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보라 기자] 인공지능(AI) 개발 속도를 늦추자는 ‘속도조절론’이 산업계를 넘어 법정과 미중 협상, 유엔까지 번지고 있습니다. 주요 AI 기업들이 안전을 이유로 공동 감속 필요성에 공감하자 이번에는 경쟁사 간 담합이라는 반독점 소송에 직면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젠슨 황 엔비디아 CEO 등은 규제보다 개발을 지속하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AI 관련 기업 투자에 따른 이해 충돌 논란에도 휩싸였습니다. AI 안전과 관련한 국제 공조 방안은 미중 정상회담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주요 의제로 다뤄질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AI 개발 속도를 함께 늦추자는데 뜻을 함께한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CEO와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CEO, 일론 머스크 SpaceXAI CEO, 샘 알트만 오픈AI CEO.(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사진=AP/연합뉴스)
21일 외신 등에 따르면 앤트로픽과 오픈AI, 구글, SpaceXAI 등 미국 주요 인공지능(AI) 기업 4곳이 반독점 집단소송에 휘말렸습니다. 원고들은 경쟁 관계에 있는 기업들이 AI 개발 속도를 공동으로 제한하려 한 것은 연방 반독점법인 셔먼법 제1조를 위반한 담합 행위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최고경영자(CEO)가 AI 개발 속도 조절 필요성을 주장한 이후 샘 알트만 오픈AI CEO, 일론 머스크 SpaceXAI CEO,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CEO 등이 이에 호응한 것을 문제 삼고 있습니다. 원고 측은 개별 기업이 자체적으로 안전 기준을 세우거나 개발 속도를 조절하는 것과 경쟁사들이 이를 공동으로 결정하는 것은 별개 문제라고 보고 있습니다.
다만 이번 소송이 AI 기업에 개발 속도를 늦추지 말라고 요구하는 취지는 아니라는 해석도 나옵니다. 기업 간 자율적인 합의로 개발 속도를 조절하기보다 정부가 법과 제도를 통해 일관된 안전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문제 제기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대표 원고로 참여한 샤이엔 헌트 변호사 역시 빅테크의 책임 강화와 독점 규제를 주장해 온 진보 성향 시민단체 ‘퍼블릭 시티즌’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는 인물로 알려졌습니다.
AI 개발사와 AI의 핵심 부품을 제조하는 기업 간의 입장 차이도 또렷해지고 있습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지난 20일(현지시각) 미국 CBS뉴스와의 인터뷰에서 “2030년에 세상이 끝날 가능성은 0%”라며 AI가 인류 멸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을 정면 반박했습니다. 그는 “근거 없는 공포를 확산시키는 것은 무책임하다”면서도 “AI 기업은 제품을 안전하게 출시하고 현행 법체계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황 CEO에 이어 AI 속도조절론에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9일(현지시간) ‘AI 포스’를 만들고 이를 이끌 ‘AI 차르’를 임명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추가 규제를 확대하기보다 기존 법체계 안에서 AI 오용에 대응하면서 산업 성장을 촉진하겠다는 구상입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과 가족의 AI 관련 투자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외신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투자 계좌에서 델테크놀로지와 마이크론, GE버노바 등 AI 인프라 확대의 수혜를 받을 수 있는 기업 주식 매입 내역이 확인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뿐 아니라 장남과 차남까지 투자회사를 통해 AI와 데이터센터 관련 기업에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트럼프 측은 대통령의 투자 계좌가 독립적인 자산관리자에 의해 운용되고 있으며 대통령과 가족이 개별 투자 결정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AI 정책 결정이 기업가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이해 충돌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허리펑 중국 국무원 부총리(오른쪽)와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이 20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서 열린 미중 경제·무역 협의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신화/연합뉴스)
AI 위험을 둘러싼 논의는 미중 간 협의와 국제사회 의제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과 허리펑 국무원 부총리는 20일(현지시각) 뉴욕에서 만나 AI와 관련 사고가 벌어졌을 때 서로 통보하는 체계 구축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 사안은 오는 24일 열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에서도 논의될 전망입니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시 주석의 방미를 앞두고 중국 기업들이 대규모 증류(distillation)를 활용해 기술을 훔쳐 갔다며 비난했고, 이에 중국도 미국이 자국 AI 기업을 겨냥한 제재 등 압박에 나설 경우 보복하겠다며 반발했습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오는 23일 AI와 국제 안보 문제를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자리에는 샘 알트만 오픈AI CEO도 회의에 직접 참석해 AI 안전과 국제 공조 필요성을 설명할 예정입니다.
이보라 기자 bora11@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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