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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빨리빨리가 최선은 아니다
2019-05-07 06:00:00 2019-05-07 06:00:00
요즘 한국 언론을 유난히 장식하는 단어 하나가 있다. ‘패스트트랙’이다. 난데없이 등장한 이 신조어가 무슨 뜻인지 의아해 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패스트트랙은 원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빠른 길’이란 뜻으로 어떤 일을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한 절차다.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은 이번에 선거법과, 공수처법, 검·경 수사조정권을 신속 처리하고자 패스트트랙에 태우려 안간힘을 썼고 자유한국당은 이를 끌어내리려 국회를 온통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여야 4당의 의지대로 패스트트랙은 출발했지만 한국당 의원들은 삭발을 하고 국회를 연일 파행으로 끌고 가는 형국이다.
 
이 웃지 못 할 장면을 지켜보면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도 많은 질문이 생긴다. 왜 한쪽은 강행하려 몸부림을 치고, 다른 한쪽은 저지하려 악을 쓰는가. 왜 선거개혁과 같은 중차대한 쟁점을 패스트트랙으로 처리하는가. 신속 처리하면 자칫 졸속이 되기 십상인데… 이런 생각을 하는 건 필자뿐인가. 국민의 목소리를 더욱 반영하기 위해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꾼다 하지만 이 제도에 함정은 없는가. 앞으로 330일 동안 구체화 하겠다 하지만 이렇게 계획안도 없고 국민과 토론도 없이 선거제 개혁은 가능한 것인가.
 
이러한 궁금증을 풀어보기 위해 프랑스의 예를 찾지 않을 수 없다. 공교롭게 프랑스도 우리처럼 선거제도를 개혁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지난 2007년 대선에서 대중운동연합(UMP·공화당 전신)의 니콜라 사르코지 후보, 2012년에는 사회당의 프랑수아 올랑드 후보, 2017년에는 전진의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가 선거제도 개혁을 공약으로 들고 나왔다. 이들은 각기 정당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소선거구제의 지역구 의원을 줄이고 비례대표제를 늘리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공약 이행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프랑스는 소선거구제와 결선투표제를 통해 577명의 국회의원을 뽑는다. 1차 선거에서 모든 정당이 후보를 낼 수 있으나, 2차 선거에서는 대부분 큰 정당의 후보만 살아남는다. 따라서 이 제도는 큰 정당에게 유리하다. 작은 정당들은 연합을 하거나 매우 확고히 정착된 지역에서만 승리할 수 있다.
 
반면에 비례대표제는 다양한 정당이 얻은 표에 따라 의석을 나눈다. 현행 지방선거와 유럽선거는 비례대표제를 적용하고 있어 시민들의 성향에 더 부합하고 파리테(Parite·남녀동수법) 실시에도 유리하다. 왜냐하면 후보자 리스트에 남녀가 번갈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례대표제는 극우당과 환경당, 공산당 등 작은 정당들이 주장한다. 특히 극우성향의 국민전선(FN)은 유럽의회 선거에서 77석 중 24석을 차지해 프랑스의 제1 정당임을 과시했지만, 프랑스 국회에서는 577석 중 단 2석만 가지고 있어 현행 선거제도의 부당함을 주장한다.
 
그렇다면 비례대표제는 장점만 있는 것인가. 사회당 대변인이자 하원의원인 올리비에 포르(Olivier Faure)는 일간지 르 피가로와의 인터뷰에서 비례대표제의 도입은 국회를 ‘분산’시키고 ‘불안정’하게 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공화당 대표 크리스티앙 자코브(Christian Jacob)는 “선거제 개편은 집권여당과 야당 간 정쟁 발발의 원인이 되는 정치조작”이라며 ‘완전 반대’를 표명했다. 따라서 이 주제는 우파들 사이에서도 의견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반대파들은 국회의 불안정성과 분산 위험을 앞세우고 있다.
 
또 다른 이유는 국회가 FN으로 장악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사회당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1981년 집권하자 곧 완전 비례대표제를 도입했다. 그 결과 35명의 FN 의원이 국회에 입성했고 이는 프랑스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그 후 우파가 집권하자 바로 비례대표제를 폐지하고 과거의 시스템으로 환원해 지금까지 별다른 변화가 없다.
 
2012년 올랑드 대통령은 신중히 접근하여 ‘부분적 비례대표제’ 도입을 하자고 주장했다. 그는 먼저 리오넬 조스팽 공직생활 윤리·개혁위원회 위원장에게 이 문제를 연구하게 했다. 조스팽은 2012년 11월 ‘정치의 현대화’에 대한 보고서에서 비례대표제 10%를 신설할 것을 제안했다. 중도우파인 UDI의 대표는 10~20% 사이를 생각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기자회견에서 비례대표제로 20%의 국회의원을 뽑고 지역구 의원을 줄일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아직 결론은 나지 않았다.
 
이처럼 선거제 개편은 결코 간단치 않다. 과연 어떤 식의 개편이 국회를 원활히 작동할 수 있게 할 것인지 곰곰이 궁리해서 디자인할 수 있어야 한다. 현행 한국 국회는 집권여당이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해 어려운 상황이다. 프랑스의 일부 의원들이 비례대표제를 늘리는 것은 국회의 분산과 불안정성을 가져온다고 우려하듯 우리의 선거개혁도 그럴 확률이 더 높아지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프랑스의 극우정당인 FN과 같은 정당이 한국에 등장하지 말란 법도 없지 않은가.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국민의 목소리를 좀 더 반영할 수 있어 그 제도를 도입한다지만 독일과 한국은 엄연히 정치문화가 다르다. 그쪽에서 좋은 제도라지만 우리에겐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점들을 하나하나 꼼꼼히 따져보려면 선거제 개혁은 ‘패스트’로 진행돼선 안 된다. 앞으로 330일 동안 열심히 논의하여 합의점을 찾으면 좋지만 그렇지 않다면 더 시간을 두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큰 쟁점은 결코 빨리빨리로 해법을 찾을 수 없는 법이다.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sookjuliette@yahoo.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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