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현철 기자] 국민의힘이 당내 성 비위 의혹에 대해서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피해자가 윤리위원회에 정식 제소한 지 28일 만에 겨우 조사가 시작된 겁니다. <뉴스토마토>가 이 사건을 처음 보도한 때로부터는 32일 만입니다.
15일 <뉴스토마토> 취재를 종합하면,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는 지난 13일 회의를 열고 국민의힘 당직자인 A씨에 대한 성 비위 의혹 사건을 정식 안건으로 상정, 조사 개시를 의결했습니다.
윤리위는 이날 회의에서 B씨(국민의힘 소속 인천 남동구의회 의원)가 지난 9월15일 제출한 제소장을 검토한 뒤, 윤리 규칙 제4조(품위 유지) 및 제21조(성희롱 등 금지) 위반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윤리위는 오는 11월3일 오전 10시30분 A씨에게 15분간 소명 기회를 주고, 이어 10시45분부터 피해자 B씨에게 15분간 소명 기회를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여상원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 위원장이 지난9월11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21대 '대선후보 교체 시도'로 회부된 권영세·이양수 의원을 징계 하지 않기로 한 윤리위 결정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리위가 조사를 결정한 성비위 의혹은 2023년 2월17일 인천 남동구에서 발생한 사건입니다.
피해를 호소하는 B씨의 주장을 정리하면, 사건은 당시 인천시청 특보였던 A씨의 호출로 시작됐습니다. 2023년 2월17일 저녁 A씨는 인천 남동구의원들을 불러 구월동의 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저녁 자리엔 남동구의회 국민의힘 소속 의원 7명 중 6명이 참석했습니다. A씨의 부하 직원인 팀장 1명도 함께했습니다.
식사 후 A씨는 "편하게 맥주 한잔 했으면 좋겠다"며 2차를 제안했고, 일행은 구월동 아시아드선수촌 인근 라이브 주점으로 이동했습니다. 2차 자리엔 A씨, 인천시청 팀장, B씨를 포함한 여성 구의원 3명, 남성 구의원 1명, 민간인 등 총 9명이 모였습니다.
당시 A씨는 8회 지방선거 때 유정복 후보의 선거캠프에서 활동했으며, 유 후보가 인천시장에 당선되자 인천시청 특보에 임명됐습니다. 때문에 지역 정가에선 22대 총선을 앞두고 A씨가 당협위원장 자리에 오를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습니다. 초선 구의원이었던 B씨는 이런 지위를 가진 A씨의 제안을 거절하기 어려워 자리에 참석했다고 합니다.
B씨는 "당시 구의원으로 당선된 지 6개월밖에 안 된 막내였다"며 "(2차에선) 선배 의원들이 술을 따르라고 하고, 분위기를 띄우라며 노래를 시켰다"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B씨는 "노래를 부르는 중 A씨가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려는 불필요한 신체 접촉이 있었다"며 "당시 무대 아래에 있던 여성 구의원 2명이 이를 목격했고, 나와 눈도 마주쳤다"고 구체적으로 이야기했습니다.
B씨는 또 "옆에 앉아 있던 여성 구의원이 'A는 당협위원장 될 사람이니까 잘해'라고 했다"며 "당시 그가 당협위원장이 될 사람이 아니었다면 저녁과 2차에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A씨가 부른 저녁 장소와 2차가 위계에 의한 것이었다는 걸 강조한 겁니다.
반면 A씨는 B씨의 모든 주장을 전면 부인했으며 "불미스러운 일 없었다"고 반박했습니다.
애초 국민의힘은 22대 총선 즈음인 지난해 3월 당 클린공천지원단에 같은 내용이 제보됐을 땐 "피해자가 명확하지 않다"며 조사도 없이 사건을 종결했습니다. 클린공천지원단이 제보를 묵살한 이후, B씨는 1년 반 동안 조직적인 괴롭힘을 당해왔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2024년 4월 총선 당시 상대 후보 측이 성 비위 의혹을 공개하자, A씨는 즉각 제보자 색출에 나섰습니다. A씨는 B씨와 동석했던 구의원 C씨를 불러 3자 대면을 하면서 "그날 자리엔 9명이었는데, 그 9명 중에 누가 (제보를) 흘린 거죠?"라며 "이건 내부에서 100% 나간 것"이라고 했습니다. B씨는 이때부터 클린공천지원단에 제보한 사람으로 의심받으며 남동구의회에서 본격적인 따돌림을 당하기 시작했다고 밝혔습니다.
B씨는 "총선 이후 당협 단체 채팅방에서 쫓겨났고, 지역구 행사에서도 지속적으로 배제됐다"며 "당을 위해 침묵했는데 오히려 내부 총질을 한 사람으로 낙인찍혔다"라고 토로했습니다.
조사는 시작됐지만, B씨를 둘러싼 여러 정황들은 공정한 진상 규명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B씨는 국민의힘의 약속을 믿고 9월15일 이 사건을 당 윤리위에 공식적으로 제소했습니다. 그런데 B씨가 윤리위에 사건을 제소한 바로 그날, 국민의힘은 A씨를 중앙당 당직자로 임명했습니다.
이로 인해 A씨의 당협 내 영향력은 더욱 강화됐습니다. 당협위원장이 지방선거 출마자들의 공천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건이 일어났던 그날 2차 라이브 주점에서 상황을 목격한 사람들이 진실을 증언하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된 셈입니다. B씨가 이 사건을 윤리위에 제소한 이후 그에 대한 조직적 배제가 더욱 심화된 것도 그 방증입니다.
또 유정복 인천시장 최측근이 이 사건을 무하려고 개입한 정황도 조사의 독립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B씨의 지역구인 남동구는 유정복 시장이 과거 당협위원장을 지낸 곳이기도 합니다.
<뉴스토마토>는 지난 9월28일 <
(단독)유정복 시장 최측근, '성비위 의혹' 피해자에 "남자들 술 마시면 그 정도 해"> 기사를 통해 본지 첫 보도 직후인 9월13일 유 시장 최측근이 B씨와 통화하며 사건을 축소하려는 발언을 했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당시 이 최측근은 B씨에게 "어깨 손을 올리고 이 정도는 내가 봤을 때 남자들 술 먹으면 그 정도는 하지 않나"라며 "그럼 그 당시에 기분 나빴다고 그 당시에 표명을 했었나요?"라고 했습니다. A씨의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정당화하는 한편 피해자가 그 자리에서 즉시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은 걸 문제로 삼은 겁니다.
B씨는 <뉴스토마토>와 통화에서 국민의힘이 조사에 착수한 것에 관해 "늦었지만 조사가 시작된 만큼 철저한 진상 규명을 기대한다"며 "목격자들이 용기를 내 진실을 증언해주길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A씨는 여전히 "B씨와 관련해 제기된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법적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김현철 기자 scoop_press@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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