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저지주 베어마운틴 주립공원. 숲길과 호수 가장자리에 흩어진 플라스틱 병을 본 한 화학자의 발걸음이 멈췄습니다. 왜 자연의 고분자(polymer)는 결국 사라지는데, 인간이 만든 플라스틱은 수십 년, 수백 년을 남는가. 이 단순한 질문이 ‘영원한 플라스틱’을 끝낼지도 모를 해법으로 이어졌습니다.
지구적 차원에서 플라스틱 문제를 다뤄온 다보스포럼에서는 “플라스틱은 더 이상 ‘재활용 기술’ 문제가 아니라 생산 감축과 설계·규제 전환의 문제”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단순한 자발적 ESG를 넘어 생산자 책임 강화와 국제 플라스틱 협약이 핵심 해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동안 순환경제를 통해 덜 만들고, 재사용 중심으로 설계하며, 그린워싱을 규제하자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동되어왔습니다. 그런데 럿거스대 연구진의 접근은 화학 그 자체의 변화였습니다.
19개국에서 수입된 플라스틱 폐기물이 매립된 것으로 밝혀져 문제가 된 말레이시아의 ‘쓰레기 매립지’. (사진=그린피스 말레이시아)
DNA의 ‘출구 전략’서 힌트 얻어
미국 럿거스대(Rutgers University) 연구진이 DNA와 단백질의 구조에서 아이디어를 빌려 필요할 때는 단단하지만, 이후에는 스스로 분해되도록 ‘프로그램된 플라스틱’을 설계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케미스트리(Nature Chemistry)>에 실렸습니다.
이 연구의 교신저자인 럿거스대 유웨이 구(Yuwei Gu) 교수는 “자연은 단백질, DNA, RNA, 셀룰로오스 같은 고분자를 많은 곳에 쓰지만, 장기 축적 문제는 겪지 않는다”며 “그 차이는 결국 화학에 있다”고 말합니다. 생체 고분자에는 결합이 적절한 시점에 끊어지도록 돕는 미세한 구조적 장치가 내장돼 있는데, 연구진은 이 ‘내장형 출구 전략’을 합성 플라스틱에 이식했다고 밝혔습니다.
핵심은 결합의 공간 배치입니다. 종이접기에서 접힌 자국을 따라 쉽게 찢어지듯, 분자 수준에서 특정 위치를 ‘미리 접어’ 두면 분해가 시작될 때 결합이 수천 배 빠르게 풀립니다. 놀라운 점은 재료의 전체 조성은 그대로 유지된다는 사실입니다. 사용 중에는 기존 플라스틱과 같은 강도를 유지하다가, 빛(자외선)이나 간단한 화학 신호가 들어오면 분해가 촉발됩니다.
이 기술의 강점은 분해 속도를 정밀하게 조절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며칠만 버티면 되는 식품 포장재부터 수년을 견뎌야 하는 자동차 부품까지, 용도에 맞춰 수명을 설계할 수 있습니다. 연구진은 같은 플라스틱이라도 며칠 혹은 몇 달이나 몇 년 단위로 분해 시점을 달리 설정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과학자들이 분해되도록 설계된 플라스틱을 개발했다. 이 연구의 모형도. (이미지=Nature Chemistry)
그 응용 범위도 넓어서 환경 부담을 줄이는 포장재를 넘어, 정해진 시간에 약물을 방출하는 캡슐, 일정 기간 후 사라지는 의료 코팅 등 ‘스마트 고분자’로 확장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기존의 분해형 플라스틱은 고온이나 강한 화학 처리가 필요해 한계가 컸습니다. 반면 이번에 이뤄진 접근은 일상적 조건에서 작동합니다. 연구진은 “특별한 열이나 가혹한 화학 물질 없이도 분해가 가능하도록 하는 새로운 화학 전략을 제시했다”고 말합니다.
고온이나 강한 화학 처리 불필요
초기 실험에서 분해 후 생성되는 액체는 독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연구진은 장기 안전성 검증과 미세 파편의 생태 영향 평가가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기존 플라스틱 공정에 어떻게 통합할 수 있을지, 그리고 잔여물의 전 생애주기 안전성을 면밀히 점검하는 연구진의 후속 연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구 교수가 제시하는 목표는 “플라스틱은 할 일을 한 뒤 사라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숲길에서 떠올린 단순한 발상이 실제로 작동한다는 사실이 가장 놀라웠다고 말합니다. 산업계와의 협력이 이루어져, 인류에 닥친 심각한 골칫거리 중 하나인 플라스틱에 ‘유통기한’을 심는 시대가 속히 다가오길 기대해 봅니다.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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