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출근길 지하철 타기 중단한 전장연
2026-09-01 06:00:00 2026-09-01 06:00:00
“시민 여러분, 전장연은 73번의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오늘부터 멈춥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가 지난 8월24일 발표한 성명서의 제목이다. 이 성명서를 받아 읽으면서 마음이 착잡했다. 전장연은 2021년 12월3일, ‘세계 장애인의 날’을 맞아서 출근 시간대 지하철 탑승 시위를 시작했다.
 
전장연은 단순히 지하철 탑승만 한 것이 아니고, 휠체어에서 내려 지하철 열차 바닥을 기었다. 사람들 틈 사이로 겨우겨우 바닥을 기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에 장애인들이 한강대교 북단에서 노들섬까지 기어간 적이 있었다. 비장애 성인이 10분이면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를 5~6시간 바닥을 기어서 가야 했다. 그런 투쟁을 통해서 장애인 활동지원사 제도가 도입되었다. 지하철 역사의 엘리베이터와 시내버스에 저상버스가 도입되는 계기를 만들었던 ‘교통약자의 이동 편의 증진법’도 장애인들의 지하철 철로 점거와 시내버스 점거 투쟁 등 극한 투쟁을 통한 끝에 제정, 시행되었다.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들의 권리는 장애인 당사자와 그에 연대하는 비장애인 시민들의 연대를 통해서 하나하나 생겨났고, 시행되었다. 인권의 역사가 투쟁의 역사이고, 우리가 아는 권리 목록들이 모두 인간들의 치열한 투쟁 없이는 탄생할 수 없었다. 하지만 21세기 한국에서는 장애인들의 권리 확보를 위한 투쟁이 유난히 치열하다. 그것은 투쟁 당사자인 전장연의 눈부신 활동 덕분이기도 하지만, 정치권의 반복되는 약속 위반 때문이기도 하다. 장애인들의 이동권에 관한 약속은 번번이 뒤로 미뤄졌다. 그래서 아직도 전국 시내버스에 44%만 저상버스가 도입되었고, 여전히 장애인 콜택시(장콜)를 잡으려면 5~6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전장연이 ‘예산 없이는 권리 없다’는 구호를 앞세우고 정부와 지자체, 정치권에 약속을 이행하라고 촉구하는 극한 시위에 나섰던 이유다.
 
전장연이 출근길 지하철 타기를 73번이나 시행하는 동안, 정치권은 이들의 요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준석, 김재섭 같은 정치인들은 전장연과 장애인들을 비난하고, 모욕하고, 갈라치기 하기에 바빴다. “특정 장애인 단체의 시위”를 이유로 무정차시키고, 다른 교통편을 이용하라고 할 때, 한시가 급한 시민들이 욕하고 짜증을 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이런 점을 서울시나 서울교통공사는 충분히 이용했다. 서울시는 400명의 중증장애인들을 공공 일자리에서 쫓아낸 다음 회복시키지 않는 등 장애인들의 요구를 묵살하기에 바빴다.
 
전장연 등 장애인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11일 서울시청역 1호선 종각 방향 승강장에서 오세훈 시울시장과의 대화를 촉구하며 제49차 12345 지하철행동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서울시의회 다수당이 된 민주당이 전장연의 요구를 수용해서 ‘서울특별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안’과 ‘서울특별시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 지원 조례 일부개정안’을 9월 서울시의회에서 통과시키기로 약속한 것은 늦었지만, 다행이다.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도 전장연 대표와 만나서 “필요한 장애인 정책과 예산은 장애인의 삶과 정책적 필요성, 사업의 타당성과 재정 원칙에 따라 책임 있게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 약속을 믿고, 전장연은 출근길 지하철 타기를 멈춘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서울시 의회에서 조례들이 통과되어도 오세훈 서울시장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 
 
소통과 대화로 만들어낸 이번 성과가 제대로 실현되기를 바란다. 다시 장애인들이 휠체어에서 내려와 지하철 바닥이나 땅바닥을 기어가게 해서는 안 된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장애인과 소수자들의 인권 실현도 해낼 수 있다는 걸 이번 기회에 입증하기를 바란다. 신뢰에 기초한 권리 실현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줄 때다. 이번에는 정치권이 성실하게 응답할 차례다. 
 
박래군 4.16재단 운영위원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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