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7년째 멈춘 입법 시계…공백은 악순환으로
2026-02-26 06:00:00 2026-02-26 06:00:00
2019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지 벌써 7년이 흘렀습니다. 당시 헌재는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해 2020년 말까지는 반드시 대체입법을 마련하라고 주문했습니다. 하지만 국회와 정부는 7년째 묵묵부답입니다. 이 기록적인 입법 공백 속에서 '안전한 임신중지'라는 권리는 설 자리를 잃었고, 그 빈자리는 오롯이 여성 개인에 대한 가혹한 형사처벌이 채우고 있습니다.
 
<뉴스토마토>는 '낙태죄 폐지 그리고 7년' 연속 보도를 통해 우리 사회의 대체입법 지연이 얼마나 비극적 결과를 낳았는지 파헤쳤습니다. 취재팀이 신생아 사망 사건에 관한 판결문을 전수 조사한 결과, 낙태죄 효력이 상실된 2021년 이후 신생아 사망 사건의 피고인은 95%가 여성이었습니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이들 중 절반 이상이 애초에 임신중지를 시도했거나 진지하게 고려했다는 사실입니다. 국가의 제도적 뒷받침이 전혀 없다 보니 결국 임신중지는 실패로 돌아갔고, 여성들은 살인죄의 굴레를 뒤집어써야 했던 겁니다. 

판결문에 기록된, 비극이 벌어지는 과정은 처참했습니다. 여성들은 수백만원에 달하는 수술비를 마련하려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 임신중절 수술의 골든타임을 놓치기도 했습니다. 임신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탓에 인터넷에서 산 가짜 약물에 속아 더는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임신 주수가 훌쩍 넘어가기도 했습니다. 국가가 보건의료 체계 안에서 이들을 보호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입니다. 결국 여성들은 모텔이나 화장실 같은 열악한 환경에서 홀로 분만하고, 신생아를 유기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극단적 상황으로 내몰리게 됐습니다. 

그럼에도 사법부의 잣대는 냉정했습니다. 국가가 마땅히 제공했어야 할 상담 시스템·의료 접근성 부재는 거의 고려되지 않습니다. 법원은 신생아 사망의 책임을 여성의 '보호 의무 위반'으로 몰았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일명 '정인이법'으로 불리는 아동학대처벌법이 적용되면서 임신중지에 실패한 여성이 받는 형량도 가파르게 오르고 있습니다. 국가의 입법 지연이 낳은 결과가 개인의 중범죄 책임으로 교묘하게 치환된 셈입니다.
 
정작 입법의 책임을 진 정치권은 어떨까요. 20대·21대·22대 국회에서 내리 원내 제1당이 된 민주당은 선거와 종교계의 눈치만 보고, 표심만 따지느라 입법 논의 자체를 계속 미뤄왔습니다. 이재명정부는 임신중지권 보장을 국정과제로 내걸었지만, 국회와 정부부처의 보수적 태도는 국정과제 구현을 사실상 방치하고 있습니다. 명백한 직무유기입니다.
 
검찰과 법원도 헌재가 낙태죄에 헌법불합치를 결정했던 취지를 다시 한번 되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낙태죄가 폐지되었는데도 출산 이후 '신생아가 죽었다'라는 결과만을 따져 살인죄를 적용하는 건, 헌재가 경계했던 '형벌 중심의 접근'을 반복하는 꼴입니다.
 
임신중지 문제는 단순히 '낙태 찬반'으로 국한되지 않습니다. 공공보건과 사회 안전망의 문제입니다. 뉴질랜드 같은 해외 사례를 보면 낙태죄 비범죄화 이후 1년 만에 임상 가이드를 만들고 건강보험을 적용해 임신중지에 대한 접근성을 높였습니다. 일단 임신중지에 대한 사회 안전망부터 구축한 뒤 낙태 찬반을 따져도 늦지 않습니다. 
 
7년째 이어지는 입법공백 탓에 여성이 범죄자로 내몰리는 이 비정상적인 악순환은 이제 마침표를 찍어야 합니다. 그 긴 시간은 제도를 정비하기에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비용과 정보의 장벽 앞에서 위태로운 선택을 강요받고 있습니다. 이들을 실질적으로 보호하는 것, 그것이 국가가 지금 당장 수행해야 할 가장 시급한 헌법적 책무입니다. 정치도 표 계산을 멈추고 생명과 인권을 위한 실질적 입법에 나서야 합니다. 
 
최병호 뉴스토마토 공동체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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