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희 기자]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가 대규모 금융사고에 대한 징계 수위를 결론을 내지 못한 채 해를 넘기면서 '징계 예정자'로 통보된 은행 직원들도 승진·보직 발령에서 보류되는 모습입니다. 제재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내부적으로 요주의 인물로 '낙인' 찍혀 인사상 불이익을 받는 셈입니다.
KB국민은행 "리스크 요소 종합해 인사평가"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 제재심은 최근 홍콩 H지수 연계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판매, 기업은행 부당대출, 우리은행 부당대출 사건에 대한 징계를 확정하지 못한 채 해를 넘기게 됐습니다. 금감원 관계자는 "주요 금융지주사나 은행에 대한 정기검사가 몰리기도 했고 정권 교체와 수장 공백, 조직 분리 위기 등을 거치면서 제재심 일정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며 "대규모 금융사고다보니 연루자가 많아 소명 등을 거치는 시간도 더 길게 소요된다"고 했습니다.
은행권에서는 제재 수위가 확정되지 않은 직원들에 대한 인사 처리 방향을 고심하는 가운데 일부는 불이익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은행권 인사는 통상적으로 매년 1월 초 정기인사, 1월 중순 부서 이동이 이뤄지지만 제재심이 지연되면서 이들 직원에 대한 인사를 승진 대상에서 배제하거나 주요 보직 이동을 보류하는 분위기입니다.
홍콩ELS 최대 판매사인 KB국민은행에서는 인사부 차원에서 리스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인사평가에 반영하고 있습니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징계가 최종 확정되지 않아 소명 결과에 따라 수위가 경감될 여지는 있지만 비정상적 요소를 고려한 종합 평가를 통해 인사에 반영 중"이라고 했습니다. 징계 확정 전이라도 내부적으로는 사실상 인사 불이익을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홍콩ELS 사태는 홍콩 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고위험 ELS가 2021년 전후로 시중은행 창구를 통해 대거 팔렸고, 이후 지수가 급락하면서 3년 만기 도래 시점에 대규모 손실이 한꺼번에 현실화된 사건입니다. 기본 구조는 일정 구간 이상 지수가 유지되면 쿠폰을 주지만, 일정 수준 아래로 떨어지면 원금의 상당 부분을 잃는 녹인 구조였고, 고령자·중위험 성향 투자자에게도 집중 판매된 점이 문제로 지적됐습니다.
금감원은 지난 18일 처음으로 홍콩 H지수 ELS 불완전판매 안건을 제재심의위원회에 상정했는데요. 첫 제재심에서는 과징금 산정 기준, 자율배상 실적을 감경 사유로 얼마나 인정할지, 설명의무 위반 범위를 어디까지 볼지 등을 두고 공방이 오갔으나 결론은 내지 못하고 심의를 차기 회의로 넘겼습니다. 금융권에선 최종 제재 확정 시점을 내년 1분기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기업은행 "부당대출 연루자 관리 대상"
기업은행의 경우에도 금융사고 연루 인물을 승진이나 보직 발령으로 대우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금감원과 은행 검사부 사이에 위반 사항에 대한 교류가 수시로 이뤄지며 이미 대상자 명단이 인사 시스템에 반영돼 있다"며 "제재 확정 여부와 관계없이 사실상 관리 대상이 된다"고 했습니다.
기업은행은 대규모 부당대출 사건으로 홍역을 치뤘습니다. 전·현직 직원과 퇴직자가 공모해 특정 거래처에 신용장, 대출, 어음할인 등을 부당하게 실행하고, 이후 연체·부실을 숨기는 방식으로 대출을 남발한 사건입니다. 금감원 검사 결과 총 882억원 규모 부당대출이 확인됐고, 사적 모임·입행 동기·가족 등을 고리로 한 전·현직 임직원 간 '짬짜미' 구조가 문제로 지적됐습니다. 금감원은 지난 7월 말경부터 행정제재 절차에도 본격 착수했으며, 기관경고 이상 중징계를 비롯해 관련 임직원에 대해 제재를 예고한 상태입니다.
우리은행 "부당대출 관련자 인사 보류 분위기"
우리은행은 부당대출 사고 연루 직원들의 인사 처리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한 관계자는 "어떤 직원의 경우 업무 성과만 놓고 보면 승진 대상인데 제재심이 늦어지면서 인사 자체가 보류되는 분위기"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관계자는 "부당대출 사고라는 것이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조직 내부통제 문제라 감경 가능성은 있으나, 인사철에는 페널티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우리은행 부당대출 사태는 우리은행이 2020년 4월부터 2024년 초까지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의 친인척이 지배하는 법인·개인사업자 등에게 편법·특혜성 여신을 취급하고, 다른 법인·차주에 대한 부적정 여신까지 포함해 대규모 부당대출을 일으킨 사건입니다. 금감원은 검사 결과 우리은행에서 발생한 부당대출이 총 2334억원 중 730억원이 손 전 회장 친인척 관련 부당대출이며, ·현직 고위 임직원 27명이 연루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은행권 관계자는 "징계 수위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요주의 인물로 분류되면 사실상 정상적인 경력 관리가 어려워진다"며 "제재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이미 승진 시기를 한두 번 놓치게 되면 회복이 쉽지 않다"고 전했습니다.
금감원은 지난 10월 기준으로 제재 절차에 공식 착수했으며, 우리은행 부당대출 관련 혐의가 있는 법인과 임직원에게 검사 의견서(제재 사전통지 성격)를 발송했고, 당사자들로부터 소명 의견서를 제출받은 상태입니다. 현재는 이 소명 내용을 토대로 제재안을 작성한 뒤 제재심 상정을 준비하는 단계입니다.
은행권에서는 금감원 제재 제재 지연이 조직 전반의 사기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사고의 원인은 복합적인데 결국 열심히 일한 직원들이 인사상 불이익을 떠안게 된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며 "영업력이 중요해진 시점에 사기 저하로 이어지지 않을지 걱정"이라고 했습니다.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가 결론을 내지 못한 채 해를 넘기면서 징계 수위가 확정되지 않은 은행 임직원들이 사실상 낙인 상태로 인사 불이익을 감내할 가능성이 커졌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을 시민이 지나가는 모습. (사진=뉴시스)
이재희 기자 nowhe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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