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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곤의 분석과 전망)위기가 기회 될 수 있다
2019-05-13 06:00:00 2019-05-13 06:00:00
위기가 기회가 되고 악재가 호재가 되는 경우가 많다. 정치에선 특히 그렇다. 그렇게 만드는 것이 정치력이다.
 
9일 일어난 일들을 짚어보자. 문재인 대통령 취임 2주년을 맞은 이날 오후 북한은 미사일 2기를 발사했다.
 
온갖 비아냥을 감수하고 닷새 전 발사된 단거리 지대지 미사일을 '발사체'로 부르던 우리 정부도 곧바로 미사일로 규정할 수밖에 없었다. '발사체'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식량지원을 추진 중이던 정부 입장에서는 황망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날 저녁. 미리 예고된 특집 대담 프로그램에 출연된 문재인 대통령의 메시지는 매우 조심스러웠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의도가 무엇이든 근본적인 해법은 북미 양국이 조속히 대화하는 것이다. 북한도 불만이 있다면 대화의 장에서 밝히는 게 바람직하다"고 우려하면서도 현 상황이 남북합의나 유엔안보리결의 위반은 아니라는 점도 함께 짚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대북식량지원과 관련한 국민 여론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 않겠냐'는 지적에 문 대통령은 "식량 지원에 대해서 한미 간에 합의한 것이 발사 이전인데, 그 이후 또다시 발사가 있었기 때문에 이 점에 대해선 국민 공감과 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또 "여야 정치권 사이에 충분히 논의도 필요하다 생각한다"며 "북에 대한 식량 지원에 대해선 대통령과 여야가 모여 협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차제에 대통령과 여야 회동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그 이전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에서 대북 식량지원을 논의했고, 수용을 이끌어냈다. 당장 지원 가능한 쌀이 30만톤 가량 된다는 관계당국의 계산도 끝났다. 인도적 지원은 국제 규범이나 국내법에 어긋나지도 않는다. 만약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없었다면 한국당이나 보수층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일사천리로 지원이 시작됐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일은 이렇게 됐다. 야당과 합의까지는 모르겠지만 논의와 협의 절차를 안 밟긴 힘든 상황이 된 것이다. 그리고 문 대통령은 이 상황을 야당에 대한 회동 제의로 연결시켰다.
 
이제 공은 야당으로 넘어왔다. 안팎의 상황이 좋지 않은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는 바로 화답했다. 10일 아침에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북한 식량 논의를 위한 영수회담을 제안했다. 모처럼 제안에 일단 환영할 일"이라며 "산적한 국정과제에 대해 여야가 한자리서 흉금을 터놓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한국당도 국정 논의에 적극 참여야 달라"고 말했다.
 
물론 한국당 분위기는 달랐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북한의 미사일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대답은 식량지원이었다"고 공박했다. 여야정협의체에 대해서도 "사실상 여야정합의체는 한국당을 들러리로 세우는 5당의 범여권 합의체가 아니냐"고 비난했다. 하지만 한국말은 끝가지 들어봐야 하는 법. 나 원내대표는 "행정부와 입법부가 의견을 나누는 진정한 의미의 여야정합의체를 요구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더불어 황교안 대표도 이런 저런 꼬리표를 달긴 했지만 회동 자체에 대해선 긍정적 의사를 표명했다.
 
언제까지 밖에 머무를 수도 없고, 원내 복귀 타이밍을 계산하고 있었던 한국당 입장에서도 이번 일은 기회다. 최근 주가를 올린 황교안 대표가 문 대통령과 마주 앉던가, 여야정 협의체 멤버인 나경원 원내대표가 청와대에 가서 '하고 싶은 말'을 하면 되는 것 아닌가?
 
협상 멤버인 민주당 원내대표도 마침 교체됐고, 한국당 입장에선 대통령한테 따질 일도 발생한 상황이라는 이야기다. 한국당 지지층 입장에서도 자기들 리더가 대통령 앞에서 할 말 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겠나?
 
만약 한국당이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다음'이 금방 찾아오긴 쉽지 않을 것 같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taegonyou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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