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나운 말들의 세상이다. 물어뜯고, 할퀴는 말들이 넘쳐난다.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사람을 공격할 때는 물론이거니와 한때의 동지였고, 지금도 동지라고 하면서도 적대의 말을 퍼붓는다. 사람에 대한 예의, 존중은 온데간데없다. 이런 현상은 언제부터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을까? 인터넷이 발전하고 생활의 필수재가 되면서 더해졌던 것 같다. 이제는 그 자리를 유튜브가 차지한다. 유튜브를 장악한 권력이 있게 마련이고, 그 유튜브 권력들이 진영을 가르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모은다. 구독자 수가 권력이 되어 있고, 동접자(동시접속자) 수가 그 진영의 결속 정도를 가리킨다.
이런 사나운 말들이 난무하는 곳에서는 사회가 깨지기 쉽다. 10년도 더 전에 나온 김현경 교수의 책 『사람, 장소, 환대』를 찾아서 읽게 된 건 요즘의 말들이 너무 험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사회는 전쟁을 가장자리로 밀어내고 확보한 우호의 공간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사회 안에도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난다. 각종 구분과 차별이 생겨나고, 그로부터 배제되는 사람들이 있다. 이유도 많다. 여자니까, 성소수자니까, 장애인이니까 이주민이니까 이곳에 낄 수 없다며 소외시키고 배제한다. 우리는 누구를 환대해 본 적이 있을까? 과거에 내게 상처를 준, 아니면 내 가족이나 친구, 동지에 상처를 준 자는 적이다. 그런 곳에서는 환대가 있을 수 없다. “신원을 묻지 않는, 보답을 바라지 않는, 복수하지 않는 환대. 사회를 만드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 절대적 환대이다.”
한 사회에 사람이 오는 경로는 다양하다. 그 사회에 태어난 사람은 선택권을 갖고 태어나지 않았다. 태어나 보니 그 사회다. 선택해서 그곳으로 오는 사람들도 있다. 이주민들이 그렇다. 우리는 이주민들이 없으면 살 수 없다. 이미 그들은 우리 사회 곳곳에 들어와 노동을 하고, 소비를 하고, 이웃이 되어 있다. 그들을 피부색을 이유로, 가난을 이유로 차별하는 것이 당연한가? 그들을 우리 사회에서 밀쳐내려고 하기보다 그들을 사회 안에 받아들여서 같이 살아가자고 해야 한다. 이미 그들 없이는 우리 사회는 작동하지 않는다.
“돈, 거짓말, 신”이 민주주의를 파괴한다고 말한 사람은 캐서린 스튜어트(Katherine Stewart)다. 미국의 극우 반민주주의 세력의 권력 설계 과정을 추적했다고 소개되는 책에서다. 이 책에서 캐서린은 ‘자금 제공자, 사상가, 하사관, 보병, 파워 플레이어’가 반민주주의 운동을 이끈다고 주장한다. 이 중에 파워 플레이어는 이들을 모두 엮어서 권력으로 전환하는 사람이다. 트럼프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에게는 신뢰나 팩트가 중요하지 않다. 우리나라의 정치인들도 트럼프를 닮아가는 것인가. 천박하고, 저급한 언어, 거짓말을 버젓이 해대는 정치인들을 우리는 너무도 쉽게 볼 수 있다.
파워 플레이어들의 말은 힘이 있다. 그 힘으로 칼을 휘두른다. 혐오 표현의 발화 지점이 대개 정치권인 이유다. 피해자들, 사회적 약자들이 칼을 받는 대상이 된다. 그럴 때 사회는 존속하기 어렵다. 혐오 표현은 사회를 깨는 무기가 된다. 그런 혐오 표현을 규제할 힘은 시민들의 예의 바른 언어생활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을까? 민주적 언어공동체를 만드는 일은 사회를 강하게 만드는 것이고, 그곳은 연민과 배려와 존중의 문화가 자리 잡을 것이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을 나는 믿는다. 절제된 언어가 품격을 만들고, 존중을 낳는다. 말이 칼이 되어 서로를 죽이려는 곳에서 사회는 깨져나간다. 대화하는 것은 경청하겠다는 것이고, 거기에서부터 사회는 새로 세워진다. 혐오와 조롱이 아니라 환대의 말, 거기에 희망이 있지 않을까?
10월의 끝에는 이태원 참사 4주기가 있다. 혐오의 말에 상처 입었던 유가족과 피해자들이 이번 10월에는 환대의 언어로 위로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박래군 4.16재단 운영위원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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