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36주 임신중지' 무죄…통제 넘어 '안전한 재생산권'으로
2026-08-12 06:00:00 2026-08-12 06:00:00
"34주 이상 산모는 일반 산부인과에서 임신중절 수술을 안 해줍니까? 그럼 어디로 가야 합니까?"
 
"저도 그걸 묻고 싶습니다."
      
지난 6월23일, '36주 임신중지 살인 혐의' 항소심 공판 증인신문 과정에 오간 질의응답입니다. 증인으로 출석한 산부인과 전문의 오정원씨는 임신 후기 임신중절에 대해 학계 논의도, 명확한 수술 가이드라인도 없어 현장 의료진과 산모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앞서 2019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림에 따라, 2021년부터 낙태죄 처벌 조항은 법적 효력을 상실했습니다. 당시 헌재는 임신의 유지와 출산 여부가 여성의 삶 전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결정이라고 판단했으며, 임신한 여성과 태아의 안위가 일치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하지만 국회와 정부는 대체 입법 마련을 미루며 입법 공백을 방치하고 있습니다.
 
임신중지가 더는 형사처벌 대상이 아님에도 언제, 어디서, 어떤 절차와 기준에 따라 안전하게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지는 전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제도적 공백 속에서 36주 임신중지 사건이 발생한 겁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안전한 '재생산권'을 보장할 대책을 마련하기는커녕 처벌에만 몰두했습니다. 보건복지부가 직접 수사를 의뢰했고, 검찰은 무죄를 선고한 2심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습니다.
 
돌아보면 한국 사회에서 임신과 출산은 개인의 존엄과 권리보다 국가의 인구정책에 따라 통제받아 왔습니다. 인구 감축이 과제였던 1970~1980년대엔 '월경조절술'이라는 이름으로 임신중지를 사실상 장려했습니다. 반면 저출생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된 2000년대 후반엔 사문화됐던 낙태죄를 다시 꺼내 들었습니다. 심지어 국가 정책과 시설 수용 과정에선 장애인과 한센인을 대상으로 강제 불임·중절 수술이 자행되기도 했습니다. 국가는 필요에 따라 누구에게는 '낳지 말라' 하고, 누구에게는 '낳으라'고 강요해 온 셈입니다.
 
이제 임신과 출산을 처벌과 인구 통제의 수단으로 바라보던 시대를 끝내야 합니다. 지난달 23일 항소심 재판부는 해당 임신부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임신한 여성이 자신의 신체를 임신 상태로 유지하여 출산할 것인지 여부에 대하여 결정할 수 있는 권리는 헌법상 보장되는 일반적 인격권에서 파생되는 자기결정권에 해당한다"고 판시했습니다. 임신과 출산을 국가가 관리할 인구 과제가 아니라, 개인의 삶과 기본권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는 점을 다시금 확인해 준 셈입니다. 
 
임신중지는 보건의료체계 안에서 정당하고 안전하게 다뤄져야 할 필수 의료서비스이자 삶과 건강의 문제입니다. 국가는 아이를 낳을 권리와 낳지 않을 권리, 나아가 낳은 아이를 안전한 환경에서 양육할 권리까지 포괄하는 재생산권을 제도적으로 촘촘히 보장해야 합니다. 낙태죄가 사라진 빈자리를 또다시 형벌과 처벌로 채워선 안 됩니다. 안전한 보건의료와 복지 체계로 채워 넣는 것이야말로 이번 무죄 판결이 국회와 정부에 던진 엄중한 숙제입니다. 
 
신다인 공동체부 기자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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