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희 기자] 정치권이 앞다퉈 가산금리 손질을 외치고 있는 가운데 우대금리 조정도 함께 이뤄져야 실질적인 대출금리 인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은행이 대출금리를 조정할 때, 가산금리를 소폭 내리더라도 우대금리를 축소하면 결과적으로 금리 인하 효과가 사라진다는 점 때문입니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처럼 어느 한 쪽의 조정 만으로 실질적인 대출 확대 효과를 볼 수 없는 것과 유사합니다.
여야 모두 ‘대출금리 손질’ 드라이브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치권은 은행의 과다한 예대마진 행태를 벼르고 있습니다. 김장겸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6일 시중은행이 매월 예대금리차를 홈페이지에 의무 공개하도록 하고, 금융당국이 금리 산정의 합리성에 대해 개선을 권고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은행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금융당국의 권고를 통해 은행들이 시장금리 변동을 대출금리에 적절하게 반영함과 동시에 은행 스스로 합리적 금리 산정에 나서는 사회적 경영 노력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마련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도 민병덕 의원이 가산금리 산정 시 예금보험료, 출연금 등 법적 비용을 제외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은행법 개정안을 냈습니다. 은행이 대출금리를 정할 때 각종 법정 비용과 지급준비금, 예금보험료 등을 차주에 전가시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입니다. 유력 대선주자인 이재명 후보도 '가산금리 손질'을 핵심 금융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우대금리 함께 손대지 않으면 효과 미미
(그래픽=뉴스토마토)
업계에선 제도 손질이 실효를 거두려면 가산금리와 우대금리를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우대금리가 견제 받지 않고 은행의 재량권으로 남아 있는 한 가산금리를 손질하더라도 실질 금리가 움직이지 않을 수 있어서입니다.
대출금리는 코픽스, 금융채 금리 등을 반영한 지표금리에 가산금리를 더하고, 여기에 우대금리(가감조정금리)를 빼서 산출합니다. 가산금리를 낮춰도 우대금리를 축소하면 최종 금리는 그대로 유지되는 구조인 겁니다. 우대금리 조정 없이는 가산금리 손질도 무의미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입니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경기 둔화 대응 차원에서 지난해 10월부터 기준금리를 2.75%까지 세 차례 인하했지만, 실질적인 체감 효과는 여전히 미미한 상황입니다. 주요 시중은행의 대출금리는 여전히 연 4%대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습니다.
대출금리 산정의 기준이 되는 지표금리 인하에도 최종 금리가 높게 산출되는 이유는 은행권에서 가산금리는 높게, 우대금리는 낮게 책정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기 때문입니다.
대개 차주에 일괄 적용되는 가산금리의 경우 일부 인하 움직임이 있어 차이가 크지 않지만, 영업점장 전결 조정 금리(고객의 금리인하 요구를 승인하여 대출금리를 인하조정하는 경우)등 은행 재량으로 정해지는 우대금리는 축소 흐름이 뚜렷한 편에 속합니다.
실제로 은행연합회 공시에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가 시작되기 직전인 지난해 9월과 지난 3월의 대출금리 세부 현황을 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평균 가계대출 가산금리는 3.15%로 지난해 9월(3.09%)보다 0.06%p 높아졌습니다.
같은 기간 금리산정의 기준이 되는 지표금리가 3.26%에서 2.91%로 0.35%p 내린 것과 상반됩니다. 여기에 은행들이 우대금리까지 1.00%p 축소하면서 최종 대출금리는 4.30%에서 4.45%로 0.15%p 올랐습니다.
은행들은 이 와중에 예금금리는 빠르게 내리면서 예대금리차를 더 벌리고 있습니다.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예대금리차(정책서민금융 제외)는 지난 3월 기준 1.38~1.55%p로, 8개월 연속 확대되고 있습니다. 올해 1분기 5대 은행이 벌어들인 이자이익은 10조5270억원으로, 작년에 이어 또다시 10조원을 넘어섰습니다. 경기 침체 속에서도 은행들이 연일 역대급 순이익을 기록하고 있는 배경입니다.
우대금리 조건 못맞추면 최대 6%대 금리
현재 은행들은 신용카드 사용, 급여이체, 모바일앱 이용 등에 따라 통상 0.1~0.3%p수준으로 우대금리를 제공하는데 우대금리 조건을 충족하기 어렵게 만들어 놓는 추세입니다. 하지만 최근 일부 은행은 대출 총량 관리 등을 이유로 가산금리를 내리는 대신 우대금리를 축소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우리은행은 주담대 우대금리를 최대 1.5%p까지 제공하지만 연금 수령 고객(0.20%), 매월 카드 30만원 이상 사용(0.20%), 월 10만원 이상 청약 및 적금 이체(0.10%) 등 조건을 무려 10개나 달았습니다. 우대금리 조건을 다 채우면 신잔액 코픽스 6개월 기준 최저 금리 4.47%까지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하지만 이를 채우지 못할경우 연 기본금리가 5.97%까지 훌쩍 높아지는 겁니다.
KB국민은행 'KB주택담보대출'도 신잔액 코픽스 기준 금리는 4.60~6.00%로 우대금리를 최대 1.40% 제공합니다. 우대금리를 모두 받으면 최저 3.20%대 금리를 적용받을 수 있지만 못 받을 경우 최대 6.00% 금리를 적용받습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가산금리로 인해 받는 이익을 갖고 우대금리를 인하해 수익을 확대하는 구조에 대해선 감시가 필요하다. ”며 “은행들은 가계대출 관리를 위해 가산금리는 내렸다고 하면서 우대금리를 축소하는 식으로 대출금리를 유지하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정치권이 앞다퉈 가산금리 손질을 외치고 있는 가운데 우대금리 조정도 함꼐 이뤄져야 실질적인 대출금리 인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5대 시중은행 간판의 모습.(사진=뉴시스)
이재희 기자 nowhe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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