제기했다가 검찰 수사를 받고 불구속 기소됐다. 하지만 2015년 12월 1심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고, 검찰이 항소를 포기해 무죄가 확정됐다.
2023년 가을에 불었던 '사형에 처할 죄' 태풍은 이후 어떻게 전개됐을까. 신학림 위원, 김만배씨를 제외하고 구속 기소된 언론인은 한 명도 없었다. 일부 언론인만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 과정에서 검찰의 죄목 적용과 수사가 무리였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판결이 나오는 날, 이른바 '대선 개입 여론조작 사건 특별수사팀'의 입장을 꼭 들어보고 싶다.
2025년 2월17일이었다. 명태균 게이트를 수사하는 창원지검은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명씨로부터 지난 대선 여론조사 결과를 무상으로 받은 대가로 여당 공천에 개입한 의혹 등에 대한 수사를 중앙지검으로 넘긴다고 밝혔다. 윤석열정부가 비판 언론에 띄우려 했던 대선 개입 여론조작 혐의를 스스로 안게 됐다. 그래서 역사는 아이러니하다.
이규연 탐사저널리스트(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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