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창경 기자] 더티 탱커(dirty tanker)라 부르는 원유운반선의 스팟(Spot) 운임 강세가 석 달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덕분에 글로벌 증시가 쉬어 가는 사이 관련주들은 딴세상입니다. 대형 원유운반선을 다수 보유한 글로벌 해운사 주가는 실적 기대감에 가볍게 날아올랐고, 운임 선물가격을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도 운임 상승을 실시간으로 반영하며 고공행진 중입니다. 국내 증시엔 운임 상승을 직접적으로 누리는 수혜주가 없으나 중형급 조선사들의 경우 반사이익이 기대됩니다.
VLCC 운임 2배 뛰어
2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의 스팟 운임이 하루 12만6000달러까지 올랐습니다. 이는 한 달 전보다 60% 급등한 가격입니다. VLCC의 절반 정도 크기인 수에즈막스(suezmax)급 유조선 운임도 같은 기간 31% 오른 8만6000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지난 분기와 비교하면 2배 이상 뛴 가격이며 연초 운임 대비로는 3배를 넘습니다.
운임 급등이 모든 유형의 선박에서 발생한 것은 아닙니다. 오직 탱커, 그 중에서도 원유를 운반하는 더티 탱커에서만 포착됩니다. 또 이런 현상은 지난 9월부터 뚜렷해졌습니다.
증권업계에선 그 원인을 서방국가들의 러시아 제재에서 찾았습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이 러시아의 원유 수출을 강하게 제재하고 나선 영향이란 해석입니다. 러시아의 그림자 선단(Shadow Fleet) 수출에 대한 제재 수위를 높인 것이 나머지 선박에 대한 수요를 높여 운임 상승을 자극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하나증권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를 운항하는 VLCC 중 그림자 선단 비중은 16%로 추정됩니다. 이들의 운항을 막을 경우 나머지 선박들의 수요가 증가하므로 운임도 따라 오르는 것이 이치입니다.
물론 이것만으로 운임 급등을 해석하는 것엔 무리가 있습니다. 여기엔 OPEC+의 증산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수출 증가가 좀 더 핵심적인 원인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OPEC+는 미국 등 비회원국의 원유 공급 급증에 대응해 점유율을 회복하기 위해 올해 증산을 이어왔습니다. 난 5월과 6월엔 하루 41만1000배럴을 늘렸고, 9월에는 규모를 54만7000배럴로 키웠습니다. 12월엔 13만7000배럴을 증산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OPEC+가 지난해 하루 220만배럴씩 감산했음을 감안하면, 올해 증산은 감산량을 44% 푸는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합니다. 하지만 지난해보다 생산을 늘린 것은 분명해, 이 물량이 원유운반선 수요 증가에 영향을 준 것입니다. 특히 중동 지역에서 아시아 국가로 원유를 운반할 때는 주로 VLCC가 투입돼 운임 상승을 부채질했습니다.
크게 보면 VLCC들의 선령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VLCC 중엔 선령이 15년을 넘은 노후선박이 40% 비중을 차지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폐선 대상 선박도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요. 노후 운반선이 많아질수록 선령이 낮은 원유운반선의 몸값과 운임이 높아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래프=뉴스토마토)
운임 상승분 4분기 실적 반영…기대감 ↑
국내외 주식시장이 동반 강세를 보인 후 쉬어 가는 분위기도 닮았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스팟운임 상승이란 호재를 만난 기업의 주가는 더욱 돋보이는 상승세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기업이 프론트라인(종목기호 FRO)입니다. 노르웨이의 해운사 프론트라인은 원유 수송을 전문으로 하는 대형 선사로 지난 3분기 말 기준 VLCC 41척, 수에즈막스 탱커 21척과 석유화학제품을 주로 운반하는 LR2 탱커 18척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원유운반선 위주로 사업을 영위하는 선사가 흔치도 않지만 프론트라인의 경우 이들 운반선 대부분이 장기 운송계약이 아닌 스팟 시장에 노출돼 있어 VLCC 시황에 따라 수익성의 변화가 크게 나타나는 특징이 있습니다. 또 프론트라인 선박들의 평균 선령은 7년 미만으로 젊은 데다 모든 배가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 규제를 충족해 보험료 상승 같은 비용 우려는 크지 않습니다.
프론트라인은 3분기 9600만달러의 영업이익을 기록,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크게 감소한 실적을 올렸지만 4분기는 전혀 다른 실적이 예상됩니다. 안도현 하나증권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프론트라인의 3분기 계약 운임은 2분기 대비로도 낮았지만 4분기 운임은 전 분기 대비 VLCC 143%, 수에즈막스 73%, LR2 34%씩 상승해 실적 증가폭이 클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프론트라인은 순이익의 상당액을 배당으로 환원하고 있어 시황이 좋을 때는 주가 차익과 배당 증액을 함께 얻을 수 있는데요. 올해는 1분기에 주당 0.20달러, 2분기 0.18달러, 3분기 0.36달러씩 지급했고, 4분기엔 0.19달러 배당을 예고했습니다. 분기 실적을 해당 분기배당금에 반영하기는 어렵다는 현실을 감안, 내년부터는 증액이 기대됩니다.
VLCC 선단을 가진 해운사 외에 운임 상승을 직접 반영하는 ETF도 강세 행진 중입니다. 미국 아멕스 시장에 상장된 브레이크웨이브 탱커 시핑 ETF(Breakwave Tanker Shipping ETF, BWET)는 원유운반선 운임지수의 선물가격을 추종하는 ETF로 운임 상승을 직관적으로 반영합니다. BWET 주가는 9월 이후 지난 26일까지 87.07% 급등했으며, 11월에만 31.28% 오른 상황입니다.
HD현대중공업이 건조한 30만톤급 VLCC. (사진=HD현대중공업)
중형 조선사 곁불 쬐나
한편 VLCC 운임 상승은 국내 조선사들에게도 반사이익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앞서 전 세계 VLCC들의 선령이 높아 선사와 화주들의 부담이 크다고 설명했는데요. 이는 곧 VLCC 신조 계약으로 이어지는 유인이 됩니다. 다만 국내 대형 조선사들은 LNG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에 힘을 싣고 있어 VLCC 건조 주문에 대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합니다. 탱커 주문은 이들보다 체급이 작은 대한조선, HJ중공업, 케이조선 등이나 중국 조선사로 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김대성 DS투자증권 연구원은 “탱커 시장이 VLCC, 수에즈막스 등 대형 원유운반선 중심으로 호황기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대한조선이 수에즈막스급 탱커에 주력하고 있어 수주 경쟁력 및 점유율 확대가 기대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김 연구원은 또 “대한조선의 수주잔고가 풍부해 내년 1월이면 2028년 도크까지 완판될 예정”이라며 목표주가 9만2000원으로 커버리지를 시작했습니다.
대한조선은 지난 8월1일 공모가 5만원으로 상장한 직후 10만원을 넘기기도 했으나 이달 들어 잠시 6만원 선이 무너지는 등 상장 거품은 빠진 상태입니다.
그러나 이들과 달리 원유를 수입하는 국내 정유사들은 운임 상승이 비용 증가를 의미해 이익을 훼손할 전망이어서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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