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규하 기자] 정부가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정하기 위한 논의에 돌입했지만 '탄소중립 딜레마'를 둘러싼 고민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 산업 부문은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이 쉽지 않은 다배출 업종 중심의 산업구조를 지녔기 때문입니다. 특히 최근 이슈이자, 자동차 부품 업계의 원성을 사고 있는 내연기관차 신차 판매 금지뿐만 아닙니다. 섬유산업도 대표적 고탄소 산업으로 꼽히는 만큼, 저탄소 전환을 위한 제도적 마련이 절실해지고 있습니다.
지난달 2일 기후위기비상행동 회원들이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2018년 대비 최소 67% 감축으로 설정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대표적 고탄소 '섬유산업'…통합 관리 '불능'
16일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국제적으로 섬유산업은 전체 산업 부문 온실가스 배출의 약 8~1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산업용 수자원 소비의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에너지 집약적인 원료 생산·가공과 화학염료·보조제 사용이 수질오염을 유발하고 있는 겁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으로 섬유 폐기물의 90% 이상은 재활용하지 못하고 매립·소각하는 실정입니다. 이런 가운데 패스트패션에 따른 저가 의류의 과잉 소비 촉진은 상황을 악화시키는 구조로 자원순환 강화와 폐기물 감축이 국제 환경정책의 핵심 과제입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국내 의류 소비량은 연간 약 46만톤에서 94만톤(중앙값 약 70만톤)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유럽연합(EU)의 1인당 섬유소비 지표(26kg)에 한국 인구와 의류 비중(60~70%)을 적용, 산출한 수치입니다.
생활계에서 배출되는 섬유 폐기물은 연간 20만~30만톤 규모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수거 의류의 약 30~40%는 동남아시아·아프리카 등으로 수출합니다. 국내에서는 걸레, 청소포, 산업용 흡수재, 이불·소파 충전재, 건축용 단열재, 자동차 흡음재 등 다운사이클링(down-cycling) 과장을 거칩니다. 산업계 섬유 폐기물은 공식 통계가 부족하나 연간 10만톤 이상으로 연구자들은 추산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섬유 폐기물이 우리나라 법률상 독립적인 관리 항목으로 정의되지 않은 점입니다. '폐기물관리법' 체계 의류는 생활폐기물로, 산업 공정에서 발생하는 원단 자투리나 불량품은 사업장 폐기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즉, 동일한 섬유 폐기물이 배출 주체에 따라 상이한 법적 지위로 통합적 관리가 불가능하다는 지적입니다.
16일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국제적으로 섬유산업은 전체 산업 부문 온실가스 배출의 약 8~10%를 차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국제 비관세 장벽 '직면'…EPR는 '부재'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의 부재도 지목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EU)과 프랑스, 네덜란드 등은 섬유제품을 EPR 대상으로 지정, 생산자가 수거·재활용 비용을 부담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국제무역 비관세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는 제도이나 한국은 논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겁니다. 올해부터 EU가 섬유 폐기물 별도 수거를 의무화하면서 한국 기업들이 역외 규제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김경민 입법조사관의 설명입니다.
예컨대 명품의 나라 이탈리아는 자국 패션산업의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중국 패스트패션 기업들에 대한 규제에 돌입했습니다. 패스트패션을 겨냥한 EU 차원의 규제 논의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현재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순환경제 이행 로드맵 등을 통한 섬유 폐기물 관리 강화를 내세우고 있지만 구체적 실행 계획이나 예산 지원 부족은 한계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정책 집행력이 부족하다는 얘기입니다.
김경민 입법조사관 "정책 집행력이 부족하다"며 "지자체의 개별 시범사업이 존재하지만 전국적 확산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으며 민간 위탁 중심의 수거·재활용 구조에 대한 관리감독도 느슨하다. 이처럼 법·제도적 기반이 취약해 섬유 폐기물 관리의 국가적 전략 부재라는 한계가 드러난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수거된 의류의 약 30~40%는 해외로 수출되는데, 주로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이 주요 수입국"이라며 "이러한 수출 중심 구조는 단기적으로 국내 처리 부담을 경감시키지만 장기적으로는 국제사회로부터 '처리 부담의 해외 이전'이라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크다"고 설명했습니다.
16일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유럽연합(EU) 섬유 전략 네 가지는 '제품 설계 단계의 지속가능성 강화'와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확대', '소비단계의 과잉 소비 억제', '폐기·재활용 단계 전환'으로 축약된다. (그래픽=뉴스토마토)
"그린 전환 추진…산업경쟁력 강화 과제"
김 조사관은 "향후 섬유산업의 그린 전환은 단계적 전략에 따라 추진돼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폐기물관리법'과 '자원재활용법' 개정을 통해 섬유 폐기물을 독립 정의하고 EPR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며 "동시에 공공 주도의 수거 체계 확립, 경로 공개를 통해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중기적으로는 '환경기술산업법'과 '산업기술혁신 촉진법'을 통한 연구개발 지원 확대, '산업표준화법'에 근거한 재생섬유 인증제도 도입 등 기술 혁신과 인프라 확충이 필요하다"고 제언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환경교육진흥법', '전자상거래법', '환경개선비용 부담법' 개정을 통해 친환경 소비 문화 확산, 정보 공개 확대, 경제적 인센티브 제공을 병행해야 한다. 종합하면 섬유산업의 그린 전환은 단순한 환경정책이 아니라 2050 탄소중립 달성,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실현, 국제 무역 대응,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과제"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국제 규범이 강화되는 현시점에서 한국이 제도 개혁, 기술혁신, 소비문화 개선을 소홀히 하면 섬유·패션 산업은 무역 장벽에 직면해 경쟁력을 잃는다"며 "국회, 정부, 지자체, 산업계, 시민사회가 협력하는 거버넌스를 구축해 섬유산업의 구조적 전환을 이끌어내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습니다.
16일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국제적으로 섬유산업은 전체 산업 부문 온실가스 배출의 약 8~10%를 차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세종=이규하 기자 judi@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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