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분노의 정치’에서 표출된 지도력의 위기
2026-06-15 06:00:00 2026-06-15 06:00:00
6·3 지방선거의 결과는 한국 정치사에서 전례를 찾기 힘든 기묘한 풍경을 남겼다. 통상적인 선거라면 승자의 환희와 패자의 통곡이 교차해야 마땅하건만, 이번 선거는 그 누구도 승리했다고 자부하지 못하는, '모두가 패배한 위기'의 현장이었다. 대통령과 여당, 그리고 야당에 이르기까지 정치권 전반이 동시다발적인 지도력 위기에 직면한 이 현상은 단순히 일시적인 정치적 파동이 아니다. 지지율이 거의 10%가 폭락한 대통령과 동시에 사퇴 압력을 받고 있는 여·야당 대표들을 보라. 모두가 패자들이다. 이는 우리 정치가 마주한, 곪아 터지기 직전의 구조적 병폐가 드러난 징후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을 지배하는 정서는 명백하다. 바로 ‘상실감’과 ‘박탈감’이다. 부동산 가격과 물가의 폭등은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을 파괴했다. 집이 있는 사람은 과도한 세금과 규제에 신음하며 정부의 정책적 무능을 탓하고, 집이 없는 사람은 끊어진 기회의 사다리 앞에서 미래를 박탈당했다는 분노에 휩싸여 있다. 수도권이라는 공간은 이제 누구에게도 안식처가 아닌, 집이 있어도 분노하고 없어도 분노하는 '갈등의 용광로'가 되었다. 여당 후보가 낙승을 예상하던 서울시장 선거에서 참패하고, 야당이 승리할 수 있었던 동력은 정책적 대안에 대한 지지가 아니라, 이러한 민심의 저변에 깔린 분노를 대변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선거 이후 잠실에서 지속되는 투표함 탈취 청년 시위대는 또 다른 분노를 대변하며, 국가의 무능에 대단히 민감한 반응을 보여준다.
 
문제는 이러한 분노가 정치적 에너지로 승화되지 못하고, 오직 ‘파괴적 동력’으로만 소비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의 분노를 ‘지혜의 그릇’에 담아내지 못하는 정치는 결국 공멸의 길을 걷는다. 지금의 지도력 위기는 단순한 지도부 교체나 인적 쇄신으로 봉합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이제는 정치가 권력의 운용 방식을 국민의 분노와 상실을 흡수하는 완충지대로서 근본적으로 재설계해야 하는 임계점에 도달했다. 제2기 이재명정부는 스스로에게 엄중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지난 정권의 실패로부터의 회복이라는 소극적 수사에 안주할 것인가, 아니면 더 역동적인 국정 목표와 개혁의 동력을 회복할 것인가. 국민은 단순히 과거의 과오를 치유하는 정치를 넘어, 우리가 어떤 나라이며, 어떤 정체성과 소속감으로 공동체를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확고한 ‘국정 비전’을 요구하고 있다.
 
이 비전의 핵심은 ‘더 많은 민주주의’와 ‘견고한 제도적 설계’에 있다. 우리는 내란을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안착시켰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민주주의의 질을 높여야 할 때다. 제도와 규칙이 공정하게 작동하고, 정치가 권력 다툼의 장이 아닌 사회적 합의의 장이 될 수 있도록 정치권은 ‘개헌’과 ‘정치개혁’이라는 과제에 추호의 망설임도 보여선 안 된다. 만약 권력의 설계도를 바꾸는 이 중차대한 과업에 눈앞의 정치적 계산기를 두드린다면, 국민은 결코 그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권력과 규칙을 설계하는 일은 지금의 소모적 갈등을 발전적으로 해소하는 가장 유력한 방책이다.
 
정치란 무엇인가. 고난받는 국민의 목소리를 시대적 사명으로 치환하고, 이를 구체적인 정책으로 실현하는 기술이다. 지금 국민이 느끼는 박탈감은 정치가 자신의 삶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무력감에서 온다. 이 무력감을 희망으로 바꾸는 것은 오로지 정부와 정당의 ‘압도적인 비전 제시 능력’에 달려 있다. 결단력이 부족하고 순발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는 이제 거두어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냉철한 이성으로 현실을 직시하고, 과감한 추진력으로 구조적 불평등을 타파하는 ‘지도력의 복원’이다. 이재명정부의 성패는 지금의 위기를 단순히 관리하는 데 있지 않다. 국민이 겪고 있는 상실감을 새로운 시대적 활력으로 전환할 수 있는가, 그리고 우리 정치가 추구해야 할 명확한 가치와 철학을 국민들에게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당장의 지지율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국민의 삶 속에 내재된 분노의 근원을 파악하고, 그 분노를 더 나은 대한민국을 향한 희망의 설계도로 전환하는 대담한 도전에 나서야 한다.
 
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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