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조진웅 논란, 양심의 바닥에 무엇을 쓸까
2025-12-12 06:00:00 2025-12-12 06:00:00
성전 마당 한복판. 한 여자가 끌려와 있다. 사람들은 이미 손에 돌을 쥐었다. 요한복음 8장의 장면이다. 예수는 고개를 숙이고 땅바닥에 뭔가를 쓴다. 그리고 한 문장을 던진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지금 한국의 온라인 광장도 이 같은 구도를 닮았다. 다만 돌 대신 키보드가 들려 있고, 성전 대신 포털과 유튜브가 있다. 가운데 서 있는 사람은 간음한 여인이 아니라 소년범 전력이 드러난 배우 조진웅이다.
 
사실관계부터 짚자. 연예 매체 보도로, 조진웅이 고교 시절 절도와 성폭력 관련 혐의로 소년보호처분을 받고 소년원에 송치됐다는 의혹이 공개됐다. 논란이 커지자 조진웅은 “모든 질책을 겸허히 수용하겠다”며 배우 활동 전면 중단, 사실상의 은퇴를 선언했다.
 
여기서부터 논쟁은 갈라진다. 첫 번째 축은 소년법의 취지다. 소년보호처분은 ‘형벌’이 아니라 보호·교화·교육을 목적으로 한다. 그래서 “그 소년의 장래 신상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아니한다”는 원칙이 법에 박혀 있다. 한인섭 서울대 명예교수는 “청소년 범죄에 대해서는 처벌을 하면서도 교육과 개선의 가능성을 높여서 범죄의 길로 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소년사법의 특징”이라고 썼다.
 
이 관점에서 보면, 10대 시절 이미 처분을 받고, 이후 수십 년 동안 성실히 살아온 사람을 다시 사회적으로 처벌하는 것은 소년법의 철학을 뒤집는 일이다. 
 
두 번째 축은 피해자와 공적 책임의 문제다. “소년원 다녀왔다고 끝인가. 피해자는 그 30년 동안 어떻게 살았나.” 게다가 그는 동네에서 조용히 일하며 사는 무명의 시민이 아니라, 정의로운 형사·독립운동가·‘국민 특사’ 역할을 맡아온 국민 배우였다. 광복절 경축식에서 국기에 대한 맹세문을 낭독한 사람이다. 이미지와 신뢰를 팔아 생계를 유지해온 사람에게, 과거의 무게는 일반인과 달리 평가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여기에 정치가 끼어든다. 여권의 일부 인사는 “청소년 시절 잘못을 언제까지 책임지게 할 거냐”며 조진웅을 두둔한다. 반대로 야권 인사들은 “친여 성향 인물에게만 관대하다”, “좌파의 이중 잣대”라며 공격에 나선다. 
 
배우 조진웅씨가 지난 2023년 11월 영화 <독전2> 제작 보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 지점에서 다시, 요한복음의 장면을 불러오게 된다. 그 장면을 끝까지 읽어보면, 이야기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예수는 율법을 집행하려는 사람들의 얼굴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그는 죄의 유무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성찰하지 않은 정의감의 폭력성을 겨눈다.
 
그렇다고 예수는 여자의 죄를 지워주지 않는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전폭적인 용서처럼 들린다. 그런데 다음 문장이 붙는다.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그는 여자의 과거를 덮으려 하지 않지만, 미래를 향한 책임을 묻는다. 은혜와 책임이 같은 문장 안에 들어 있다.
 
성전 마당에서 예수는 군중의 손에서 돌을 빼앗았다. 그러나 죄를 없던 일로 만들지는 않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그 둘 사이의 좁은 길이다. 용서라는 이름의 면죄부와 영구 낙인이라는 종신형을 넘어선 구체적 책임과 두 번째 기회 사이의 위험한 균형. 그 균형을 어떻게 잡을지를 공론화해야 한다. 그리고 조진웅 논란을 지켜보는 우리 모두는 이제 각자의 양심에 따라 땅바닥에 무엇을 써 넣을지 곰곰이 생각해볼 차례다.
 
백승권 비즈라이팅 강사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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