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기자] 금융사들이 비금융정보를 활용한 대안신용평가모형을 잇달아 내놓는 상황에서 구체적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신용 이력이 부족한 이른바 '신파일러(Thin Filer)' 고객 유치를 위해 통신요금과 공과금 납부 이력, 금융소비자의 소비 패턴, 건강관리 이력 등을 신용평가에 활용하는 데 있어 통일된 규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신용 이력 부족자 '대안 CB' 도입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기관들은 자체 대안 신용평가(CB) 모델을 잇달아 내놓고 있습니다. 서민금융진흥원은 통신·공공·이커머스 정보를 활용한 서민 특화 대안신용평가모형을 개발 중입니다. 인터넷과 이동통신 요금 납부 이력, 소액결제 연체 여부, 공과금과 고용보험 이력, 온·오프라인 구매 정보 등을 활용하는 방식입니다.
은행권과 인터넷전문은행 3사는 이미 자체 대안 신용평가모형을 운영 중인데요. 비은행권 금융사도 대안신용평가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애큐온저축은행의 경우 최근 개인사업자의 마이데이터와 상권정보 등을 신용평가모형에 적용한다고 밝혔으며, 뱅크샐러드 등 핀테크 업체들도 소비 패턴과 건강관리 이력, 자산 조회 습관 등을 신용평가에 활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대안신용평가는 기존 금융정보만으로는 상환능력을 충분히 평가받기 어려운 사회초년생과 주부, 고령층, 영세 개인사업자 등을 위해 비금융 데이터를 활용하겠다는 것입니다. 기존 신용평가에서 대출이 거절된 차주 가운데 비금융정보상 성실성과 안정성이 확인되는 고객을 추가로 선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금융기관마다 대안신용평가에 사용하는 정보와 평가 방식이 제각각이라는 점입니다. 통신요금이나 공과금 납부 이력과 같이 채무상환 성실성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는 정보뿐만 아니라 쇼핑 빈도와 건강관리 기록, 특정 애플리케이션 접속 습관까지 평가 요소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다만 어떤 비금융정보가 차주의 상환능력을 설명하는 데 적합한지, 신용평가에 활용해서는 안 되는지에 대한 공통 가이드라인은 전무한 상황입니다. 개인정보보호법, 신용정보법 등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한 근거법은 있지만 신용평가에 투입되는 개별 정보의 적정성과 가중치, 모형 검증 방법을 규정한 별도 세부 지침은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한 회사에서는 통신비 납부 이력이 높은 점수를 받지만 다른 회사에서는 소비 패턴이나 자산 조회 기록이 더 높은 비중을 차지할 수 있다"며 "현금 거래 비중이 높거나 디지털 플랫폼을 이용하지 않는 소비자들은 금융정보에 이어 비금융정보에서도 다시 소외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소비자가 자신의 신용평가 결과를 확인하는 것에도 제약이 있습니다. 신용평가 결과가 대출 승인 여부와 한도, 금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금융사들은 자체 모형의 세부 변수와 가중치를 영업비밀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어떤 정보 때문에 점수가 낮아졌는지 확인하기 어렵고, 잘못된 정보가 반영되더라도 정정할 방법이 없습니다.
금융기관들이 신용 이력이 부족한 이른바 ‘신파일러(Thin Filer)’를 위한 자체 대안 신용평가(CB) 모델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사진은 서울 시내 한 거리에 붙은 신용카드 대출 광고물. (사진=뉴시스)
기준 제각각…연체율관리 우려
금융당국이 금융사의 포용금융 실적을 평가하고 중·저신용자 자금 공급 확대를 주문하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사들이 충분한 장기 검증 없이 대안신용평가모형 도입 경쟁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모형 출시 건수나 대출 공급액만 성과로 평가하면 연체율과 부도율, 차별 가능성에 대한 사후 검증은 뒷전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금융위는 지난 1월 '신용평가체계 개편 TF'를 출범하고 대안정보 수집·활용 인프라와 데이터 결합 절차 개선, 금융사의 대안신용평가 활용을 유도할 제도를 마련 중입니다. 금융·비금융정보를 통합관리하는 데이터 허브 시스템 구축과 소상공인 특화 신용평가모형 도입을 연내 완료한다는 방침입니다.
다만 전문가들은 대안신용평가가 안착하기 위해서는 허용 가능한 정보의 범위와 상환능력과의 연관성, 사후 연체율 검증 등을 담은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습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대안신용평가가 신파일러의 금융 접근성을 높이는 방향 자체는 필요하지만 새로운 정보를 많이 활용한다고 정확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비금융 데이터가 상환능력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지, 모형 적용 이후 연체율 관리 등 사후 관리까지 검증할 수 있는지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개인정보보호법상 가명정보 결합 자체가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필요한 정보를 적시에 확보하는 것이 여전히 어렵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금융사가 대안정보를 분석하기 위해 가명 처리와 데이터 결합에 상당한 시간과 자원을 쓰고 있는데, 다수의 동의 절차에 따른 고객 불편과 대안정보를 통합 관리할 인프라 부재 등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금융위 관계자는 "가명 정보 결합 절차를 신속히 처리하는 패스트트랙과 고객 주도의 포괄 동의, 대안정보를 집중·관리하는 허브 구축 등을 우선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금융위원회는 개인과 소상공인 금융 접근성과 신용평가 제도 변별력 제고를 위한 신용평가체계 전면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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