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3일 경기도 연천군 25사단 비룡전망대를 방문해 망원경으로 북측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새 정부가 출범했습니다. 국방 분야도 다양한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첫째, 계엄 내란 사태를 통해 드러난 군의 취약성을 극복하고 군인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재확립하는 과제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둘째, 인구절벽과 전장 환경 변화를 고려해 전력 구조를 재설계해야 합니다. 셋째, 2기 트럼프 행정부 이후 변화하는 지정학 이슈에 대응해야 합니다.
첫 번째 과제를 살펴보겠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군사 쿠데타는 이제 일어날 수 없다고 다들 생각했죠. 윤석열 전 대통령이 헌정 파괴를 꾀했고, 고위 장교들이 동조했습니다. 일부 실무 군인들이 소극적으로 저항해 상황 악화를 막았죠. 충격적이고 혼란스러웠습니다.
특정한 상관이 아니라 헌법과 국민한테 충성한다는 정체성과 자부심이 우리 군대에 부족했음을 필자는 계엄 내란 와중에 느꼈습니다. 과거 시대와 비교해 군인들의 직무 자존감도 낮아졌습니다. 필자만의 생각이 아닐 겁니다.
돌이켜보면 여러 정권에서 국방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군사 전략과 부대 구조, 무기체계 등을 정비했죠. 하지만 군이 어떠한 핵심 가치를 추구할 건가, 강한 군대를 만들기 위해 어떠한 조직 문화를 확립할 것인가는 거의 손대지 않았습니다. 광복 뒤 현대 국군을 조직할 때 옛 일본 군국주의 문화가, 군사정권 시절에는 정치 군인 문화가 스며들었죠. 그 잔재를 우리 군대는 도려내지 않았습니다. 민주화 이후에도 민주주의 가치를 군에 접목하기 위해 체계적으로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2023년 12월 국방부가 발간한 정신 전력 교재에 '독도 영유권 분쟁'을 인정하는 내용이 있어 말썽을 빚었는데요. 이 대목 말고도 책자 전체를 보면 일부 군인들이 여전히 과거 시대의 '정신세계'에 머물러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지난 2021년 10월13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의 의사당 앞에서 군인들이 독일군의 아프가니스탄 임무 종료를 기념하는 성대한 분열 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외국에선 국방의 핵심 가치와 조직 문화를 어떻게 다뤘을까요?
2차 세계대전 패전 뒤 서독은 '독일 연방군'을 새로 조직했습니다. 그때 서독은 히틀러 시대 '독일 국방군'이 나치 군국주의 도구가 된 점을 성찰했습니다. 그 결과 군대가 사회와 유리된 별도의 섬 같은 존재가 되면 안 된다고 진단했습니다. '제복 입은 시민'이라는 유명한 개념을 이때 도출했는데요. 군인이 비록 제복을 입었지만, 일반 시민과 똑같이 민주주의 사회의 책임 있는 인격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개념을 토대로 독일 연방군은 군인들에게 헌법과 민주주의 가치를 꾸준히 교육했습니다. 조직 문화 차원에선 일방적 권위주의 리더십이 아니라 토론과 비판을 중시하는 민주주의 기풍을 장려했습니다.
군대는 상명하복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흔히 생각합니다. 독일 연방군처럼 한다면 오합지졸이 되지 않을까요.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에 파견된 독일 연방군은 민주적인 조직 문화를 기반으로 강한 전투력과 높은 윤리의식을 보여줬습니다. 같은 전선에서 영국군은 잦은 일탈 행위로 말썽을 빚었죠.
동유럽 나라들은 사회주의가 무너진 뒤 군대를 재조직했습니다. 이때 독일 연방군을 모범으로 삼았죠. 독일 연방군은 오늘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안에서도 군대 문화 모범 사례가 되고 있습니다.
독일은 하루아침에 군대 문화를 개혁하지 않았습니다. 나토방위대학 총장 볼프 폰 바우디신 등이 개념을 개발한 이래 몇십 년에 걸쳐 방법을 다듬고 이행 상황을 모니터했습니다. 독일 연방군은 이를 위해 '내적 지휘 센터'라는 기구를 두고 있습니다.
1945년 맥아더 점령군 사령부는 일본제국 군대를 해체했습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중국이 공산화됐습니다. 맥아더 사령부는 냉전 수요에 맞춰 자위대라는 무장 조직을 서둘러 재건했죠. 옛 일본군 간부들이 자위대에 대거 합류했습니다. 독일 연방군은 히틀러 시대 '독일 국방군'과 단절한다고 명확히 선언했는데, 일본 자위대는 그런 작업도 하지 않았습니다.
요즘 일본 자위대 간부들은 태평양전쟁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간간이 집단 참배합니다. 일본 해상자위대는 일본제국 해군을 상징하는 욱일기를 함정에 달고 다닙니다. 주변국에 부담이 되고 있죠.
미군은 베트남 전쟁에서 실패했습니다. 무기체계나 전술 때문이 아니라 진실 은폐와 마약, 항명, 상관 살해와 같은 '도덕적 몰락'이 심각해서였죠. 미군은 조직 문화 개혁 차원에서 내부 비판과 토론을 장려하는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미 국방부 저작물과 교범을 보면 "군대 안에서의 비판은 반역이 아니라 의무이다" "군인은 충성이라는 이름으로 진실을 감추면 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미 육군 교리는 "헌법을 위반하는 자에게 충성하면서 헌법에 충성할 수는 없다"며 상관이 아니라 헌법에 대한 충성을 강조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4일 서울 용산구 합동참모본부(합참)을 방문해 김명수 합참의장과 김선호 국방부 장관 직무대행의 안내를 받고 있다. (국방부 제공, 뉴시스 사진)
민주당은 대통령 선거 때 국방 문민화를 공약했습니다. 민간인 출신 국방부 장관 인선, 국방부와 방위사업청 문민화 확대, 부당명령 거부권 법제화, 군 교육기관 통합, 민주주의와 헌법 수호 장병 교육 강화, 군 정보기관 개혁, 참모총장 인사청문회 도입 등 많은 실천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민간 전문가들도 많은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국방 핵심 가치 재정립, 군 정신 전력 교육 혁신, 군대 문화와 인사 시스템 혁신 등을 제시했습니다.
이 가운데 항일 독립전쟁 정통성을 명확히 계승하자는 아이디어도 중요합니다. 국군조직법 제1조에 '국군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독립군, 광복군을 계승하는 국민의 군대'임을 명시하자는 것인데요. 부승찬 의원 등 국회의원 14명이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죠. 이대로 하면 국군의 정신적 자산이 풍부해질 겁니다.
많은 과제를 걸러내고 힘 있게 추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칭 '국민의 군대 강화 위원회'를 국방부 소속 민관군 합동 기구로 만들면 좋겠습니다. 이 기구가 첫째, 제안된 과제별로 추진 여부와 추진 주체, 추진 일정을 정리하고 둘째, 과제에 따라 공론화를 진행하며 셋째, 과제 이행을 꾸준히 모니터할 수 있겠죠.

■필자 소개/박창식/언론인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광운대에서 언론학 석사와 박사를 했다. 한겨레신문 정치부장 논설위원을 지내고 국방부 국방홍보원장으로 일했다. 뉴스토마토 객원논설위원과 뉴스토마토 K국방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국방 생태계에서 소통을 증진하는 방법에 관심을 두고 있다. <국방 커뮤니케이션> <언론의 언어 왜곡>과 같은 책을 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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