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이재명 정부의 교육정책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구호다. “과연 그렇게 될까”라며 예산을 걱정하는 목소리는 있지만 대세는 찬성하는 분위기다. 한국의 모든 학부모들이 선망하는 서울대를 늘린다는 정책에 반대할 야당은 없다. 그런데 어쩐지 기분이 찜찜하고 미덥지 않다.
서울대의 숫자를 늘리면 가계를 압박하는 사교육비와 청소년을 피폐시키는 수험전쟁을 비롯한 교육 문제가 해결된다는 발상의 저변에는 “서울대”라는 상징의 가치를 저하시키면 입시 경쟁도 완화된다는 계산이 깔려있다. 물론 지방 국립대의 재정적 여건이 개선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졸업생이 취업할 수 있는 양호한 일자리가 지방에 없으면 우수한 고교 졸업생이 제2, 제3의 서울대를 선택할 가능성도 낮아진다. 즉, 수도권 집중 해소와 지방 활성화를 지향하는 큰 그림과 결합되지 않으면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현직 교수 시절에 필자는 대학원생을 집중 지원하는 BK(브레인 코리아)사업 심사위원을 맡았다가 씁쓸한 경험을 한 기억이 있다. 한국 제2의 도시에 있는 명문 지방 국립대에 배정된 예산을 중간 평가 단계에서 연구책임자를 맡은 교수가 사실상 포기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물론 그 돈은 즉석에서 다른 지방 국립대로 재배분되었다. 나중에 포기한 사유를 자세히 들어보니, 그 지역에서는 대학원 등록금과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는 수준의 인건비를 지급한다는 조건을 내걸어도 과제를 수행할 능력이 있는 대학원생을 확보할 수 없어 결국 교수들의 부담이 늘어나고,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졸업생이 취업할 곳도 마땅하지 않으며, 산학협력을 추진할 기업도 구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수도권 대학에 있는 교수들은 실감이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정부의 사업 평가지표에는 이러한 실상이 반영되기 어렵다. 자칫하면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예산 나누어 먹기로 끝난다는 학계 일각의 우려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
지방 국립대의 실상을 보면 예산 규모만 서울대와 차이가 있지 구조는 이미 서울대의 축소판 이다. 즉,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성공하려면 과연 현재의 서울대는 흠결이 없는 이상적인 모델인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서울대도 본받지 말아야 할 어두운 측면을 가지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 서울대는 최초의 국립대학이고 인원, 예산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 이외에는 독자적인 정체성이 희미하다. 1946년에 개교했지만 아직도 연구중심대학인지, 교육중심대학인지 지향점이 명확하지 않다. 더구나 다른 선진국의 명문대에서는 보기 어려운 예체능계 전공도 있다. 일부 논자들은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추진하면 연구중심대학도 늘어나 국가 경쟁력이 향상된다는 주장을 펴지만, 이는 정보 부족에서 나온 허언에 불과하다. 하나만 예를 들면 서울대 대학원에 진학하는 서울대 학부 졸업생이 계속 줄어드는 문제는 이미 언론에도 수시로 등장하고 있다. 즉, 우수한 연구자와 교수 요원의 양성을 아직도 외국 대학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대학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돈벌이와 직결되지 않는 기초학문 분야는 존립의 위기를 실감하고 있다.
선거 캠페인으로는 일단 성공한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실효성 있는 정책이 되려면 현재의 국내 대학에 대한 실태 조사부터 실시해야 한다. 예산만 투입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은 버려야 한다. 대학은 무엇이고, 대학의 경영관리는 누가 어떻게 할 것인가를 정직하게 고민해야 한다.
이종구 성공회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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