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리뷰)'얼굴 없는 보스', 계속 볼 일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설명충' 대사, 산통 깨는 음향, 튀는 스토리
감독 "조폭 미화 없다" 단언…영화는 '글쎄'
입력 : 2019-11-19 00:00:00 수정 : 2019-11-19 17:09:40
[뉴스토마토 김희경 기자] (기사를 쓰기에 앞서, 이 글은 공익을 목적으로 작성했음을 알린다. 극 중 스포일러가 포함됐다.)
 
눈을 의심했다. 얼굴을 푹 숙이고 "제발"을 몇 번이나 외쳤는지 모르겠다. 한숨을 쉬는 사람들도 있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땐 헛웃음이 나왔다. 차라리 80년대 영화가 재개봉하는 것이라면 납득했을 것이다. 그런데 2019년 신작이라니, 그것도 수능을 본 수험생들에게 추천하는 영화라니. 생각을 포기하고 싶어진다. 짧게나마 쌓아온 인생의 상식이 무너지는 기분이다.
 
영화 '얼굴없는 보스' 스틸. 사진/㈜좋은하늘
 
시사회에서 처음으로 시계를 3번이나 확인한 영화는 이 영화가 처음이다. 114분의 러닝타임이 긴 것은 아니다. 러닝타임 181분짜리 '어벤져스: 엔드게임'도 극장에서 5번을 넘게 봤지만, 한 번도 시계를 확인한 적은 없었다. 물론 할리우드 영화와 국내영화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말은 할 수 있다. '엔드게임'을 5번째 관람했을 때와 '얼굴없는 보스' 첫 번째 시사회를 봤을 때 어느 쪽 스토리가 더 지루했냐고 물어본다면, 망설임 없이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영화 '얼굴없는 보스'(감독 송창용)는 감성 실화 느와르 장르로, 건달 세계에 발을 내디딘 남자가 폼 나는 삶을 살기 위해 들어왔다가 끝없는 음모와 배신 속에 모든 것을 뺏길 위기에 처한 이야기를 담았다. 실제 건달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작성됐으며, 제작 기간만 8년 10개월 27일이 걸렸다고 전해진다. 가장 큰 문제는 '영화의 메가폰을 누가 잡았느냐'다. 추정컨대 감독 송창용은 이 작품을 처음부터 손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시사회 후 기자간담회서 "이 영화엔 미비하고 아쉬운 점이 있는 게 맞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없을 거다.
 
영화 '얼굴없는 보스' 스틸. 사진/㈜좋은하늘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 시나리오의 초석을 쌓은 사람은 실제 건달 생활에 몸담았던 A씨로 알려졌다. 제작진들은 A씨의 청춘 시절 있었던 에피소드나 A씨 주변의 이야기를 토대로 이야기를 짰다. 심지어 음악, 미술까지 A씨의 입김이 들어가 있다고.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한다. 영화, 드라마, 심지어 음악 등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픽션과 논픽션을 재량껏 섞어 작품을 만든다. 그것은 온전히 그들의 몫이며 권리다. 도의적, 윤리적 선을 넘지 않는 것이라면 말이다. 그 작품이 100% 실제이든 허구이든 상관없다. 어차피 대중들은 그들의 니즈에 맞춰 문화를 소비한다. 그게 소위 말하는 대중문화다. 그런데 '얼굴없는 보스'는 대중들의 니즈를 완전히 반대로 해석했다. 이 영화를 쉽게 비유하자면, 중장년층 노인이 젊은 청년들을 억지로 앉히고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무용담을 듣는 보는 기분이랄까. 
 
한국 영화계에서 이미 느와르 장르는 수도 없이 소비돼왔다. 그동안 관객들의 보는 눈도 높아졌다. 이제는 폼만 잡거나 찰지게 욕만 하거나, 주먹질을 휘두른다고 해서 좋아하지 않는다. '왜', 그 근본이 채워져야 한다. DC코믹스계의 최강 빌런 '조커'가 왜 악당임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에게 사랑받았는가. 근거가 충분했기 때문이다. 사회의 부조리함, 약자의 현실을 여과 없이 보여주며 그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관객들에게 '그래, 너라면 그럴 만하다'는 생각을 자연스레 주는 것이다.
 
영화 '얼굴없는 보스' 스틸. 사진/㈜좋은하늘
 
하지만 '얼굴없는 보스' 속 상곤(천정명 분)은 그런 명목이 없다. 한 지방대학의 체대생으로, 복서를 하던 상곤은 갑작스럽게 캠퍼스를 찾아온 선배를 만난다. 그리고 그 선배는 그에게 제안한다. "너 건달 할래?" 그리고 상곤은 "형이 계속 신뢰할 수 있는 동생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는 동생들도 합류시켜도 될까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선배의 직업은 조직폭력배다. 하지만 두 사람의 대사는 마치 스타트업 혹은 중소기업의 취업을 제안하는 것 같은 뉘앙스다. 물론 체대생들의 취업률이 아무리 낮기로서니, 이게 2000년대 초반 시점이기로서니, 지방대학에서 체대를 전공하는 학생들이 본다면 역정을 낼 스토리다.
 
이에 대해 송 감독은 이렇게 해명했다. "조폭도 70년대 조폭, 80년대 조폭, 90년대 조폭 다 스타일이 다르다. 2000년대 초반의 조폭은 의리가 있고 주변 사람들을 가족처럼 챙기는 정이 있다는 걸 다루고 싶었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그가 말했던 "조폭 미화의 우상화는 없다"라는 전제는 뭐가 되는 걸까. '2000년대 조폭은 이렇게 정이 많고 의리가 넘치지만, 결국엔 망하는 인생이다'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세계에서 2번째로 1인당 연간 평균 영화 관람이 많은 한국인이 과연 그것을 모르고 느와르 영화를 볼까?
 
이쯤 되면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래도 한국 느와르니 한국적 감성이 들어있지 않을까"라는 합리적 의구심. 그래, 물론 들어있다. 그 감성이 쌍팔년도 감성이라는 것이 문제다. 법대를 다니는 여자친구는 남자친구 상곤이 건달이 된다는 걸 알았음에도 '사랑하니까' 교제를 이어가고, 그가 법정에서 10년형을 선고받았을 때도 '사랑하니까' 기다려준다. 출소한 후엔 기다렸다는 듯 다시 만나 결혼을 하고 임신까지 한다. 상곤이 새벽에 들어와도 자다가 벌떡 일어나 반찬이 가득한 저녁상을 차려준다. 상곤이 밥을 다 비울 때까지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 꾸벅꾸벅 졸기까지 한다. '82년생 김지영'이 개봉한 이 시점에 이런 촌스러운 감성이 대중들에게 통할지 미지수다.
 
영화 '얼굴없는 보스' 스틸. 사진/㈜좋은하늘
 
상곤의 캐릭터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앞서 설명했듯 상곤이 조직에 발을 담그게 되는 이유는 신뢰하는 선배가 있기 때문이다. 의리에 죽고, 의리에 못 사는 정의로운 캐릭터로 등장한다. 조직폭력계에서도 "연장은 절대 챙기지 마라"고 한다던가, 후임들의 지갑 사정을 생각해 투자하기로 했던 사업 계획을 포기하기도 한다. 아버지가 건설업계 회장인데 그는 왜 그렇게 조직을 지키려고 할까? 선배에게도 배신당했겠다, 차라리 아버지께 말씀드려 자회사를 작게 차려 조직폭력과 관계없는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것이 부모에게도, 여자친구에게도 떳떳한 사람이 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그래, 백번 양보해서 한국 느와르 영화가 나올 수 있다. 상업 영화라는 것이 으레 다 그런 것 아닌가. 한 장르가 흥행하면 그다음 시기에 비슷한 장르가 우후죽순으로 쏟아지는 것. 속이 뻔히 보이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흐름이다. 그런데 '얼굴없는 보스'의 개봉 저의는 너무나도 '꼰대'스럽다. 송 감독은 기자간담회 당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장면으로 후반부 상곤이 술에 취한 자신의 지갑을 털려는 비행 청소년들을 주먹으로 때리며 "건달이 멋져 보여? 꿈 깨라"라는 씬을 꼽았다. "그 부분이야말로 이 영화의 메시지고, 청소년들을 향해 말하고 싶은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장래희망 1순위가 유튜버, 공무원인 학생들에게 '조폭 같은 거 하지 말라'고 '꼰대짓'을 부리는 그의 말은 곱씹을수록 할 말이 없어진다. 영화의 완성도를 위해 8년 동안 속세와의 연을 끊었다고 해야 이해할까 말까다. 제작 당시 누가 송 감독에게 "요즘 학교폭력 중에는 SNS 상 사이버불링도 있다"고 한마디만 해줬더라면 이런 참사는 막을 수 있었을까.
 
영화 '얼굴없는 보스' 스틸. 사진/㈜좋은하늘
 
물론 송 감독은 이런 말도 했다. "청소년들 사이에서 학교폭력 빈도가 높아지고, 느와르 한국 영화를 보며 조폭들이 우아하게 비치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 미화를 없애고 싶었다"고 말이다. 실제 한국 영화계에선 한때 느와르 장르가 유행처럼 번지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그건 '과거 완료형'이다. 이제 한국에서 느와르 장르를 들고 오려면 칼을 갈고 이를 악물어야 한다. 관객들은 이제 '신세계', '내부자들', '범죄와의 전쟁', '불한당', '독전' 정도의 퀄리티가 아니면 쳐다도 보지 않는다. 차라리 그 영화를 재탕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이롭다고 생각하는 의견도 있다. 짧게 요약하자면, 관객들은 너무 많이 똑똑해졌다. 입소문도 더욱더 빨라졌고, 영화 리뷰 평점 사이트도 활발해지고 있다. 이런 시국에 '얼굴없는 보스'는 정말 고개를 들 면목이 없다. 멕시코, 러시아처럼 마피아나 갱이 설치는 나라가 아님에도 느와르를 선택해야 하는 이유가 뭔지, 확연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이유가 고작 '청소년들의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함'이라면, 송 감독은 영화가 아니라 공익광고 한 편을 찍는 게 나았을 거다.
 
'얼굴없는 보스'는 미적으로도 부족한 점이 너무나 많다. 가장 큰 특징으로는 음향이다. 크든 작든 갈등이나 문제가 일어날 때 깔리는 음향의 퀄리티는 그 옛날 부모님들이 즐겨 보시던 일일드라마의 음향 수준에 머물러있다. 아무리 이 영화의 시대 배경이 2000년대 초반이라 하더라도, 음향 수준까지 거기에 맞출 필요는 없다. 그리고 거의 '설명충'에 가까운 대사는 끔찍할 정도다. 극적 허용으로 넘길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극중 흘러나오는 나레이션은 거의 시청 지원 서비스 수준이고, 상곤의 마지막 대사를 들을 땐 '저 장면이 꿈인가?' 싶을 정도로 근본이 없었다.
 
114분의 러닝타임이 끝난 뒤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느와르 미화를 조심해야 할 것은 관객이 아니라 감독이 아닐까. '위대한 유산', '구세주', '만남의 광장' 등으로 이름을 알린 만큼 '얼굴없는 보스'는 블랙코미디로 장르를 바꿔야 한다. 그래야 관객들이 "아, 이 영화는 웃기려고 만든 거구나"라고 납득이라도 할 테니 말이다. 동정해야 될 건 그저 '어른들의 사정'으로 출연할 수밖에 없었던 배우들 뿐이다. 개봉은 오는 21일.
 
영화 '얼굴없는 보스' 포스터. 사진/㈜좋은하늘

 
김희경 기자 gmlrud1515@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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