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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이야기)최초의 심해수색이 갖는 함의
2018-09-05 06:00:00 2018-09-05 06:00:00
2017년 3월31일은 많은 일이 일어난 날이었다. 그날 새벽에 탄핵 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다. 그날 한 낮에는 목포신항에 3년간 바다 속에 있다가 인양된 세월호가 도착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세월호를 보고 통곡했다. 그리고 그날 밤 지구의 반대편 남대서양 바다에서는 우리나라 배인 스텔라데이지호가 두 동강이 나면서 바다 속으로 침몰했다. 그 바다는 수심이 3000미터다.
 
그 뒤로 많은 일이 있었다. 급박하게 진행된 대통령 선거로 온 나라는 정신을 놓고 있었다. 남대서양에서 침몰한 화물선에 대해서는 언론도 누구도 관심을 갖지 못했다. 그러다가 한 달 뒤인 4월29일, 마지막 촛불집회가 광화문에서 열릴 때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들이 그 집회에 참석해서 울부짖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그들을 안아주었다.
 
문재인 정부가 인수위 과정도 없이 출범한 5월10일, 처음으로 그 가족들이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민원을 접수했다. 문재인 정부 1호 민원이었다. 그 가족들은 주장했다. ‘구명벌’ 한 척이 확인되지 않았고, 거기에는 혹시 선원으로 있던 우리 가족이 생존해 있을 수도 있으니 수색을 해달라고 했다. 희미한 생존 가능성…그것만이라도 확인하고픈 가족들은 쉴 새 없이 청와대와 정부 부처의 문을 두드렸다. 어렵게 추가 수색이 이루어졌지만 ‘구명벌’은 확인할 수 없었다.
 
벌써 1년 5개월이 지난 현재 시점, 누구도 입에 올리지는 못하지만 그 배에 타고 있던 내국인 8명을 포함한 선원 22명이 생존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애타는 시간이 속절없이 흘렀고, 실종자 가족들은 그런 중에도 포기하지 않고 정부에 매달렸다. 이제는 심해수색만이라도 해달라고, 그를 통해서 배 상태라도 확인하고, 혹시 있을 수 있는 침몰의 단서라도 찾을 수 있는 거 아니냐고…그렇게 확인하지도 않고 남대서양 심해에서 실종된 가족들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기는 어려우니깐.
 
실종자 가족들은 침몰현장에 대한 조사 작업을 추진했고, 미국으로 가서 심해수색 전문업체도 만나고 와서는 국회 토론회도 만들어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단 한 번도 없었던 사례를 만들어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정부 관련부처들은 대체로 심해수색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결과에 대해서 확신하기 어려웠던 이유도 있었다.
 
그런데 지난 8월14일,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심해수색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2014년 12월 베링호에서 침몰한 오룡호 사건 때는 한 달간 수색을 한 뒤 정리했다. 실종자 26명이 대한 수색 작업, 배의 인양을 요청했지만 박근혜 정부는 이를 묵살했다. 그래서 이번 결정은 오룡호 사건을 비롯한 다른 사건들과는 다른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결정이 아닐 수 없다.
 
사건 현장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돋보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러기에 중요한 한 발 내딛은 정부에게 이후 과정에서도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하다.
 
남대서양의 해류 때문에 심해수색에 알맞은 시기는 오는 10월이다. 이때를 놓치면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다시 가족들은 걱정이다. 시간이 별로 많지 않은데 이후 업체 선정과 심해수색과정이 제대로 잘 될 것인지에 대한 정부 부처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실력도 없는 업체가 선정되어 천재일우의 기회가 허비되지 않을까 해서다.
 
정부는 이런 과정에 당사자 가족들이 참여한 선례가 없다고 난색을 표하고 있다. 하지만 과정은 투명하게 진행되고, 그 과정에 피해자들이 신뢰를 갖고 참여하게 되는 일이 지금은 필요하다. 1년5개월을 기다린 그 가족들이 수색 과정과 결과를 신뢰할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사람이 먼저’를 모토로 내건 정부가 해야 할 도리다. 스텔라데이지호 심해수색 작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기를 바란다.
 
박래군 뉴스토마토 편집자문위원(pl317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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