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세탁의 시스템화)②'돈세탁' 아니라던 상품권 발행사…실거래 내역 보니 '이상거래' 의심
본지 10월1일자 보도 후 상품권 발행사 측 '해명' 내놔
'시스템 테스트'라더니…금융권 "테스트로 수십억 거래?"
2025-10-21 06:00:00 2025-10-21 06:00:00
[뉴스토마토 김현철 기자] "계좌로 거래했으니 자금세탁이 아닙니다. 모두 추적 가능합니다.“
 
지난 10월1일 <뉴스토마토>가 <(돈세탁의 시스템화)①(단독)개인정보 탈취·피싱 자금, 온라인 상품권으로 빠르게 현금화> 기사를 통해 '온라인 상품권이 새로운 자금세탁 통로로 악용되고 있다'는 기사를 보도한 뒤, 해당 상품권 발행사는 자금세탁이 아니라는 답변을 내놨습니다.
 
당시 기사에서 본지는 9월18일부터 21일까지 단 4일간 약 50억원이 돈이 온라인 상품권을 통해 세탁된 정황이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상품권 발행과 환불을 반복하는 단순한 방법으로 범죄 자금의 출처를 감췄고, 비용은 기존 오프라인 방식 대비 10분의 1로 줄고 속도는 10배 빨라졌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특히 상품권 발행사가 제공하는 가상계좌와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만 있으면 하루 수십억 원씩 세탁이 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그런데 상품권 발생사가 이를 전면으로 부인하고 나선 겁니다. 기사가 보도된 뒤 지난 13일 상품권 발행사 측은 <뉴스토마토>와 만난 자리에서 "우리는 정당한 기업 간 거래(B to B)를 위해 트래픽 시스템 테스트를 했을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더구나 발행사 대표와 법률대리인을 직접 만나 그들의 해명을 듣고 제시한 설명과 실제 거래 내역을 대조해본 결과 자금세탁 의혹은 오히려 더욱 짙어졌습니다.
 
실제 거래 내역은 정반대..."30명 아닌 47명, 입금자≠출금자"
 
<뉴스토마토>가 입수한 실제 거래 내역은 발행사 주장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우선 4일간 발행된 상품권은 47억4565만원, 환불액은 47억4423만원이었습니다. 차액 142만원(0.03%)을 제외하고 사실상 전액이 환불됐습니다. 상품권의 실제 사용은 거의 없었다는 뜻입니다. 
 
시스템 테스트를 위해 "30명만 테스트했다"고 했지만 실제 출금자는 47명(개인 42명, 법인 5곳)이었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입금자(23명)와 출금자가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김모씨는 8억9168만원을 입금했지만 7350만원만 받았고, 신모씨는 단 10만원을 넣고 1억5941만원을 받아갔습니다. '주식회사 S사'는 입금 기록이 전혀 없는데도 4억원을 출금했습니다. 
 
아울러 모든 거래는 900만원 이하 단위로 쪼개져 있었습니다. 금융정보분석원(FIU) 고액거래보고(1000만원) 의무를 회피하기 위해 의도적 구조로, 수초 간격으로 기계적으로 거래를 반복한 걸로 보입니다. 
 
<뉴스토마토>가 보도한 (돈세탁의 시스템화) 기사와 관련해 의혹이 제기된 상품권 발행사의 상품권 판매 내역. (이미지=뉴스토마토)
 
은행 차단 이유 놓고도 엇갈려..."소명 요청" vs "이상거래"
 
지난 9월21일 은행이 가상계좌를 차단한 이유를 놓고도 발행사와 시중은행 관계자의 설명이 엇갈렸습니다.
 
발행사 대표는 "은행이 이상거래로 본 게 아니라 단순 소명 요청이었다"며 "테스트 종료 후 환불하려니까 은행이 '왜 환불하느냐'라고 물어본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일반적인 상황에서 소명을 하라고 요구한 것 자체가 '이상거래가 감지됐다'라는 뜻이다. 작은 사유건 큰 사유건 이상거래이기 때문에 소명이 필요했을 것이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이어 "시중은행도 테스트를 하는 경우 가상 서버를 이용한다. 또한 테스트 금액도 원단위 수준이지 수십억 원 단위의 금액으로 거래하는 건 테스트로 보기 어렵다"라고 덧붙였습니다. 
 
<뉴스토마토>가 보도한 (돈세탁의 시스템화) 기사와 관련해 의혹이 제기된 상품권 발행사의 상품권 환불 내역. (이미지=뉴스토마토)
 
전문가들 "계좌 거래도 자금세탁" 
 
발행사의 "계좌 거래는 자금세탁이 아니다"는 주장에 대한 금융권 전문가들의 생각도 달랐습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계좌 추적이 가능한 것과 자금의 출처가 정당한 것은 전혀 별개 문제"라며 "오히려 상품권을 매개로 복잡한 거래 구조를 만들어 자금의 성격을 세탁하는 전형적 수법"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도 "정상적인 테스트였다면 사전에 협의하고 테스트 서버를 사용했을 것"이라며 "테스트 서버를 활용하더라도 사전 논의가 있으면 테스트용 가상계좌를 제공하는데, 굳이 고객들이 실제 사용하는 상용서버에서 실제 돈 50억원을 움직인 것 자체가 의심스럽다"고 말했습니다. 
  
"몰랐다"면서 "100억도 가능" 인지
 
상품권 발행사 측의 진술에선 모순점도 발견됐습니다. 상품권 발행사의 대표는 "테스트 거래 규모가 이렇게 클 줄 몰랐다"면서도 "총판들이 하루 100억원 이상 필요하다고 한다"고 했습니다. 거래 규모를 예상하지 못했다면서, 정작 하루 100원억이 오갈 수 있는 구조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또한 "자금세탁방지(AML) 절차를 모두 거쳤다"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떤 검증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변을 하지 못했습니다. 단지 "계약서가 있고 실명 계좌니까 문제없다"고 했습니다. 원론적 답변만 반복한 겁니다. 
 
"총판 넘어가면 모른다"...사실상 통제 포기 인정
 
상품권 발행사도 스스로 통제 불능을 인정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뉴스토마토>와 만난 상품권 발행사의 법률대리인은 "중간 유통업체들이 게임 사이트, 쇼핑몰, 인플루언서 별풍선 등에 상품권을 사용할 계획이라고 들었다"면서도 "그들이 어떤 영업을 하는지는 솔직히 우리가 파악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상품권 발행사 대표도 "우리는 총판까지만 주고 총판만 관리한다"며 "총판이 중간 유통업체에게 어떻게 판매하는지는 우리가 상관할 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하루 100억원도 거래 가능하다"고 했으면서도 총판이 누구에게 상품권을 팔든 "우리는 모른다"는 입장입니다. 
  
김현철 기자 scoop_press@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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