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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곤의 분석과 전망)박기영 파문, 시작-전개-결말 다 최악
2017-08-14 06:00:00 2017-08-14 06:00:00
참여정부에서 과학기술보좌관을 지냈던 박기영 순천대 교수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으로 임명된 지 나흘 만인 11일 낙마했다. 자진사퇴의 형식이지만, 부정적 여론에 버티지 못한 청와대의 ‘결단’으로 해석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번 주에는 큰 이벤트가 두 개나 있다. 15일은 광복절, 17일은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이 되는 날이다. 100일 계기의 기자회견도 잡혀 있다고 한다. 대통령은 물론이고 청와대 참모들이 열심히 준비하고 있겠지만, 시원하게 답하기 어려운 것, 좋은 평가 받기 힘들 것들도 뻔히 보인다.
 
국민들은 안다. 어차피 누가 집권했더라도 금방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라는 것을. 그래도 방향타를 바꾸면 뭔가 물꼬가 트이지 않을까 기대를 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기대를 유지하고 있다. “그래도 이만하면”, “이전에 비하면야”, “북한과 미국 지도자가 저 정도일 줄이야. 문 대통령은 복도 없지”….
 
이런 상황에서 박기영 논란이 터졌다. 어쩔 수 없는 국제적 상황도 아니고, ‘적폐 세력’의 남은 영향력이 발휘된 것도 아니고, 야당이나 보수언론이 무슨 발목을 잡아서 그런 것도 아니고, 진보진영에서 그간 많이 참았다 이젠 더 못 참겠다며 압박을 한 것도 아니고, 여당이 우리 몫도 내놓으라며 몽니를 부린 것도 아니다. 그냥 청와대가 일을 만든 것이다.
 
이번 사태를 그냥 ‘국민의 눈 높이에 맞지 않는 인사 한 명이 차관급 자리에 선임됐다가 여론의 반발에 부딪혀 낙마한 것’식으로 정리할 순 없다. 복기해보자. 지난 7일 과학기술혁신본부장 인사 발표 직후 청와대 대변인은 짜여진 몇 문장 외엔 선임 배경을 설명하지 못했다. 황우석 사태 책임론에 대한 박기영 교수의 해명을 묻자 "이 문제에 관해서 본인이 어떤 입장을 표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고 답했다.
 
비상식적인 이야기였다. 대변인 말을 믿는다손 치더라도 박 교수의 입장을 미리 안 물어본 인사검증담당자, 뻔히 질문이 나올 걸 예상도 못한 대변인 둘 다 문제였다.
 
그런데 일은 더 이상하게 돌아갔다. ‘친문’소리 듣는 여당 의원들이나 청와대 관계자들도 “우리도 잘 모른다. 할 말이 없다”고 입을 다물었다. 선임 배경에 대해서 설명하는 사람도, 나름의 방어 논리를 설파하는 사람도 없었다. ‘대통령 뜻이냐’는 질문엔 묵묵부답만 돌아왔다.
 
그리고 10일 오후 박기영 본부장이 과학기술계 원로들을 대동하고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황우석 사태에 대해 11년 만에 첫 ‘사과’를 하면서 대신 열심히 일하겠다고 했다. ‘구국’을 언급하기도 했다. 몇 시간 후 청와대에서도 긴 브리핑이 나왔다. ‘공’과 ‘과’라는 단어가 나왔고 “참여정부 때 IT과학기술 경쟁력이 가장 높았다”는 주장도 나왔다. 브리핑은 대변인이 낭독했지만, 대통령이 인사 배경을 설명하고 싶어했다는 부연이 뒤따랐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박기영 교수는 사임했다.
 
‘대통령이 나서서 당사자의 명예를 회복시켜준 동시에 국민 여론을 수용한 것’이라는 해석이 뒤따랐다. 그런데 박 교수 본인이 그 다음날 페이스북을 통해 자기 심경을 절절히 털어놓았다.
 
그는 먼저 자신을 마녀사냥의 희생자로 규정했다. PD수첩, 제보자, 언론, ‘줄기세포 연구를 반대하는’ 생명윤리학자, 일부 서울대 교수 등을 가해자로 지목했다. 황우석 사태의 책임을 ‘우리 사회 모두’에게 짊어지운 대신 자기 자신에 대해선 참으로 관대한 태도를 보였다. 논문 공저자로 이름을 올린 행위에 대해서만 “신중하지 못했다”고 자평했을 뿐 그 외 아무 책임도 인정하지 않았다. 대신 “마녀사냥의 재물을 만들어내는 적폐를 청산해야 진짜 민주사회다”고 글을 맺었다.
 
시작도, 전개도, 결말도 다 최악이다. 그나마 낙마한 것이 천만다행이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과학기술혁신본부장직을 수행하며 적폐청산에 나섰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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