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이재희 기자] 금융감독 규정 제정권을 금융위원회에서 금융감독원으로 이전하는 금융감독체계 개편을 놓고 기대와 우려가 엇갈리고 있습니다. 그간 대형 금융사고가 터질 때마다 금융위가 감독 규정을 제대로 개선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반복돼 왔는데요. 금융감독기구 내에 감독규정 제정 관련 의사결정기구와 감독 집행 기구를 일원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일각에서는 행정적 권한까지 쥘 경우 감독당국이 무소불위의 감독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금융위 늑장대응 반복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체계 개편의 핵심 사항 중 하나는 금융감독 규정 제정권 이전입니다. 금융정책과 감독 기능을 분리하고 감독기구 권한을 키우겠다는 것이 감독체계 개편의 취지입니다. 감독권 행사를 어느 기관이 하느냐가 아니라 그 근거가 되는 감독규정을 정비하는 권한을 누구에게 넘기느냐는 것이 관건입니다.
이재명정부가 정부조직 개편을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금융위의 국내 금융정책 기능을 기획재정부로 이관해 금융 정책 담당 기관을 일원화하고, 금융위의 감독정책 기능은 금감원의 감독집행 기능과 합해 금융감독위원회(금감위)를 신설하는 시나리오가 거론됩니다. 과거 금융위 설립 전의 금감위 모델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금감위원장이 금감원장을 겸임하던 과거에는 실질적인 감독 규정 제정권이 금감원에 있었습니다. 2008년 금융위 출범 후에는 금감원이 상위기관인 금융위에 의견서를 제출하고, 의결기관인 금융위가 규정 제정권을 행사해왔습니다.
지난 10여년간 벌어진 대형 금융사고에서도 금융위의 '실기'에 대한 비판이 반복됐습니다. 지난 2013년 동양사태의 경우 금융위의 실기가 가져온 부작용을 직접적인 보여준 사례로 꼽힙니다.
금감원은 동양사태가 벌어지기 1년여 전인 2012년 7월 이미 시장의 위험 신호를 감지하고, 동양증권의 기업어음(CP) 남발 등에 대응하기 위한 관련 규정 개정을 건의했습니다. 그런데 규정 개정권을 쥐고 있던 금융위가 늑장 처리하면서 실제 개정안 시행까지 1년 이상 소요됐습니다. 그 사이 문제가 있는 상품들을 계속 판매하면서 피해가 커졌습니다. 금융위는 뒤늦게 관련 금융투자업규정 등을 개정하고 기업어음 판매 제한 강화 등의 조치를 취했지만, 이미 피해가 발생한 뒤였습니다.
대규모 금융사고가 반복된 원인으로 금융위원회의 늑장 대응이 지목되고 있다. 금융감독 제정권과 집행권을 일원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정부서울청사 내 금융위원회 모습. (사진=뉴시스)
고동원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금융감독이 감독 규정 개정을 통해서 집행되는데, 이상 징후가 감지된다면 곧바로 감독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며 "감독권 행사는 금감원이 하고 규정 제정권은 금융위가 갖다보니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고 교수는 문재인정부 때 금감원에서 '금융감독·검사 제재 프로세스 혁신TF' 위원장을 맡은 바 있습니다.
'무소불위' 감독권 행사 우려도
지난 2019년부터 대규모 환매중단이 벌어진 일련의 '사모펀드 사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모펀드 사태의 근본 원인으로는 금융당국의 섣부른 규제완화 정책이 크게 지목되는데요. 2015년 금융위는 자본시장 활성화를 명분으로 사모펀드 규제를 대폭 풀어준 바 있습니다. 규제 완화에 걸맞는 감독 규정 정비가 부족했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사모펀드 사태가 터진 후에야 사모펀드의 공시·운용 투명성 제고, 부실 운용사 퇴출 등의 규정을 마련했습니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사모펀드 뿐만 아니라 ELS(주가연계증권) 등 공모펀드에서도 감독 규정의 신속한 정비가 이뤄지지 않은 부작용이 이어졌다"며 "감독 정책과 실행 주체가 분리된 비효율적 구조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감독 현장의 목소리가 실질적 권한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일각에서는 금융감독기구 내에 제정권과 집행권을 부여할 경우 금융사들의 수검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습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과거처럼 금감원이 금감위와 함께 행정적 권한(제정권)까지 가진다면 막강한 권한을 쥐게 된다"며 "자의적으로 행사할 수 없도록 견제 장치를 정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만 금감위 같은 금융감독기구 내부에 최고 의사결정 기구와 감독권 행사권을 두고 독립성과 자율성을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반박도 나옵니다. 전성인 전 홍익대 교수는 "한국은행 내 금융통화위원회가 통화 정책을 의결하고 한국은행이 집행하는 것처럼 금융감독기구를 일원화하는 것이 생소한 모델이 아니다"라며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참고할 수 있도록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외부 평가위원회를 둘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금융감독기구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강화하기 위한 금융감독체계 개편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금융감독 규정 제정권을 누구에게 넘길지가 핵심 중 하나이다.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을 시민이 지나가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재희 기자 nowhe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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