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까마귀가 덕유산 구천동 계곡에서 물고기를 잡아 바위에 내리친 후 주변을 살피고 있다.
덕유산 구천동 계곡에서의 일입니다. 그늘진 바위에는 아직 겨울의 찬 기운이 남아 있었지만, 계곡 가장자리 얼음은 낮 햇살에 조금씩 녹고 있었습니다. 얼음이 녹으면 녹을수록 물줄기도 점점 거세졌고, 계곡은 점차 굵은 물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흐르는 물줄기 사이로 까만 점 하나가 바위 위를 성큼성큼 걷고 있었습니다. 마치 오선 위의 검정 꼬리를 달고 있는 음표들처럼 말입니다. 자세히 보니 까맣다기보다 짙은 갈색에 더 가까운 빛깔의 작은 새, 물까마귀(brown dipper, Cinclus pallasii)입니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 러시아, 몽골 등 아시아 전역에 분포하는 물까마귀는 이름에 '물'이 들어가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 물이 있는 곳에서 주로 서식합니다. 주로 산지의 계곡에서 살고, 겨울 동안에는 얼지 않은 계곡 하류로 서식지를 옮겨 추위를 견디다가 겨우내 얼었던 만물이 녹고 따뜻한 봄이 찾아오면 비로소 제 세상을 만난 물 만난 물고기같이 물 만난 물까마귀가 된다고나 할까요.
물까마귀는 이름에 '까마귀'가 있지만, 실은 까마귀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새입니다. 몸길이 약 18㎝ 남짓의 작은 새로, 온몸은 짙은 갈색을 띱니다. 젖은 바위 근처에 있으면, 주변 풍경과 섞여서 사람들의 눈에는 잘 띄지 않습니다. 계곡의 흐르는 물가에 다가서서, 흐르는 물줄기를 바라보기도 하고, 총총 멀어졌다가 짧고 곧은 꼬리를 살짝 들어올리기도 하고, 날개를 씰룩거리기도 합니다. 꼭 춤을 추는 듯 합니다. 알프레드 디 수자(Alfred D'Souza)의 글이 떠오릅니다. "춤추라,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얼음이 녹으며 물줄기가 거세진 구천동 계곡에서 물까마귀가 좋아하고 있다.
물가를 총총, 계곡 바위 위를 총총총, 이러한 물까마귀는 정말 물 만난 물고기처럼, 물에서도 자유롭습니다. 물까마귀는 꽁지 깃에서 나오는 기름을 온몸에 고루 발라 준비를 마치면, 계곡의 물살이 제법 세고 찬데도 조금의 망설임 없이 물속으로 뛰어듭니다. 물속에서는 새의 날개를 꼭 물고기 지느러미처럼 사용해 헤엄칩니다. 같은 날개로 하늘도 물속도 오가는 점이 놀랍습니다. 물 속에서 있는 시간은 약 30초 남짓, 잠수 중에 물밑의 돌 틈과 바닥을 뒤져 먹이를 찾아냅니다. 주된 먹이는 날도래 유충이나 작은 물고기입니다. 특히 날도래 유충은 작은 돌로 집을 지어 몸을 숨기기 때문에 언뜻 보면 낙엽이나 돌덩어리 같아 찾기가 어려운데도, 물까마귀는 먹잇감을 용케 찾아냅니다. 잡은 먹잇감은 물가의 바위로 가져와서 바닥에 내리쳐 딱딱한 껍질을 부순 후 그 속의 유충을 먹습니다.
물까마귀는 번식도 물 가까이에서 합니다. 하천 안쪽 바위틈새에 이끼와 낙엽을 엮어 둥지를 만듭니다. 3월부터 6월 사이 한 번에 4~5개의 알을 낳고 어린 새를 기릅니다. 한국에서는 강원도 산림 하천에 가장 많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서식지가 한정돼 있고 관찰이 어려워 개체수 규모는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에는 최소관심(Least Concern) 종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구천동 계곡에서 물까마귀를 만나며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길을 꼭 안내하는 새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얼음이 녹으며 맑고 차가운 물이 흐르고, 돌 틈의 작은 생명들이 다시 활동하는 계곡의 시간. 새 계절이 다시 오고 물은 제 흐름으로 흘러야 하듯 모든 생명이 제 자리를 찾아 순환하는 봄이 그 안에 있었습니다. 바위 위를 바삐 오가다 이내 물속으로 몸을 던지던 물까마귀는 바로 그 순환의 한가운데로 뛰어들고 있는 것일지도요.
글·사진= 김용재 생태칼럼리스트 K-wil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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