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26조원대 유가 담합' 정유 4사 모두 기소
HD현대오일뱅크·SK에너지·GS칼텍스·에쓰오일 등 정유사·직원들
"전쟁 발발 당일 '유가 40%↑'…정유업계 담합은 이란 전쟁 전부터"
2026-07-06 17:18:18 2026-07-06 18:46:20
[뉴스토마토 유근윤·윤영혜 기자] 국내 정유 시장을 과점하는 대형 정유사들이 미국·이란 전쟁을 전후해 유가 담합을 벌인 정황이 검찰 수사를 통해 드러났습니다. 서울중앙지검은 전쟁 발발 직후 벌어진 국내 유가 폭등의 배후엔 정유업계의 조직적 담합이 있었다는 결론을 내리고 HD현대오일뱅크·SK에너지·GS칼텍스·에쓰오일 등 정유사와 직원들을 재판에 넘겼습니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 나희석 부장검사가 6일 서초구 서울고검 기자실에서 미·이란 전쟁 관련 유가 교란 사건 수사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나희석 부장검사)는 6일 HD현대오일뱅크·SK에너지·GS칼텍스·에쓰오일 등 정유 4사를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담합을 주도한 HD현대오일뱅크의 가격결정부서장과 책임매니저, 법무실장도 함께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증거인멸에 관여한 GS칼텍스의 국내영업부문장도 기소됐습니다.
 
검찰이 파악한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의 직접 담합 규모는 14조2000억원입니다. 검찰은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이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의 담합 가격을 추종하거나 참고해 기름값을 인상한 것까지 감안하면 총 26조원 상당의 경쟁 제한 효과가 발생한 걸로 보고 있습니다. 
  
검찰이 이번 수사에 착수하게 된 건 미국·이란 전쟁 발발한 직후 유가가 이례적으로 폭등한 데에 따른 것입니다. 검찰은 "전쟁 직후 담합은 일시적 일탈이 아닌 만성화된 담합 관행이 국제적 위기 상황에서 노골적으로 표출된 것임을 파악했다"고 했습니다.
 
검찰에 따르면, 정유사들은 전쟁 발발 당시 상당한 양의 원유를 비축해둬 가격이 급등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국내 석유제품 가격은 전쟁 발발 당일 40%가량 폭등했는데, 이는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와 비교할 때 비정상적 흐름이라는 설명입니다.
 
HD현대오일뱅크 직원들은 전쟁 이전에도 지속해 SK에너지 임직원과 가격 정보를 교환한 정황이 포착됐습니다.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의 가격부서 책임자들은 전쟁 직후 석유제품 가격 인상 시기와 규모를 짬짜미했고,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이 이를 그대로 따르면서 시장 전체의 폭등을 촉발했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입니다. 
 
검찰이 입수한 정유사 직원들의 대화방엔 "타사나 알뜰입금가 보고 결정하자고 하네요", "역시 전쟁으로 먹고사는 회사", "트럼프 만세", "우리 올해 2조원 벌 듯"이라는 등의 대화가 오간 걸로 확인됐습니다. 나 부장검사는 "전쟁 상황이 정유사들에 이익이 된다는 점이 회계자료로도 확인됐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검찰은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의 행위가 경쟁 질서를 교란하는 전형적인 의식적 병행 행위에 해당하지만, 공정거래법상 형사처벌 대상으로 포함되지 않아 기소 범위에서 제외했다고 덧붙였습니다. 
 
미국·이란 전쟁 후 담합을 통해 유가를 폭등시킨 혐의를 받는 국내 정유사와 직원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사진=연합뉴스)
 
검찰은 국내 유가 상승의 구조적 원인으로 지목되어 온 '전량구매계약'과 '사후정산제' 관행과 관련해서는 정유 4사 모두를 재판에 넘겼습니다.
 
정유 4사는 시장 내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일방적으로 가격을 결정한 뒤 주유소들에 통보해 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석유제품 전량을 자사로부터만 구입하도록 사실상 강제한 혐의를 받습니다. 이 때문에 일선 주유소들은 정확한 공급 가격도 모른 채 제품을 전량 구매해야 했고, 정유사가 사후에 일방적으로 책정하는 가격에 자신들의 영업 손익을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정해진 '노예계약' 구조에 갇혀 있었습니다. 주유소들이 더 저렴한 유통 경로를 택하지 못하도록 대기업들이 시장을 통제한 셈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검찰은 HD현대오일뱅크와 GS칼텍스가 공정거래위원회의 현장조사 실시 정보를 미리 파악하고 증거 인멸에 나선 정황도 발견했습니다. 이에 각 회사 직원들을 공정거래법상 조사 방해 등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검찰은 또 정유사 3곳이 산업통상부에 석유제품 공급가를 실제 인상액보다 낮춰 허위로 보고한 사실을 확인하고 산업통상부와 추후 관련 자료를 공유하겠다고 했습니다. 검찰은 "국가적 혼란을 틈타 유가 교란의 중대 범죄를 범한 피고인들에게 죄에 상응하는 형이 선고될 수 있도록 공소유지에 만전을 기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산업통상부 등 유관기관과 긴밀히 협력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SK에너지는 "일단 언론 보도를 통해 파악한 단계라 추후 수사 과정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며 "결과가 나오면 그에 맞춰 대응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을 아꼈습니다. SK에너지와 함께 담합을 주도한 혐의를 받는 HD현대오일뱅크는 "준비되면 말씀드리겠다"며 구체적인 입장 표명을 유보했습니다.
 
담합 행위를 추종했다는 혐의를 받는 에쓰오일은 "담합은 일단 검찰 발표상 2개사가 했고 우리를 포함해 나머지 정유사들은 2개사를 따라했다는 내용"이라며 "한국 시장은 가격이 굉장히 투명하고 가격 체계가 매일 웹사이트에 뜨다 보니 그런 것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전량구매계약 강제 혐의에 대해선 "현장에서 어떤 강요 행위가 있었는지는 주유소가 1000여개가 넘어 다 알 수 없다"며 "구체적 사실관계가 확인돼야 설명드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GS칼텍스는 "검찰 보도자료를 통해 파악한 게 전부라 지금 상황에서 말씀드리기 조심스럽다"고 했습니다
 
유근윤 기자 9nyoon@etomato.com
윤영혜 기자 yy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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