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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초등학교 반장선거만도 못했던 새누리 당대표 선거
2016-08-15 10:41:15 2016-08-16 17:22:10
작열하는 8월의 태양만큼이나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찬 무도회장이 있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은 한동안 이어온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에 종지부를 찍고 새 지도부를 선출하기 위한 전당대회 개막을 선언했다. 더민주보다 한걸음 앞서 신호탄을 울린 새누리 당대표 후보들은 표심을 끌어 모으기 위한 전국 합동연설을 거쳐 지난 9일 지도부를 뽑는 전당대회를 열었다. 선거 결과 ‘친 박근혜계’(친박) 후보인 이정현 의원이 당대표로 선출되어 피날레를 장식했다.
 
이 과정에서 새누리 후보들이 보여준 행태는 삼류 코미디를 방불케 했다. 대한민국 집권 여당대표를 뽑는 선거에서 후보들의 연설은 초등학교 반장선거만도 못했다. 수사에 불과한 공약이 남발되는 와중에 공약을 실천하기 위한 방법론이나 페어플레이 정신은 찾아볼 수 없었다. 후보로 나선 이주영, 한선교, 이정현, 주호영 의원은 경력만 놓고 봤을 때 굵직한 중견 정치인임을 부인할 수 없지만 유세를 보고 있노라면 그에 걸맞은 진지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쟁점을 이슈화하지도 못했다. ‘남는 것 요만큼 있으면 저 좀 주십시오’라고 표를 구걸하는 후보들의 발언에 계파 갈등과 '오더 투표 지령' 논란으로 인한 난타전까지 더해지며 온갖 진풍경이 벌어졌다. 누구하나 당 혁신이나 재집권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단지 친박의 응집력 앞에 ‘비박’이 맥을 못 추고 KO패 당하는 모양새가 됐다.
 
프랑스 정치학자 베르나르 마냉이 그의 저서 <선거는 민주적인가>를 통해 선거의 비민주성을 고발했듯이 새누리 전당대회는 선거의 허점만을 재차 확인해 준 가면무도회에 불과했다. 중립을 지켜야할 박근혜 대통령까지 깜짝쇼로 전당대회에 등장해 표심을 흔들어 댔으니 말이다.
 
프랑스는 한국 정치처럼 불안정하거나 변동이 심하지 않다. 비대위 체제도 찾아보기 힘들다. 통상 당 규약에 따라 정기적으로 전당대회를 열고 지도부를 뽑는 정례행사가 반복된다. 지난 2014년 11월 29일, 프랑스의 우파 정당인 대중운동연합(UMP)이 전당대회를 열고 새로운 당대표를 선출했다. 세 명이 입후보한 가운데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과 농림수산부장관을 역임한 2선 의원인 브뤼노 르 메르(Bruno Le Maire) 양자 대결구도가 됐다.
 
르 메르 후보의 연설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모든 것은 열려있다. 나는 승리를 자신한다. 당원들이 재생과 부흥을 선택하길 호소한다. 나는 이 선거에서 전쟁은 하지 않을 것을 보장한다. 왜냐하면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우리 당의 재건을 위한 헌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2017년 대선 승리를 위해서는 전적으로 융통성 있는 대표가 필요하다. 그 대표는 집단적 작동을 보장해야 하고 새로운 인재들을 발굴해야 한다. 그리고 귀감이 되는 실리적인 정치 능력을 가져야 한다. 우리 당의 프로젝트를 다듬기 위해서는 공정함이 필수다.” 이를 위해서는 본인이 최적의 후보임을 자처하며 지지를 호소했다.
 
사르코지 후보도 “나는 창의적인 방법으로 밑에서 꼭대기까지 변화시키겠다. 전통적 대립은 오늘날 더 이상 현실적으로 맞지 않다. 따라서 3개월 안에 당을 재창당하고 새로운 환경에서 계파적 개념 없이 우파를 다시 끌어 모으도록 하겠다. 또한 2016년 오픈프라이머리를 조직해 차기 대선후보를 뽑을 것을 약속한다. 아울러 전 우파 수상들을 중심으로 위원회를 만들어 정치를 잘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그들의 조언이나 경험을 구하겠다”는 등의 공약을 내걸었다.
 
26만8341명의 UMP 당원들이 투표에 참여한 가운데 64.5%가 사르코지 후보를, 29.2%가 르 메르 후보를 찍었다. 절대 과반을 확보한 사르코지가 새로운 당 대표로 탄생되어 대중운동연합을 이끄는 기수가 됐다. 이렇듯 두 나라의 선거풍경은 참으로 대조적이다. 한쪽은 아마추어들이 준비도 안 된 채 나와 ‘봉숭아학당’을 연상시키는 코미디장으로 선거판을 만들고, 한쪽은 프로들이 자기의 정치구상을 구체화시킨 공약을 바탕으로 한 표를 얻고자 설전을 벌인다.
 
물론 프랑스에 비해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가 일천하기 때문에 이런 식의 절대 비교는 무리일 수 있다. 그러나 선거 과정에서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며 그 비용이 다름 아닌 국민의 혈세로 충당된다는 사실은 양국 모두 다르지 않다. 이 비싼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으로 장식하기 위해서는 우스꽝스러운 퍼포먼스 대신 알맹이가 있어야 한다. 후보들은 좀 더 성숙하고 진지한 태도로 선거공약과 이를 실천하기 위한 방법론을 제시해야 한다. 더민주와 국민의당만큼은 이 점을 명심해 매력적인 전당대회를 열게 되기를 바란다.
 
최인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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