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치러진 전국동시지방선거는 어느 한쪽에는 다소 시끄러운 생맥주 파티를 준비하는 분위기였을 것이다. 그러나 곧 그 생맥주 파티는 침울한 분위기로 바뀌었을 것이다. 여야 모두에게 이번 선거는 결코 유쾌한 결과일 수 없었다. 당분간 사람들은 소주를 마실 것이다. 사실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여느 나라에서도 슈퍼볼이나 MLB 경기는 펍이나 바의 시끄럽고 왁자한 분위기에서 보는 문화들이 생겼다. 100인치 가까운 대형 TV가 대중화된 덕이다. 여기에 생맥주 문화가 결합했기 때문이다. 드래프트 비어는 세계 어디서든 잔을 부딪치며 축배의 소리를 지르기에 최적화된 음료이자 술이다. 생맥주는 인류가 개발한 매우 중요한 음료이다. 거의 산업혁명급이다.
개표 방송을 함께 보는 장면을 형상화했다.(이미지=챗GPT)
당신이 정말 맥주광이라는 점에서 차별화되는 인물이라면 아마도 맥줏집을 찾을 때 두 가지 기준점이 있을 것이다. 하나는 그 집에 생맥주가 있느냐, 또 하나는, 이게 중요한데, 생맥주 품질인증 마크나 관련 명판이 멋으로라도 비치돼 있느냐이다. 만약 인증마크가 있는 집이라면 술집 주인이 맥주에 진심인 사람이다. 서울에 그런 곳은 그다지 많지 않다. 사람들도 대체로 맥주가 거기서 거기지 뭐, 하는 태도들이다. 그러면 안 된다. 선진화된 문화 사회일수록 맥주의 종류와 퀄리티를 따지는 법이다. 한국 사회는 아직 그게 좀 모자라다.
한국의 단체 회식 문화는 MLB 경기를 넘어 개표방송을 같이 보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했다. 대체로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는 저녁 8시를 기준으로 약속을 잡는다. 7시쯤 모이되 대형 TV가 있는 펍이 아니라 오히려 조용한 술집을 찾는다. 다들 핸드폰이 있기 때문이다. 각각 따로 개표 현황을 중계하는 방송사를 찾아 놓고 동시에 접속한 채로 기다린다. 생맥주가 있으면 좋지만 대체로 밍밍한 한국 맥주 그리고 거기에 ‘조미료’가 될 소주를 준비해 놓는다. ‘카스+진로이즈백’ 파와 ‘테라+처음처럼’ 파로 나뉜다. 불판에는 지글지글 삼겹살이 구워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매운탕처럼 국물이 있는 안주는 개표방송에 어울리지 않는다. 성질부리다 엎으면 덴다.
지난 20년간 최악의 개표방송 파티는 2022년 윤석열이 당선되던 때였다. 3월이라 아직 추웠고 워낙 박빙의 차이로 붙었던 터라 (안철수가 넘어갔고 심상정이 선거연대를 거부하는 바람에) 술집에 모인 민주당 지지자들의 마음은 바짝바짝 타들어 가고 있었다. 그래서 술(소맥)을 한참 많이 마셨다. 그렇게 불안했지만 그래도 이길 줄 알았다. 술을 많이 마셔서 새벽 2~3시쯤에는 파하고 집에들 일찍 들어가게 됐다. 그런데 아뿔싸 아침에 보니 개표 결과는 뒤집혀 있었다. 그리고 한국 사회는 3년간 암흑에 빠졌다. 사실 이런 경험은 2012년 18대 대통령 선거 때 한번 경험한 적이 있었다.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최종 결과가 나온 후 (당시 문재인 선대위는 프라자호텔에서 인수인계팀을 꾸리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3일 현재 대구에 가 있는데 그의 전망을 미심쩍어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서울은 침묵의 도시가 됐다. 그때가 12월이었고 사람들은 엉뚱하게도 톰 후퍼 감독의 영화 <레미제라블>에 몰렸다. 이 영화는 2012년 연말 극장가에서 591만 5347명을 모았다.
2012년 민주당 진영의 사람들은 대선에 패하고 영화 <레 미제라블>에 몰렸다. 소주 소비량도 늘었다.(사진=유니버설픽쳐스)
이 영화의 당시 배급사였던 UIP의 대표 더글러스 리(한국 이름 이민수)는 <레미제라블>의 감독 톰 후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는데 질문 딱 한 줄만 있는 것이었다. “한국에 무슨 일이 있나요? (왜 이리 흥행이 되고 있나요?)” 사람들은 마지막 바리케이드 장면에서 말 그대로 무지하게 울었다. 그중에는 정지영 감독도 있었다. 소설 『장발장』, 곧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은 1832년 6월 봉기에 관한 이야기이다. 1789년에 시작된 프랑스 혁명은 나폴레옹(의 미치광이 황제 독재)을 거치고 깨지면서 일시적으로 왕정(부르봉 왕가)을 복구한다. 그리고 다시 민중을 탄압한다. 이 6월 봉기 때 젊은 학생들과 노동자들이 많이 죽었다. 2012년의 한국인들은 박근혜의 등장을 프랑스 혁명 때의 왕정복고로 봤다. 사람들은 왕창 울었고 엄청 술을 마셔댔다. 이 해 연말 소주 소비량이 급증했으며 성인 1인당 연간 85병이었던 소주 소비는 88병 정도가 됐다. 특히 부산 대선(大鮮) 주조의 소주들(시원 등)이 더 잘나갔다. 사람들은 ‘대선(大選)소주’라 불렀다. 믿거나 말거나, 이다.
개표방송 생맥주를 마시려면 몇 가지 알아야 할 기본 상식이 있다. 흔히들 생맥주 통의 호스 관리가 어떤지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 고리짝 옛날에는 맥주 역시 와인처럼 오크통에 담겼다. 대체로 수도원 지하실에 이 오크통이 있었다. 수도사들이 자신들이 먹을 맥주를 직접 제조했다는 얘기다. 그래서 여전히 수도원(産) 맥주라는 게 있다. 바로 트라피스트 맥주가 그것이다. 벨기에 등지의 수도원 (스크루몽 수도원이나 성 식스투스 수도원) 양조장에서 나오는 것이다. 맥주병이 와인병처럼 생겼다 싶으면 대체로 트라피스트 맥주라 생각하면 된다. 이 맥주는 호불호가 크게 갈린다. 일단 도수가 너무 세다. 대표 브랜드인 베스트블레테렌은 10.2도이다. 수입 맥주치고도 너무, 가장 비싸다. 요즘은 3만 원대로 가격이 내려갔지만, 한때 5만~8만 원까지 가기도 했다. 서민들의 맥주는 확실히 아니다. 수도사들이 왜 이렇게 비싼 술을 마실까 싶다. 당연히, 수도원의 자급자족을 위해서이고 수익이 일정 부분을 넘어서는 액수는 모두 지역 자선사업에 쓴다. 그래서 생산량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비싸다.
트라피스트 맥주에 아이디어를 얻어 민간이 만든 맥주가 애비(Abbey) 맥주이고 대표 브랜드가 레페(Leffe)이다. 이건 상당히 대중화되었다. 6.6도이다. 높은 도수 흉내를 냈으나 초콜릿 향이 가미되었기 때문에 살짝 달콤해서, 속을 수 있다. 벌컥벌컥 마시면 자칫 훅 간다. 트라피스트 맥주는 산미가 강하다. 커피나 맥주나 산미냐 고소미냐로 취향이 갈린다. 개인적으로는 좋아하지 않는다.
트라피스트 맥주는 유럽 벨기에 등의 수도사들이 만든다.(사진=오동진)
생맥주 호스 얘기를 하려다 여기까지 왔다. 기술적으로 말하기 시작하면 어려워진다. 탄산가스가 어쩌구 질소가 어쩌구 하게 된다. 그럴 필요가 없다. 그냥 사람 몸의 혈관 같은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지금의 생맥주는 오크통이 아니라 스테인레스통(케그, Keg)에 담겨 아예 나무나 콘크리트 벽 뒤에 놓인다. 이게 바로 탭 하우스이다. 모든 액체는 산소와 결합할 때 순간적으로 부식한다. 요즘 유행이라는 올리브오일도 그렇다. 어쨌든 산소 결합을 최소화하기 위해 탄산가스를 넣고 그걸로 맥주를 순간적으로 밀어내는 것이 생맥주이다. 거품을 만들기 위해 질소도 넣는다. 자, 그러다 보니 호스가 지저분하면 (마치 사람의 핏줄에 뭐가 잔뜩 끼어 있으면 동맥경화를 일으키듯이) 탄산가스나 질소가 제 역할을 못 하게 된다. 호스 내벽에 찌꺼기가 많으면 맥주에서 신맛이 난다. 이건 트라피스트 맥주가 신 것과는 다른, ‘더러운 신맛’이다. 이런 데는 다시는 가면 안 된다. 호스 관리가 잘 된 맥줏집은 생맥주의 크리미한 거품이 쭈욱 들이켠 후에도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데를 가야 한다. 호스는 가게마다 그날 마감을 하고 문을 닫을 때 매일 물로 세척 해줘야 한다. 일주일에 한 번은 세제를 넣어 씻어줘야 한다. 6개월에 한 번은 호스를 아예 바꿔줘야 한다. 일본의 나마비루(생맥주)가 왜 맛이 있느냐, 일본이 물이 좋아서이냐, 천만의 만만의 말씀이올시다, 이다. 호스 관리에 철저하기 때문이다. 일본 사람들 병적으로 깨끗한 거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지금쯤이면 엊그제 개표방송 생맥주 맛을 되새겨 보시기들 바란다. 2년 후인 2028년에는 또 국회의원 선거가 있다. (이번 국회의원들 임기는 왜 이렇게 시간이 더디 가느냐는 얘기가 많다) 2028년 선거철에는 호스 관리가 잘된 생맥주 가게를 미리미리 알아보기를 바란다. 생맥주의 호스처럼 국회도, 정치도 정기적으로 세척해줘야 할 것이다. 그때는 다들, 어느 쪽이든, 유쾌하게 마실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정치가 잘돼야 맥주도 맛있다. 이른바, 생맥주 정치학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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