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오스크가 처음 매장 앞에 등장했을 때, 우리는 그것이 점원의 자리를 대신할 것이라 여겼다. 주문을 받고 결제를 처리하는 일, 즉 사람이 하던 일을 기계가 그대로 흡수하는 그림이었다.
그런데 다음 단계로 넘어간 지금, 그 그림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화면 안에 머물던 키오스크와 달리, 이제 매장 앞으로 걸어 나오는 것은 사람과 눈을 맞추고 말을 걸고 몸짓을 하는 로봇이다. 실제로 이 로봇들은 키오스크가 하지 못했던 일, 즉 사람의 발길을 붙잡는 일에서는 분명한 성과를 낸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걸음을 멈춘 손님의 지갑을 여는 단계까지 데려다줄 수 있는가는 전혀 다른 질문이기 때문이다.
이 질문을 정면으로 검증한 연구가 있다. 오사카대학교(The University of Osaka)에 적을 둔 사이버에이전트(CyberAgent) 연구팀이 이시구로 히로시(Hiroshi Ishiguro) 교수와 함께 올해 3월 발표한 논문 「측정치에서 의미로: 리테일 로봇 배치에 관한 혼합연구방법 현장 실험(From Metrics to Meaning: Insights from a Mixed-Methods Field Experiment on Retail Robot Deployment)」이다. 연구팀은 일본의 한 침구 매장에서 12일간 세 가지 조건, 즉 로봇이 없는 조건, 로봇만 놓은 조건, 로봇을 전용 진열대와 함께 배치한 조건을 각각 나흘씩 번갈아 운영하며 6만 명이 넘는 손님의 동선을 촬영해 분석했다. 입구에 세운 것은 30센티미터가 채 안 되는 소형 휴머노이드 로봇 '소타(Sota)'였다.
결과는 정확히 절반의 성공이었다. 로봇과 진열대를 함께 놓았을 때, 걸음을 멈추는 손님의 비율은 로봇이 없을 때보다 세 배 넘게 늘었다. 사람을 세우는 일에서만큼은 로봇의 효과가 확실했다. 그러나 멈춰 선 손님이 점원의 응대를 받는 비율은 로봇이 없을 때 약 20%에서, 로봇과 진열대가 함께 있을 때는 5%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매장 안으로 들어간 비율과 실제 구매로 이어진 비율도 같은 방향으로 낮아졌다. 다만 지나간 손님 전체를 기준으로 보면 최종 구매율 자체는 세 조건 사이에 의미 있는 차이가 없었다. 로봇이 사람을 더 많이 불러 세웠지만, 그 관심을 판매로 옮기는 몫까지 대신하지는 못한 셈이다.
현장에서 함께 일한 점원들의 이야기는 이 간극이 왜 생겼는지를 보여준다. 로봇과 손님의 대화가 언제 끝나는지 가늠하기 어려워 끼어들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로봇에게 몰린 관심은 주로 아이들에게서 나왔는데, 침구처럼 값이 나가는 물건을 사는 결정은 결국 부모의 몫이었다. 로봇이 만들어낸 접점과 실제 구매 결정권자 사이에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거리가 있었던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이 결과를 로봇 성능의 한계로 읽는다면 핵심을 놓친다. 이 연구가 보여주는 것은 로봇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아니라, 로봇의 역할과 사람의 역할이 저절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로봇은 시선을 끌고 걸음을 멈추게 하는 일에 최적화된 존재다. 반면 값비싼 물건을 사도록 설득하고, 망설이는 손님의 표정을 읽고, 적절한 순간에 한 걸음 다가서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판단 영역에 남아 있다. 이 둘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 이를테면 로봇이 대화를 마무리하며 직원을 부르는 신호나 점원이 개입할 타이밍을 알아채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면, 로봇이 만든 관심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흩어지고 만다.
이 구조는 매장에서 끝나지 않는다. 병원 안내 데스크, 공항 라운지, 은행 창구에도 대화형 로봇이 하나둘 자리를 잡고 있다. 이런 공간에서 로봇의 역할은 대개 첫 접점, 즉 사람을 불러 세우고 기본적인 정보를 안내하는 데 머문다. 정작 복잡한 상담이나 예외적인 상황에 대한 판단은 여전히 사람의 몫으로 남는다. 그런데 로봇이 만든 접점을 사람에게 매끄럽게 넘기는 절차가 미리 설계되어 있지 않다면, 로봇은 눈길만 끄는 장치로 그치고 정작 필요한 서비스는 완성되지 못한다. 로봇을 들이려는 기관일수록 성능 수치보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은 하나다. 이 로봇이 만든 관심을 누가, 언제, 어떻게 이어받을 것인가.
우리는 그동안 피지컬 AI를 사람의 일을 얼마나 대신할 수 있는가로 가늠해왔다. 그러나 지금 매장과 병원과 공항에서 벌어지는 일은 다른 질문을 요구한다. 로봇이 잘하는 일과 사람이 잘하는 일은 처음부터 다르다. 로봇은 시선을 끌고, 사람은 신뢰를 쌓아 결정을 이끌어낸다. 이 둘을 하나의 능력으로 뭉뚱그리는 순간, 우리는 로봇이 할 수 없는 일을 로봇에게 기대하거나, 로봇이 만든 기회를 사람이 놓치는 두 가지 실패를 동시에 떠안게 된다.
키오스크 다음에 오는 것은 사람을 대신하는 로봇이 아니다. 사람과 역할을 나누어야 비로소 제 몫을 해내는 로봇이다. 그 경계를 얼마나 섬세하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로봇 곁의 사람은 밀려나는 존재가 될 수도,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최홍규 연구위원(EBS) / 미디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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