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갯벌 바람이 제법 서늘해지는 이맘때면, 충남 서천의 조용한 섬 유부도는 전 세계 탐조객과 조류학자들의 열기로 뜨겁게 달아오릅니다. 거친 바닷바람을 맞으며 만조 때 망원경을 모래사장에 고정하고 기다리는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세상에서 가장 희귀하고 특별한 새 ‘넓적부리도요’를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넓적부리도요가 유부도 갯벌에서 세가락도요, 좀도요 무리 속에서 먹이 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새를 접하는 일은 그야말로 ‘백사장에서 바늘 찾기’입니다. 갯벌 위로 수만 마리의 도요새와 물떼새 군무가 장관을 이루지만, 그 엄청난 새 떼 속에서 겨우 2~3마리 남짓 섞여 있는 넓적부리도요를 가려내기란 하늘의 별 따기지요. 저 역시 지난 세월 수없이 유부도 갯벌을 드나들며 카메라를 메고 발품을 팔았지만, 녀석을 렌즈에 제대로 담아낸 순간은 겨우 다섯 번에 불과합니다. 그만큼 이 새와의 만남은 노력과 운이 따라야 합니다.
넓적부리도요는 크기가 겨우 14~15cm 정도로 참새만큼이나 작고 귀여운 새입니다. 모습은 얼핏 보면 민물도요나 왕눈물떼새 같은 흔한 유사 종과 매우 닮았습니다. 멀리서 무리 지어 있을 때는 구별하기가 정말 힘들지요. 하지만 녀석만의 결정적인 보물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이름처럼 주걱이나 숟가락을 닮은 까맣고 특이한 부리입니다. 이 특수한 부리를 물속에 넣고 머리를 부지런히 휘저으며 갯벌 속의 갯지렁이나 작은 갑각류를 훑어 먹는데, 그 모습이 마치 작은 아이가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는 것처럼 귀엽고 애틋합니다.
이 작은 새가 품고 있는 생명력과 이동 거리를 생각하면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넓적부리도요는 북극에 인접한 러시아 북동부 시베리아의 극지 툰드라 지대에서 알을 낳고 번식합니다. 추위가 찾아오는 가을이 되면 남쪽으로 길을 떠나 한반도의 서남해안 갯벌을 중간 기착지로 삼아 쉬어 가고, 최종적으로는 호주나 뉴질랜드까지 수만 킬로미터를 날아가 겨울을 납니다. 지구 반 바퀴를 넘나드는 이 위대한 여정에서 한국의 갯벌, 특히 유부도와 같은 금강 하구 갯벌은 녀석들이 장거리 비행을 위해 에너지와 지방을 충전하는 가장 소중한 쉼터이자 생명의 주유소입니다.
유부도 갯벌에서 넓적부리도요(가운데)가 세가락도요, 좀도요(앞쪽) 사이에서 주변을 경계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 넓적부리도요는 지구상에서 가장 심각한 멸종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전 세계에 남아 있는 야생 개체수가 겨우 300여마리 남짓으로 추정될 만큼 극도로 위험한 상태입니다. 갯벌 매립으로 인한 서식지 파괴와 연안 개발, 그리고 번식지의 환경 변화로 인해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든 탓입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취약한 생명체 중 하나가 되어버린 셈이죠.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이 작고 소중한 새의 종 존속을 위해 전 세계 국제기구와 환경단체들이 비상에 걸렸습니다. 대표적으로 영국의 야생조류습지재단(WWT)과 모스크바 동물원, 국제조류보호협회(BirdLife International) 등이 연합하여 대대적인 인공증식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습니다.
학자들은 러시아 번식지에서 넓적부리도요가 낳은 첫 번째 알을 신중하게 수거해 안전한 인공부화 시설에서 증식시킵니다. 신기하게도 알을 잃은 어미 새는 즉시 두 번째 알을 낳기 때문에 전체적인 개체수를 늘리는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이렇게 부화한 어린 새들은 사람의 손길을 최소화하며 야생 적응 훈련을 거친 뒤 다시 자연의 품으로 돌아갑니다. 국경을 넘어 지구촌 전체가 힘을 모아 한 종의 멸종을 막아내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다가오는 10월10일은 지구가 품은 모든 철새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세계 철새의 날’입니다. 국경도 없고 비자도 없이 오직 바람을 타고 지구를 이동하는 철새들에게 한반도의 갯벌은 목숨을 걸고 찾아오는 생명의 땅입니다.
유부도 갯벌 아지랑이 속에서 숟가락 모양의 부리로 바쁘게 먹이를 찾던 그 작은 생명의 숨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돕니다. 인간의 욕심으로 빼앗긴 서식지를 되찾아 주고, 녀석들이 마음 놓고 쉬어갈 수 있도록 갯벌을 지켜주는 일. 그것이야말로 시베리아에서 호주까지 긴 여행을 이어가는 넓적부리도요에게 우리가 전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응원이 아닐까 싶습니다. 부디 올가을에도 그 고마운 작은 날갯짓이 무사히 우리 갯벌에 닿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글·사진=김연수 생태칼럼니스트 wildik02@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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