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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의세상읽기)야생의 심장 콩고로 가는 길
2019-11-15 06:00:00 2019-11-15 06:00:00
콩고 강은 4700킬로미터로 아프리카에서 나일 강 다음으로 두 번째로 긴 강이다. 하지만 유역의 강수량은 아마존 강 다음으로 많으며 세계에서 가장 수심이 깊은 강이다. 이런 곳에 멋진 전설 하나쯤 없을 리 없다. 콩고 강 상류 밀림에는 ‘강의 흐름을 막는 존재’라는 뜻의 환상의 공룡 모켈레음벰베가 산다. 
 
과학자라면 믿지 않을 이야기지만 탐험가라면 다르다. 대담무쌍한 여행을 하는 영국 작가 레드몬드 오한론은 모켈레음벰베를 찾아 나섰다. 이 탐험에는 미국의 동물학자와 콩고 생물학자가 함께했다. 그의 여행은 전혀 드라마틱하지 않았다. 끝없이 펼쳐진 습지에서 표범, 육식개미, 호전적인 전사들을 만나고 말라리아로 죽을 고비를 넘긴다. 레드몬드 오한론은 후에 『야생의 심장 콩고로 가는 길』이라는 여행기를 발간하였다. 페이지마다 공포와 악몽을 만나는 독자들은 어느덧 콩고가 ‘야생의 심장’이라는 사실에 동의하게 된다.
 
‘야생의 심장’ 탐험기를 읽은 후 나도 콩고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설마 표범, 육식개미, 말라리아의 공격을 받기야 하겠는가. 그런데 콩고에 갈 용기를 내는 일은 쉽지 않다. 콩고에는 무서운 질병이 유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1976년 콩고 강으로 물을 공급하는 에볼라 강 유역에서 열, 구토, 설사, 근육통과 내출혈을 일으키는 미지의 병이 발생했다. 치사율이 무려 90퍼센트에 달했다. 병이 발생한 지역의 이름을 따서 에볼라출혈열이라고 불렀다. 원인은 알 수 없었다. 
 
마침 1976년 우리나라의 이호왕 박사는 한탄강 출혈열의 원인이 되는 한타바이러스를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이 연구는 세계 곳곳에서 출혈과 열을 동반하는 질병의 원인체를 발견하는 연구에 자극을 주었으며, 에볼라출혈열의 원인도 바이러스임이 밝혀졌다. 그것이 바로 에볼라 바이러스다.
 
모든 병원(病源)에는 숙주가 있다. 병원은 숙주를 죽이지 않는다. 말라리아는 모기를 죽이지 않는다. 숙주이기 때문이다. 숙주를 알면 감염경로를 밝히고 초기 감염을 막을 수 있다. 말라리아를 막기 위해서는 모기를 잡고 모기장을 치고 자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에볼라 바이러스에 사람과 고릴라가 희생당한다는 것은 숙주가 따로 있다는 뜻이다. 아직도 에볼라 바이러스의 숙주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현재로서는 과일박쥐를 유력한 병원 후보로 의심하는 정도다. 따라서 아프리카를 여행할 때는 과일박쥐는 물론이고 고릴라, 침팬지, 원숭이 같은 영장류와 접촉하지 않는 게 안전하다(에볼라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야생동물과 접촉하는 일은 서로에게 위험한 일이다). 
 
원인을 모르니 치료하기 어렵다. 2014~2016년 에볼라 출혈열이 창궐할 때 서아프리카에서만 1만 3000명이 사망했다. 2018년 하반기에 콩고에서 시작된 에볼라 사태도 심각하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11월13일 현재 3287명이 발병해 2192명이 사망했다. 끔찍한 일이다.
 
갑자기 희소식이 들려왔다.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백신 어베보(Ervebo)가 유럽의약청의 승인을 받았다. 어베보는 2003년에 처음 특허를 받아 2015년 기니에서 시험 사용된 적이 있다. 그리고 2018년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에볼라가 창궐하기 시작하자 에볼라 환자를 접촉한 25만 명에게 긴급 접종하였는데 탁월한 효과를 입증했다. 어쩌면 ‘에볼라 사태’는 이제 과거지사가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은 완전한 해결까지는 거리가 있다. 추가적인 백신이 개발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에볼라 바이러스가 한 종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베보가 대항할 수 있는 것은 자이르(Zaire) 종으로 2014~2016년 서아프리카를 휩쓴 에볼라의 주범이다. 1976년 이후 7건의 대재앙을 초래한 수단(Sudan) 종에 대항하는 백신은 아직 없다. 
 
백신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포위접종을 해야 한다. 병이 발생한 지역을 포위하듯이 둘러싸고 모든 사람에게 접종해야 벽을 넘지 못하는 것이다. 아프리카 바깥에 사는 우리가 에볼라에 관심을 두어야 하는 이유다. 아프리카가 뚫리면 걷잡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백신을 미리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혹시 우리나라에서 발병하면 접촉한 사람들이 자진 신고하고 주변 사람들이 포위접종 해야 한다. 이것은 비단 에볼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법정 백신은 모든 사람이 접종해야 한다. 내 아이만 접종하지 않겠다는 것은 둑에 구멍을 뚫어 혼자 물을 받아쓰겠다는 것과 같다. 그 구멍이 몇 개만 되어도 둑은 무너진다. 
 
야생의 심장 콩고에 가기 위해 갖춰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총이나 담력이 아니라 백신이다. 백신 만세!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penguin1004@m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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