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나의 알코올 일지⑫)원래는 교자에 생맥주를 벌컥벌컥
2026-02-13 09:52:45 2026-02-13 09:52:45
도쿄 근교에 ‘사와라’라는 마을이 있다. 정확하게는 지바현 가토리시 사와라(천엽현 향취시 좌원, 千葉縣 香取市 佐原)이다. 우리에게 썩 잘 알려진 곳은 아니다. 관광지로 유명한 리틀 에도의 줄기에 있다. 리틀 에도처럼 에도 시대의 건축물이 그대로 보존돼있는 곳이지만 거기보다는 훨씬 덜 번잡하고 아담하며, 당연히 조용한 동네이다. 에도 시대는 이른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막부 시대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후 벌어진 권력 싸움의 정점, 곧 세키가와라 대전투에서 이에야스가 승리를 거두고 자신의 본거지인 에도, 곧 도쿄에 막부(幕府)를 연 1603년부터 메이지(明治) 유신으로 천황의 중앙집권 체제가 가속화된 1867년까지의 시대를 말한다. 264년의 기간이다.
 
그러니까 사와라의 집들은 지어진 지 최대 400년은 된다는 얘기이다. 마을 정 가운데는 비교적 수심이 있어 보이는 천(川)이 흐른다. 양쪽에는 이런저런 가게들, 그렇다고 한국의 인사동처럼, 오밀조밀 인공적으로 꾸며진 기념품 가게나 음식점들이 즐비한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되는 대로 구성된 잡화의 거리 같은 느낌을 주는 마을이다.
 
  
사와라에서는 무조건 먹어야 하는 것이 우나기, 곧 장어이다. 현재 일본의 물가는 한국에 비해서 좀 싼 편이다. 우동이나 라멘처럼 간편한 한 끼는 700~800엔이면 된다. 우리 돈으로 6500원, 7500원이다. 요즘의 한국 식당가에서라면 먹을 수 없는 금액이다. 그러나 우나기는 우나이기이다. 셋이서 덮밥 중심으로 먹는다 해도 1만엔 정도는 생각해야 한다. 잘 알겠지만 우나기에는 카네하치 같은 보리소주가 제격이다. 25도 술이다. 한국 남자의 근성은 스트레이트로 마시겠지만 ‘온더락’이 좋다. ‘미즈오 와루(물을 타다)’라는 말대로 '미즈와리'를 할 것을 권한다. 낮이라면 우나기 덮밥에 카네하치 온더락 한 잔 술이 딱이다. 일본은 어디서나 잔술을 판다. 와인이야 하우스 와인을 병으로 먹는 것도 일반화돼 있지만 고급 소주는 오히려 병째로는 잘 팔지 않는다. 과도하게 술을 마시지 않는 방식이어서 좋다. 그리고 술 도수가 워낙 만만치 않다. 한국도 잔술이 일반화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장어란 뜻의 일본어 우나기는 일본 영화 역사에서 가장 공격적이고 진보적인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영화 <우나기>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같은 해 칸영화제에서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탔다. 1997년 영화지만 한국의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김대중 정부 이후인 1998년에나 이루어진 탓에 국내에서는 1999년 5월에 개봉됐다. 영화의 오프닝이 실로 찬란하다. 여명이 깔리는 어스름 새벽길에 한 남자가 자전거를 몬다. 카메라는 그의 뒤를 유영하듯, 헤엄치듯 쫓아간다. 저 멀리 불빛이 보이고 남자는 페달에 힘을 가해 속도를 낸다. 줄곧 뒤를 따르던 카메라는 달리는 남자의 옆 모습을 살짝 비춘다. 뒤를 쫓는 롱테이크와 옆 모습의 몽타주 쇼트로 이어가던 카메라는 남자가 불빛 건물, 곧 파출소에 다다르자 경악한 표정의 경찰들 얼굴을 비춘다. 카메라는 서서히 리버스 쇼트로 남자의 정면으로 향한다. 온몸이 피로 범벅이 돼, 그야말로 ‘피칠갑’이 된 남자는 이렇게 말한다. "제가 아내를 죽였습니다." 남자 타쿠로(야쿠쇼 코지)는 아내인 에미코(테라다 치호)를 막 난도질해 살해한 터이다. 아내는 자신이 낚시를 갈 때마다 남자를 끌어들여 질펀한 섹스를 벌였다. 누군가의 제보를 받은 타쿠로는 낚시를 가는 척 새벽에 돌아와 부엌에 있던 식칼로 아내를 수차례 찔러 죽인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이 만든 영화 <우나기>는 1997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사진=제이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인상적이고 잔혹한 오프닝 이후 타쿠로가 8년의 모범수 생활로 가석방된 이후의, 갱생의 삶을 그린 내용이다. 그는 출소 후 허름한 이발소를 차리고 특이하게도 장어 한 마리를 작은 수조에 넣고 키우며 산다. 타쿠로의 은둔의 삶은 자살을 시도한 게이코라는 여성(시미즈 미사)을 구하게 되면서부터 또다시 점입가경이 되기 시작한다. 삶은 어찌 됐든 계속되는 것이며 우나기-장어처럼 꿈틀대는 생명력으로 살아 나가야 한다는 것이 늙은 감독 이마무라 쇼헤이의 전언이었던 영화이다. 자, 이 얘기를 왜 하느냐, 주인공 타쿠로가 새 삶을 시작하는 이발소의 공간이 바로 지바현 어디 메이다. 지바현 가토리시 사와라에서 장어덮밥을 먹으며 맥주를 못 마셔 마음속으로 '찔찔 짤 때' (일행이 차를 운전해야 했기 때문이다. 술꾼들은 한 사람이 못 마시면 같이 마시지 않는 것이 예의다) 앉아 있던 곳이 바로 영화 <우나기>의 스태프들이 먹던 곳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화 <우나기>의 홍보를 담당했던 회사는 국내 기자들 10여 명을 데리고 도쿄를 갔다. 주연배우 야쿠쇼 코지 단독 인터뷰, 라운드 테이블 인터뷰 등을 위해서였다. 오전 오후로 종일 인터뷰가 이어졌다. 지루했다. 똑같은 질문들이 이어졌고 일본 영화를 잘 몰랐을 때였으며 이마무라 쇼헤이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했을 때였다. (당시 통역을 맡았던 일본 대학원 유학생이 현재 굴지의 일본 영화 및 애니메이션 수입사인 미디어 캐슬의 상무이사 강민하이다)
 
하나마나한 인터뷰들, 홍보용 인터뷰가 다 끝난 후 당연히(!) 술판이 벌어졌다. 아카사카 골목길의 ‘다치’ 바였고 홍보사가 여기로 고른 것은 한국계 마담이 운영하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교란된 기억의 한 줄기에 마담이 내게 했던 말이 기억이 난다. “오늘 귀여운 조선 놈 왔네.” 그날 밤 너무 엉망으로 취했었고 다음 날 귀국 비행기를 어떻게 탔는지가 전혀 기억에 없다. 그날 밤 나의 행적은 아마도 현재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배장수 부집행위원장(당시 경향신문 기자)이 증언할 수 있을 터이다. 젊은 시절 망동의 흔적을 다 늙어 더듬는 기억의 회로, 곧 사와라-우나기-우나기 인터뷰-아카사카 다치 바의 여인에 대한 기억은 좋지도 싫지도 않다. 그저 지나간 젊음일 뿐이다.
 
사와라로 가는 길목에는 가토리 진구(향취신궁, 香取神宮)가 있다. 큰 신사이다. 과거 지바현을 다스렸던 다이묘를 기리는 신사이겠다. 함께 간 친구가 말했다. “일본 신사의 건축물은 상당히 공격적이야.” 이날 NHK를 포함한 모든 일본의 방송사들은 일본 신사의 건축물처럼 공격적인 여성 총리 다케이치가 중의원을 해산하고 던진 승부수를 통해 과반수 의석을 확보할 것이라는 뉴스로 채워졌다. ‘다카이치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할 것인가. 그녀가 다케시마의 날에 과연 자기 수하의 어떤 급을 보낼 것인가’가 현재의 한일관계를 판단할 수 있는 가늠자가 될 것이다. 일본 내 우파의 정점인 다카이치가 한국 진보 정부의 수장인 이재명과 합치를 이룰 것인가. 세상은 참으로 묘한 것이다. 그럴 때는 아사히 생맥주보다는 기린 생맥주가 최고이다. 참고로 한국에서 먹는 아사히生은 죄 중국산이다. 따라서 아사히 생맥주는 일본에서 마시는 맛이 다르다. 그 비교를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그래도 생맥주는 기린이 낫다. 뭐 그러거나 말거나. 생맥주는 어차피 개인 취향이로세, 이다.
 
도쿄에 오면 다들 긴자와 신주쿠, 시부야, 이케부쿠로, 니혼바시 등을 다니는데 바쁘지만 짧은 일정이라면 가마쿠라 막부(兼倉幕府)를 가는 곳이 좋다. 가나가와현 가마쿠라시이다. 여기에 일본 불교의 실체를 볼 수 있는 엔가쿠지(円?寺)가 있다. 1280년대 건축물들이다. 그중 산몬(산문, 山門)은 그야말로 웅장미의 극치이다. 이런 건축물들을 볼 때는 만들어지던 당시의 시대로 상상력을 옮겨갈 필요가 있다. 이렇다 할 도구나 기계가 전혀 없던 시대에 어떻게 인간이 이런 문을 세울 수 있었을까. 당시의 기술자들은 어떤 지혜를 갖고 있었던 것일까.
 
엔가쿠지의 오즈 야스지로 묘역에는 일본 소주, 위스키가 즐비하다.(사진=오동진)
 
엔가쿠지는 영화를 하는 사람들에겐,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郞)의 묘역을 참배하는 곳이다. 묘역에는 '無'자가 쓰여있는데 마치 산티아고데쿠바에 있는 피델 카스트로의 무덤을 보는 듯한 기시감을 준다. 카스트로의 묘역은 돌덩이 하나가 놓여 있고 그저 ‘FIDEL’이라고만 쓰여 있다. 모든 죽음은 무상하고 심드렁한 법이다. 오즈의 묘역에는 위스키병들, 일본의 꽤 고급스러운 소주병들이 즐비하다. 오즈 감독이 얼마나 술을 즐겨 마셨는지는 모르지만, 참배객들은 내내 술상을 보려고 애쓰기 마련이다. 엔가쿠지에서 10여 분 거리에 있는 또 다른 절 고토쿠인(高德院)에는 가마쿠라 대불이 있다. 11.3미터이고 121톤급의 청동 좌상이다. 1250년대에 주조되었다. 그 크기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가마쿠라시는 도쿄에서 먼 거리이다. 우리 식으로 얘기하면 서울-인천 간 거리보다 멀다. 여기를 다녀오면 (자동차든, 지하철과 열차를 이용하든) 당연히 약간은 지치게 된다. 맥주를 마시게 된다. 고생을 한 만큼 술을 마셔야 한다. 이번 여행은 나의 알코올 일지를 위한 것이다. 보리소주 카네하치 말고 고구마 소주인 토미노 호오잔을 따라 놓고 성찬을 마련해야 한다. 살짝 데친 새끼 멸치를 뿌린 시라스 다이콘 사라다(샐러드)나 시라스 돈(덮밥)만으로도 보리 소주든 고구마 소주든 몇 잔은 마실 수 있다. 잔멸치인 시라스 요리가 유명한 곳은 원해 도쿄 근교 에노시마인데 덮밥엔 생시라스, 가마아게(살짝 데친) 시라스 등을 밥 위에 산처럼 쌓아올려 먹는다.
 
에노시마는 가마쿠라 옆이다. 애니메이션 <슬램덩크>의 역으로 유명해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이다. 이 시라스 요리에 네기 마구로 나베(파 참치 전골)을 끓이며 생맥주 큰 잔(이라고 해 봐야 370mm)을 연거푸 들이켜면 곧 만취 각이다. 원래는 500짜리 생맥주나 메가 하이볼(1000cc)에다가 교자를 먹을 생각이었다. 노포만 다닐 생각이었다. 일정과 동선, 먹는 것의 '품격'이 높아진 것은 순전히 일본 물가가 싸졌기 때문이다.
 
거리에는 온갖 세계인이 넘친다. 한국이 이렇게 돼야 한다고, 딸꾹, 이 연사 주장하는 바이며 그러려면 사회가 개방되고(혐오 정치가 사라지고) 경제가 안정돼야 한다고, 이 연사 다시 한번 주장하는 바이다. 보리 소주 카네하치를 기억들 하시기를. 아듀 도쿄.
 
 
 
 
 
 
 
 
 
 
 
오동진 영화평론가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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