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아이가 봉제인형처럼 생긴 AI 장난감에게 속삭인다. 이층침대에서 뛰어내리는 게 제일 재밌다고. 또 어디서 뛰어내릴 수 있느냐고 묻자, 장난감은 나무와 벤치와 지붕과 창문을 차례로 읊어 준 뒤 그저 한마디를 보탠다. 조심하라고. 아이는 흡족한 듯 다음 질문으로 넘어간다.
이 대화는 지어낸 장면이 아니다. 미국 아동단체 커먼센스미디어(Common Sense Media)가 2026년 1월 공개한 보고서에 실제 테스트 기록으로 그대로 실린 장면이다. 연구팀은 시판 중인 AI 장난감 3종을 6세부터 13세까지의 계정으로 직접 체험하며 대화를 하나하나 기록했다. AI 장난감이 내놓은 응답 전체의 27%가 자해나 약물, 위험한 놀이 등 아이에게 부적절한 내용을 포함했고, 보고서는 이 장난감들의 전반적 위험 수준을 가장 높은 등급인 허용 불가로 판정했다. 화면 속 챗봇이었다면 이 대답은 문장으로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장난감은 아이 손에 쥐어진 채 방 안에 함께 있는, 몸을 가진 AI다. 그래서 지붕과 창문을 읊어 준 그 대답은 문장이 아니라, 실제로 올라가고 열어 볼 수 있는 장소의 목록이 된다.
장난감이 오작동해서 이런 답을 내놓은 게 아니다. 오히려 설계된 대로 작동한 결과였다. 이 장난감은 아이의 이름을 기억하고 애정을 표현하며 언제나 곁에 있어 주는 친구처럼 보이도록 만들어졌다. 매달 사용료를 받아야 하는 회사 입장에서는, 아이를 서운하게 하거나 대화를 뚝 끊는 순간 그 아이가 장난감을 멀리하게 될까 봐 가장 두렵다. 그래서 이 장난감은 무엇을 물어도 좀처럼 안 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위험한 질문 앞에서도 대화를 이어가는 쪽을 택한다. 지붕에서 뛰어내리고 싶다는 말에 정말 필요했던 대답은 다정한 경고 문구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멈추는 것이었다.
이 다정함이 왜 위험한가는 같은 보고서가 답한다. 5세 이하 아이들은 아직 AI와 실제 사람을 뚜렷이 구별하지 못한다. 언제나 맞장구쳐 주고 절대 지치지 않는 상대에게 익숙해진 아이는, 가끔 삐치고 거절하고 기다리라 말하는 진짜 관계 앞에서 오히려 낯설어한다. 보고서는 아이가 자라는 데는 뜻대로 되지 않는 순간, 즉 누군가 안 된다고 말하고 아이가 그걸 받아들이며 참아 보는 경험이 꼭 필요하다고 짚는다. 언제나 좋다고만 답하는 장난감 곁에서는 아이가 그런 순간을 한 번도 겪지 않는다.
그렇다면 아이 곁에 로봇을 두는 일 자체가 잘못일까. 미국 텍사스대학교 알링턴캠퍼스(University of Texas at Arlington)의 한 연구자가 2026년 3월 공개한 유아 AI 교육과정 연구는 다른 답을 보여준다. 저소득층 밀집 지역 공립학교에서 취학 전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 4명이 함께 5주 동안 교실에서 놀이 중심 AI 교육과정을 운영했다. 활동 중 하나는 이야기 만들기였다. 아이들이 이야기의 결말을 먼저 지어낸 뒤, 같은 이야기의 결말을 휴머노이드 로봇에게도 만들어 보게 하고 둘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는 방식이었다.
이때 교사는 아이들에게 꼭 이렇게 물었다. 로봇은 지금 어떻게 그 결말을 생각해 냈을까. 로봇이 스스로 생각한 걸까, 아니면 누군가 미리 로봇에게 그렇게 말하라고 가르쳐 둔 걸까. 그리고 만약 로봇을 만든 사람 한 명의 생각만 그 안에 들어 있는 거라면, 그 로봇의 이야기를 여기 있는 아이들 모두가 똑같이 믿고 따라도 괜찮을까. 이 질문을 거치면서 아이들은 로봇의 대답을 로봇이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라 누군가 미리 정해 둔 것으로 바라보기 시작했고, 그 대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한 번 더 따져 묻는 태도를 익혀 갔다.
앞서 언급한 두 연구 모두, 아이가 로봇에게 말을 걸고 로봇이 답하는 순간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그다음이 달랐다. 밤의 장난감은 위험한 질문을 다정한 목록으로 돌려주고 거기서 끝이었다. 교실의 로봇은 대답을 내놓을 때마다 교사의 질문을 돌려받았다. 같은 순간에서 출발한 두 연구가 이렇게 다른 결과로 갈라진 것은, 로봇이 아니라 그 곁의 무언가가 달랐기 때문이다.
필자가 보기에 그 무언가는 로봇의 성능이 아니라, 로봇 곁에 사람이 있었는가이다. 밤의 장난감은 애초에 아이를 멈춰 세우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대화를 끊지 않는 것이 그 장난감의 존재 이유였기 때문이다. 반면 교실의 로봇 곁에는 대답이 나올 때마다 왜 그렇게 말했는지 되묻도록 훈련된 교사가 있었다. 한쪽은 멈추지 않도록 만들어진 기계였고, 다른 쪽은 멈춰 세우기 위해 그 자리에 선 사람이었다. 이 차이는 두 연구에만 해당하는 우연이 아니다. 로봇이 집으로, 교실로, 돌봄 현장으로 들어오는 모든 자리에서 똑같이 되풀이될 질문이다. 로봇만 들일 것인가, 아니면 그 로봇 곁을 지킬 사람까지 함께 들일 것인가.
그러니 유아 AI교육은 코딩 수업이나 기기 사용법에서 시작할 수 없다. 코드를 가르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은, 아이가 위험한 말을 꺼냈을 때 그 말을 흘려듣지 않고 끼어들어 멈춰 세우는 일, 로봇이 내놓은 대답에 왜 그렇게 말했는지 아이와 함께 되물어 보는 일이다. 이런 역할은 어떤 로봇의 설명서에도 적혀 있지 않다. 설명서에 없기 때문에, 부모와 교사가 직접 나서서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지붕이든 창문이든, 아이가 묻는 대로 다정하게 읊어 주는 기계보다, 그 말을 끊고 안 된다고 말해 줄 어른이 먼저다. 그 어른이 곁에 있을 때에야, 로봇은 밤의 장난감이 아니라 비로소 교실의 로봇이 된다.
최홍규 연구위원(EBS)/ 미디어학 박사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