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에 나온 차태현 주연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서빙고 얼음 얘기이다. 일반 대중들은 600여 년 전 조선 건국 때부터 빙고(氷庫: 얼음 창고)가 있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했고 서빙고역이 왜 서빙고역인지 관심이 별로 없었을 때였다. 아무도 성공하리라 예상치 못했던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왜 제목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인지 명확한 정보를 줄 수 없던 터라, 마케팅도 어려웠고, 그렇고 그런 조선 사극 코미디로만 포장돼 시장에 나왔다. 그런데 의외로, 너무 재미있다는 입소문과 함께 영화는 490만이 넘는 관객을 모았다.
2012년 여름의 극장가는 활활 타올랐다. 최동훈의 <도둑들>이 나왔고 천만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가 나왔다. 할리우드는 크리스토퍼 놀런의 배트맨 영화 <다크 나이트 라이즈>로 한국 극장가를 싹쓸이하고 싶어 했다. 그 와중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500만 가까이 관객을 끌어모은 것이다. 이 영화의 흥행 성공은 한국에 서빙고란 얼음 창고가 있었다는 역사를 일깨워 주었는데, 아이러니한 것은 서빙고가 있었던 서빙고역은 지금으로 따지면 서부이촌동이 아니라 동부이촌동에 가깝게 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얼음 창고로 동빙고도 있었는데 자료를 찾아보면 처음엔 지금의 옥수동 어디쯤 설치되었다가 연산군 때 지금의 동빙고동 쪽으로 옮긴 것으로 나온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서빙고의 얼음을 터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한 장면.(사진=NEW)
냉장고가 없던 조선시대에 얼음 창고 관리권을 쥐고 얼음을 독점하는 자, 돈을 갈퀴로 긁어모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얘기이다. 주인공 ‘도둑’ 차태현 일당은 좌의정에게 복수할 일념으로 그가 관리하는 서빙고를 털 계획을 짠다. 어떤 과학적 원리인지는 (구태여 설명할 필요도 없다고 봐서) 잘 모르겠지만 겨울에(1월) 꽁꽁 언 한강의 맑은 얼음을 가로세로 규격대로 잘라서 창고에 보관해 그해 늦여름까지(9월) 주로 왕실에 봉납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임금은 얼음 띄운 화채를 먹고 냉면을 먹었다는 얘기이다) 물론 남는 얼음은 민간 백성들…보다는 양반가에 주로 고가로 팔리던 상품이었던 모양이다. 따라서 얼음 장사로 돈을 번 곳, 상권이 만들어진 곳이 지금의 동부이촌동이다. 그러던 곳에 용산 미군기지가 들어 오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한강 맨‘숀’)까지 조성되고 미 군무원 가족들과 외국인(주로 일본인)들이 거주하는 동네로 변하면서 부촌으로 변해 나갔다. 동부이촌동을 전통의 부자 동네라 부르는 이유이다.
이촌동은 일본식 주점, 이자카야가 많았던 곳으로 유명했다. 한국의 리틀 도쿄라 불렀다. 지금도 남아 있는 ‘와세다야’ 같은 화로구이 식당은 일본식 야키니쿠 선술집으로 유명한 곳이다. 비싼 곳이어서(우설 등 고급 고기를 판다) 자주 가지 못했던 곳이다. 스시집 이름 중에 국(菊)의 일본식 이름으로 간판을 걸었던 ‘기꾸’란 곳은 한국에 스시 교관학교처럼 불리던 곳이었다. 역시 한자로 ‘菊’을 써놓고 ‘국화’로 불리던 한일 퓨전 일식집도 성행했다. 지금은 다 사라졌다. 이촌동 우동의 전성기를 이끈 ‘보천’은 간판을 한자인 ‘寶泉’으로 걸었다. 보물 같은 샘이란 뜻으로 우동 국물이 실로 보물 같은 맛이었다. 보천이 문을 닫은(2017년) 것은 동부이촌동의 문화적 퇴락을 알리는 시그널이었다. 이후 기꾸도 국화도 다 문을 닫았다. 코로나19 이전의 일이다.
한국의 리틀 도쿄라 불리는 서울 이촌동에 위치한 이촌시장.(사진=오동진)
아무리 부자 동네더라도(아파트값이 30~60억 원) 늘 서민들은 골목을 파고든다. 동부이촌동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이촌시장이 그런 곳이다. 거기에는 실내 포장마차가 하나 있다. 이름이 ‘한길포장마차’이다. 시장에서 장사한 지 45년이 넘었다. 남자 사장은 이미 세상을 달리했고 지금은 그와 닮은 아들이 가게를 운영(하는 척)한다. 사장의 아내이자 주방장이고 실질적인 사장인 부인은 지금도 닷찌 건너편에서 해물 모둠을 썰어서 내놓는다. 싸다. 한 접시에 3만원이다. 이 코너의 중심 메뉴인 소맥(소주 한 병, 맥주 두 병)을 먹는데 4만5천원이면 된다. 가성비가 좋다고 이제는 사방팔방 꽤 알려져서 오후 4시에 오픈런을 하지 않으면 자리를 잡을 수가 없다. 술집이 너무 알려지면 안 되는 이유이다.
한길포장마차에 자리가 없으면 좁은 골목길 대각선 횟집 ‘회사랑’으로 가면 된다. 여기도 장사한 지 올해로 18년째다. 주인장이 어느덧 반백이 돼 있다. 기본 안주로 청어구이가 나온다. 잿방어 회가 5만원 선인데 주인장이 좀 비싼 데 괜찮냐고 먼저 물어볼 정도로 가성비를 생각해 주는 곳이다. 회사랑에 자리가 있는 이유는 술집 안에서 퍼질러 앉아 술을 마시는 사람은 노년층일 뿐 젊은 커플들은 대개 포장으로 주문해서 한강공원으로 가기 때문이다. 아니면 한강에 먼저 자리를 잡고 전화로 배달 주문하는 젊은이들도 많다. 싸고 맛있는 곳으로 정평이 나 있다. 다만 어깨가 구부정해진 사장이 유머가 많은 사람인데도 장사 오래 하니 힘들어 죽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자영업은 육체적으로 힘이 든다. 정부가 자영업자를 지원해줘야 하는 이유이다. 이러다 자영업 다 문 닫게 됐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추석 명절이라고 고향 집에 내려가는 풍속도는 여전하긴 해도 많이 바뀐 것이 사실이다.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산다는 말도 이제는 정확하지 않다. 대체로 경기도권에 산다. 경기도의 인구는 1400만이 넘는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추석 당일에 지하철과 전철을 이용해 부모 집으로 간다. 부모들도 굳이 오라고 하지 않는다. 추석 연휴에 해외여행을 가는 젊은 커플들이 엄청난 숫자를 차지하고 있고, 서울과 경기권 도시를 배회하며 오랜만에 술 모임을 하는 친구들도 많다. 추석 연휴에 문을 닫지 않는 선술집이 늘어나는 이유이다. 연휴이니만큼 조금 과하게 마신다고 한들, 술의 신 바쿠스가 살펴줄 것이다.
추석 무렵은 전어 철이다. 전어회 맛은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말이 있는데 어디서 유래한 것인지 좀 따져 볼 일이다. 전어는 한자로 쓸 때 돈 전 자를 써서 錢魚라 하는데 이게 돈 생각하지 않고 한 번에 살 때 쓸어 담는다는 유래를 가져서인지 아니면 그만큼 비쌌기 때문인지 그때그때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추측하건대 생선이 크기가 작고(15cm) 다른 생선을 살 때 덤으로 주는 것이어서 아무래도 ‘싼값’ 때문에 생긴 말로 보인다. 전어는 추석 전에 먹는 방식과 추석 즈음에 먹는 방식이 좀 다르다. 아직 덜 자란 전어를 뼈째 회로, 세꼬시로 먹는다. 추석 전이다. 추석 때 식탁에 올라오는 전어는 뼈가 억세졌기 때문에 회 보다는 구이로 먹는 게 좋다. 전어를 구울 때 얼마나 고소한 냄새가 났으면 집 나간 며느리가 돌아온다는 소리까지 나왔겠는가. 그만큼 고부 갈등이 일상화된 집이 많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전어를 잘 나누어 먹는 집, 평화가 있을지어다, 이다.
전어를 먹을 때 세꼬시로 먹느냐, 구워 먹느냐에 따라 술을 달리해야 한다. 전어세꼬시를 소주와 곁들여 먹는 필자.(사진=오동진)
자, 알코올 일지의 본 업무로 돌아가겠다. 전어를 세꼬시로 먹을 때의 술과 구워 먹을 때 같이 먹는 술은 좀 구별할 필요가 있다. 세꼬시는 식감이 좋은 회다. 회에 레드 와인은 금물이다. 비린내가 난다. 와인을 먹으려면 화이트 와인이 좋다. 소비뇽 블랑이 좋은데 공연히 5만원 이상짜리를 살 필요는 없다. 2만5천원 정도에도 훌륭한 소비뇽 블랑이 많다. 와인파가 아니라면 당연히 소주다. 세꼬시에는 그냥 소주를 마시는 게 좋다. 꼬들꼬들한 식감을 더하기에는 청량한, 차갑게 냉장된 소주가 제격이다. 15.9도 같은 낮은 도수는 청량감이 덜하다. 19도 대의 소주가 맞다. 전어구이에는, 평소 습성과는 다소 달라도 막걸리를 마시는 게 좋다. 맥덕들은 당연히 맥주를 마시되 이때는 IPA 계열보다 라거를 마시는 게 좋다. 고소미를 배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럴 때는 당연히, 소맥으로 가야 한다. 전어를 먹을 때도 술꾼들이라면 여러 가지를 고려하고 배려해야 한다. 이왕 마시고 먹는 거, 맛있고 즐겁게 마시는 게 인생에서는 ‘장땡’이다. 하나 더 있다. 싸게 먹어야 한다.
추석 연휴, 별다른 계획이 없다면 신도시 보다는, 오래된 동네 전통시장을 다녀보는 것도 별미의 휴일 맛이다. 이촌시장에서 오후 4시에 오픈런을 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아 뭐, 오픈런에 실패하면 정말로 마음을 크게 먹고 포장 주문해서 한강변으로 나가는 것도 좋다. 다만 나이 먹은 사람들은 되도록 그러지 않는 게 좋다. 보기에도 별로 예쁘지 않고 몸도 힘들 것이다. 술이란 게 젊고 예쁠 때 많이 먹고, 여기저기서 이것저것 다양하게 먹으면 좋다. 젊었을 때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야 한다. 젊음은 특혜다. 젊은이들이 많이 먹고 잘 마시게 하는 나라가 잘 사는 나라다. 서빙고역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다. 거기는 괜히 가보시지 않아도 된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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