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도장 찍은 휴지 조각’을 들고 있는 당신에게
2026-01-22 06:00:00 2026-01-22 06:00:00
놀랍게도 지난해는 세 번의 거대한 기회가 찾아왔었다. 그중 단 하나만 현실이 되었어도 향후 5년, 길게는 10년의 먹거리가 보장되는 이른바 '캐시카우(Cash Cow)'였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세 번 모두 성사 직전에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심지어 도장을 찍은 문서조차 한순간에 휴지 조각이 되는 광경을 목격했다. ‘현타(현실 타격)’와 ‘멘붕(멘탈 붕괴)’이라는 유행어가 낱말 사전의 정의를 넘어 혈관을 타고 흐르는 생생한 통증으로 다가왔다.
 
인생이라는 식당에서 정성껏 주문한 요리가 나오기 직전 웨이터가 내 눈앞에서 접시를 깨뜨린 꼴이다. 그것도 세 번 연속으로. 보통 사람이라면 주방장을 불러 고함을 치거나 식탁을 엎고 다시는 이 식당을 찾지 않겠노라 저주를 퍼부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에 오래 머물지 않기로 했다. 이삼일 만에 그 지독한 상실감을 털어내고 일어섰다.
 
기회라는 이름의 롤러코스터. 우리는 흔히 기회가 오지 않아 불행하다고 말하지만 사실 진짜 잔인한 시련은 기회가 왔다가 사라질 때 찾아온다. 잡은 줄 알았던 손길이 미끄러질 때의 가속도는 절망의 깊이를 더한다.
 
도장이 찍힌 문서가 휴지 조각이 되었다고 해서 그 시간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그 문서를 만들기 위해 쏟았던 열정, 기회를 포착했던 감각,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무너짐 속에서도 며칠 만에 털고 일어난 회복탄력성은 오롯이 내 자산으로 남았다. 종이는 찢을 수 있어도 그 종이를 얻기 위해 단단해진 마음의 근육까지 찢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새해를 향해 선언한다. 어떤 상황이 와도 좋다. 이미 바닥을 확인한 마당에 두려움 대신 묘한 자신감이 깃든다. ‘이보다 더 나쁠 수 있겠어?’라는 체념이 아니라 ‘이 정도 시련도 견뎠는데 무엇이든 못 하랴’라는 근거 있는 낙관이다.
 
우리는 흔히 운(運)을 하늘에서 떨어지는 로또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운은 흐르는 물과 같다. 물길이 막히면 잠시 고였다가도 결국 더 큰 압력을 만들어 새로운 길을 낸다. 올해 나를 비껴간 세 번의 기회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더 큰 운의 흐름을 만들기 위해 댐 뒤에 잠시 고여 있는 중이라 믿는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묻고 싶다. 혹시 당신의 손에도 도장 찍힌 휴지 조각이 들려 있는가? 공들여 쌓은 탑이 무너져 내리는 먼지 속에서 콜록거리고 있는가? 그렇다면 축하한다. 당신은 드디어 도약할 수 있는 단단한 바닥에 도착한 것이다. 바닥을 본 사람만이 하늘이 얼마나 높은지 안다.
 
우리는 평소 숨 쉬는 공기와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소중함을 잊고 산다. 하지만 큰 기회가 무산되고 나면 알게 된다. 오늘 하루 별일 없이 일할 수 있다는 것, 내 곁에 여전히 남아 있는 사람들, 그리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건강한 신체가 얼마나 경이로운 축복인지를.
 
백승권 비즈라이팅 강사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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