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폐기한 트럼프, '전략적 유연성' 합의도?
(황방열의 한반도 나침반)미·중 분쟁 연루 위험성은 수용 안 돼
2025-08-12 06:00:00 2025-08-12 06:00:00
이재명 대통령(왼쪽)과 트럼프 대통령(오른쪽). (사진=뉴시스)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는 한국에서 노무현정부와 이명박정부를 들었다 놨다 한 초대형 이슈였다. 2006년 2월 노무현정부와 미국 아들 부시정부가 처음 협상을 시작해 14개월 뒤인 2007년 4월 협상이 타결됐으나, 이명박정부 시절인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를 거치고 2010년 미국이 요구한 자동차 분야 추가 협상까지 마친 뒤 2012년 3월 정식 발효될 때까지 격렬한 논란을 벌여야 했다. 
 
한·미 FTA는 노무현 대통령의 작품이었으나, 그의 지지층은 반대한 이슈였다. 노무현정부 시절 집권당인 열린우리당의 첫 원내대표 천정배를 비롯, 청와대 첫 정책실장 이정우, 국민경제비서관 정태인 등 핵심 경제 참모들까지도 완강하게 반대했다. 2002년 대선 때 그의 우군이었던 진보 개혁 성향 시민단체들과 노동계는 '한·미 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까지 만들어 저항했다. 한마디로 '매국 협정'이라는 것이었다. 특히 '투자자-국가 소송제'(ISD)는 한·미 FTA의 대표 독소 조항으로 꼽히면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한·미 FTA는 임기 말 노 대통령의 지지층 이탈·이완을 가속한 핵심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한·미 FTA 체결 후 이명박정부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하면서 촉발된 '광우병 촛불시위'는 서울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수십만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시위로 확대되면서 집권한 지 넉 달도 안 된 이명박정부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서 촛불시위대가 부르는, 자신도 오래전부터 즐겨 부르던 <아침이슬> 노랫소리를 들었다는 감성적인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대통령 비서실장 등 청와대 참모 6명도 경질해야만 했다. 
 
미국 정부도 한국 내 극렬한 반대 여론을 인식하게 됐고, 결국 이명박정부는 국민 요구에 따라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 조치를 내렸다. 당시 광우병 촛불시위의 파괴력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17년이 흐른 뒤인 지난 달 말 한·미 관세 협상 타결 과정에서도 입증됐다. 한국 협상단이 내놓은 당시 '광우병 광화문 100만 시위' 사진이 미국의 쌀·쇠고기 추가 개방 요구를 막아낸 것이다. 
 
트럼프, 우여곡절 거친 한·미 FTA 한칼에 날려
 
이처럼 한국에서 구구절절 우여곡절을 거친 한·미 FTA는 '관세맨' 트럼프 대통령의 전 세계 대상 관세 전쟁 와중에 한칼에 날아가 버렸다. 트럼프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를 대체하는 새로운 국제경제 질서라고 선언한 '트럼프 라운드-턴베리 체제'에서, 최상급 자유무역 제도인 FTA는 아예 설 자리가 없는 셈이다. 
 
그런데 현재 트럼프정부가 한국에서 날려버리려고 하는 대상은 한·미 FTA만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은 지난 8일 만난 한국 국방부 기자단에게 "한국 서울, 일본 도쿄, 필리핀 마닐라를 이으면 그려지는 삼각형 내 세계 교역량의 52%가 이동한다. 이 지역에서 발생하는 상황이 인근 나라들에 국한될 것이라 믿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라며 "무슨 일이 발생할 경우 그에 맞게 대응하라는 요청(call)이 있을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도 함께해야 한다고 요구할 것이라 미리 결론이 내려진 것은 아니"라면서도 "북한을 상대하는 데 더 강해지면서 유연성을 발휘해 다른 일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브런슨 사령관은 다소간 해석의 여지를 남겼지만, 지난달 24일 <조선일보> 보도는 구체적이다. 크리스토퍼 랜다우 미 국무부 부장관이 앞서 18일 도쿄 한미 외교차관 회의에서 '한·미 상호 방위 조약'을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확대 적용하는 '동맹 현대화'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신문은 이를 대만 유사시 등 태평양 지역에서 미국과 중국이 충돌하면, 한국도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라는 요구라고 풀이했다. 
 
이런 언급들은 지난 12일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가 트럼프정부의 국방정책을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앨버리지 콜비 미 국방부 정책차관이 최근 몇 달간 일본과 호주 정부에 미국이 중국과 전쟁에 돌입할 경우 어떤 역할을 할지 구체적인 입장을 요구했다고 전한 것과 정확하게 같은 맥락이다. 
 
미국이 분명하게 한국의 동참을 요구하고 나온다면, 이는 2006년 1월에 한미가 체결한 '전략적 유연성'(strategic flexibility) 합의를 위반한 것이다. 당시 반기문 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발표한 공동성명의 골자는 이렇다. 
 
"한국은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글로벌 군사전략 변화의 이유를 충분히 이해하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를 존중한다. 미국은 전략적 유연성의 이행에 있어, '한국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 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 
 
'전략적 유연성' 문제와 관련한 구체 절차는 없이 상호 간 입장 존중 원칙을 천명한 것이지만, 한국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 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대목이 분명하게 담겨 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도 이 합의 직후인 3월 공사 졸업식 연설에서 "명한 것은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우리 국민이 동북아시아의 분쟁에 휘말리는 일은 없다는 것"이라 "이는 어떤 경우에도 양보할 수 없는 확고한 원칙으로 지켜 나갈 것"이라고 천명했다. 
 
'을지 자유의 방패'(UFS·을지프리덤실드) 한미연합연습이 시작된 21일 경기도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에서 아파치 헬기가 이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트럼프정부 '한·미 동맹 현대화'·중 충돌 상황에서 한국 개입 명시 요구?
 
미국이 최근 공식화하고 있는 한미동맹 현대화는 주한미군의 역할을 '주둔군'에 '거점군'으로 바꿔 대만 유사시 투입하는 수준을 넘어, 한국도 여기에 동참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게 확실해 보인다. 한국 평택 기지 등에서 발진하는 주한미군이 미국과 중국의 충돌에 동원되는 상황만으로도 한국이 중국의 공격 목표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그 차원을 넘어 아예 한국이 대만 유사시에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요구라는 점에서, 이는 2006년 전략적 유연성 합의조차 훨씬 뛰어넘는 셈이다. 
 
오는 25일로 예상되는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은 안보 문제와 관련해서는 당장은 한국의 국방비 대폭 인상 문제가 주 의제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전략적 유연성 문제는 트럼프정부가 추진하는 미 국방정책의 대대적 변화와 맞물려 이미 한·미 핵심 현안이다.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과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에 대한 요구를 원천적으로 뿌리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한국이 미국과 중국의 충돌 등에 휘말려 들어갈 위험성이 있는 내용은 분명하게 거부해야만 한다. 2006년 1월 한·미가 맺은 전략적 유연성 합의가 바로 그 내용이다. 
 
황방열 통일외교 전문위원 bangyeoulhwang@gmail.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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