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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이야기)인권을 진전시키는 장애인들에게 박수를
2019-07-03 06:00:00 2019-07-03 06:00:00
7월1일은 역사에 기록해야 하는 날이다. 31년 만에 장애등급제가 폐지됐기 때문이다. 장애인들을 등급을 매겨서 서비스에 차등을 두어왔던 제도다. 의학적인 판정에 의해서 등급이 결정되고, 그 등급에 따라서 장애인들의 서비스의 질과 정도가 달라지니까 장애인들은 등급을 받을 때면 장애가 더 심한 척, 연기라도 해야 했다.
 
장애 등급이 낮아지면서 활동보조 서비스를 종일 받아야 했던 김주영, 송국현씨는 화재로 죽어갔다. 바로 옆에 있는 휠체어까지 이동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지석씨는 호흡기가 빠져서, 권오진씨는 사지마비 장애인이었는데 욕창이 번져서 죽어갔다. 모두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절의 비극이었지만, 언제나 장애인들이 겪을 수 있는 일들이었다. 활동보조 서비스가 24시간 제공되었다면 죽지 않아도 될 생명들이었다.
 
장애인을 '정육점의 고기처럼' 등급을 매기던 장애등급제도가 장애인들의 투쟁 10년 만에 폐지됐으니 환영할 만한 일인데, 이런 날 장애인들은 다시 거리 행진에 나섰다. 폐지는 됐으나 단계적 폐지이고, 어떤 경우는 도리어 서비스가 줄어들게 돼서다. 이유는 기획재정부가 장애등급제도가 폐지되는 것에 맞춰예산을 배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GDP 대비 사회복지 예산이 OECD 국가 중에 꼴찌를 기록한다. OECD 평균의 절반 수준밖에 안 된다. 장애인 복지 예산은 3분의1 수준이다. 과감하게 사회복지 예산을 더 늘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 정부의 사회복지정책이 기획재정부의 균형재정 신념론자들에 의해서 가로 막히고 있다. 과감한 재정확대에 반대하는 기획재정부 장관인 홍남기 부총리를 만나 항의하겠다고 장애인들이 벼르고 있는 이유다.
 
이날 저녁에 나는 서울역에서 장애인 대오를 만났다. 조달청과 잠수교를 지나서 서울역까지 무려 8킬로미터의 거리를 행진하면서 "예산 반영 없는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는 사기행각"이라는 등의 피켓을 들었다. 휠체어를 타거나 장애가 있는 몸으로도 같이 걸어오던 장애인들을 보았다. 그들은 2000년 이동권 투쟁에서부터 일관되게 거리에서 투쟁을 해왔다. 그들이 거리에서 보낸 시간은 얼마나 될까? 가늠하기 힘들지만, 이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해서, 그리고 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해서 광화문 지하도에서 1825일, 무려 5년여를 농성하기도 했다. 그런 끝에 이 정부에 들어와서 장애등급제는 이번에 폐지되고, 부양의무제 폐지도 가시권에 들어왔다.
 
장애인들은 지난 2000년 거리를 점거하고 목에 철제 사다리를 걸고 쇠줄로 묶고 외쳤다. 이동권은 그렇게 우리사회에 등장했다. 당시 헌법재판소마저 기본권이 아니라고 부정했던 그 이동권을 4년 뒤에는 법적인 권리로 승인받아냈다. 그로부터 지하철 역사마다 엘리베이터가 들어서기 시작했고, 저상버스가 도입되었다. 장애인들이 전철을 점거하고, 버스를 점거할 때 욕을 해대던 노인들이 가장 큰 혜택을 받았다. 그들은 활동보조서비스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서 2006년에는 한강대교 북단에서 노들섬까지 휠체어에서 내려 기어갔다. 겨우 1킬로미터 남짓한 거리, 성인의 걸음으로는 10분여 거리에 있는 그 거리를 그들은 5시간, 6시간을 기어서 갔다. 그만큼 그들에게는 절실한 권리였다. 2007년 활동보조서비스제도를 쟁취했다. 그들이 시설이 아니라 지역사회로 나와 살겠다면서 시설을 탈출하면서 탈시설의 권리가 점차 확장되고 있다. 그들이 투쟁으로 만들어내는 일은 한둘이 아니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그들은 장애등급제를 진짜 폐지하리라 믿는다. 
 
"우리가 가는 길이 역사다."
 
한때 그들, 투쟁하는 장애인들이 들었던 구호다. 이제 돌아보면 그들은 투쟁을 통해서 자신들의 권리를 하나하나 확보해왔고, 그런 덕분에 비장애인들은 생각지도 못하게 권리를 향유하게 되었다. 장애인들이 거리에서 밤샘 농성을 하고, 몸을 내던진 투쟁을 해서 우리사회의 인권을 진전시키고 있다. 그들이 만들어가는 역사를 응원할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박래군 뉴스토마토 편집자문위원(pl317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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