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야흐로 인공지능(AI)의 시대다. 이재명 정부는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서 ‘AI 3대 강국 도약’을 위해 AI 인프라·데이터를 확충하고, 초고성능·초지능 네트워크 연결을 통해 ‘AI 고속도로’를 구축한다는 국정 과제를 밝혔다. 이는 인공지능 국가전략(2019년)과 국가 AI 전략 정책방향(2024년) 등 기존 정부 정책을 계승하면서 글로벌 AI 경쟁을 주도하겠다는 적극적인 입장으로 이해된다.
이에 따라 지난 9월, 대통령직속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가 출범했고, AI 고속도로 구축을 위해 ‘국가 AI 컴퓨팅 센터’를 추진하고 있다.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센터 입지는 비수도권으로 제한하고, 친환경 AI 데이터센터 구축을 위해 신재생에너지의 이용 비중 등을 고려한 전력계통영향평가를 통해 전력 공급 방안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AI로 대표되는 디지털 전환과 에너지 전환, 지역 균형발전이 통합적으로 검토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최근에는 정부와 재계가 성장률 회복 방안으로 AI 혁신이 필요하다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AI 혁신을 위해서는 우선 데이터센터가 공간적으로 매우 집중되면서 전력 소비량이 상당히 많아 지역 전력망에 지장을 초래하는 문제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데이터센터는 발전소와 공장, 제철소 등과 비교할 때 공간적 집중도가 가장 높은 데다가 도시 지역과의 거리는 가장 짧은 측에 속한다. 데이터센터가 집중된 지역에서는 데이터센터에 공급되는 전력 수요 비중이 비정상적으로 높게 나타난다.
아일랜드에서는 전력 공급량의 약 20%를 데이터센터가 소비하고, 미국에서는 이미 6개 주에서 데이터센터가 전력 공급량의 10% 이상을 쓰고 있으며, 버지니아주가 25%로 가장 높다. 이에 따라 데이터센터 건설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고, 특히 AI 기술의 중심지인 미국에서 반대 여론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데이터센터워치(Data Center Watch)에 따르면, 2025년 2분기에만 미국의 17개 주에 걸쳐 53개 활동 단체가 30개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에 대한 반대운동을 벌였으며, 전국적으로 총 188개 단체가 반대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전력 다소비 시설인 데이터센터가 급증하면서 수도권 집중도 가속화하고 있다. 2023년 12월 말 기준으로 데이터센터 입지의 60%, 전력 수요의 70%가 수도권에 집중되면서 전력 계통과 수급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전력 다소비 시설인 데이터센터가 수도권에 집중되면서 송·배전망 등 전력 인프라를 추가 건설해야 하는 부담이 커지고 계통 혼잡을 유발하고 있다. 수도권에는 발전소를 추가 공급할 여력이 없어 횡축(동해안-수도권)과 종축(영·호남-충청-수도권) 등 장거리 송전망을 확충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AI 혁신을 위해 필요한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전기 수요를 일으킨다는 점에서 AI 기술의 중심지인 미국에서도 반대 여론이 커지고 있다. 데이터센터가 전력공급량의 25%를 소비하고 있는 미국 버지니아주 애슈번에 위치한 아마존 데이터센터 전경.(사진=뉴시스)
데이터센터의 수도권 쏠림 현상에 따라 주민들의 반발도 잇따르고 있다. 전자파와 열 방출, 소음, 진동, 화재위험 등을 이유로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서울대 시흥캠퍼스에 조성하려던 240㎿(메가와트)급 초대형 AI 데이터센터의 조성 절차가 전면 중단됐다. 경기도 고양시, 김포시, 안양시 등에 건설 예정이던 데이터센터들도 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건설이 지연되거나 무산됐다. 2024~2025년 기준 수도권 내 데이터센터 인허가 33건 중 17건(약 52%)이 주민 반대 등으로 지연되거나 무산된 것으로 나타났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4~2038)’은 반도체 등 첨단산업, AI 확산과 데이터센터, 전기차 등 전기화 추세를 주요 정책 환경 변화로 검토하고, AI 확산에 따른 경제·사회의 디지털화·지능화에 따라 기존 추세 대비 가파른 증가가 예상되는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 영향을 검토해 일부 반영했다. 정부는 ‘데이터센터 수도권 집중 완화 방안’을 마련하면서 막대한 전력 수요를 동반하는 데이터센터의 수도권 집중 및 지역 편중 문제를 정책적으로 다루고 있다.
하지만 AI 전면화에 따른 데이터센터의 양적 증가에 대한 에너지 수요 전망과 에너지 전환 대응 과제에 대한 실효적인 접근은 부족한 실정이다. AI 기반 데이터센터는 단순한 서버 저장 공간 역할을 넘어 대규모 연산을 처리해야 한다. 고성능 GPU(그래픽처리장치) 등을 활용하는 AI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전력을 소비하고 높은 열을 발생시킨다. 이에 따라 효율적인 냉각기술의 중요성도 급격히 커지고 있다. 결국 고성능 AI 데이터센터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효율적인 냉각이 가능한 입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에 최근에는 데이터센터 후보지를 수도권보다는 전력 계통에 여유가 있고, 에너지 활용 효율이 높은 발전소 인근이나 해안가, 수자원 접근이 용이한 지역으로 이전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수도권 데이터센터 건설을 제한하고 지역별로 데이터센터를 배치한다면, 수도권 집중에 따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전력 자립도와 신재생 발전량을 기준으로 데이터센터를 지역 분산 배치하면, 전력 계통과 수급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신재생 발전량이 풍부한 지역에 데이터센터 배치는 ‘그린데이터센터(Green Data Center)’로서의 가능성도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 그린데이터센터는 전력 사용 효율(PUE)과 신재생에너지 활용, 온실가스 배출 저감 등 다양한 항목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인증된다. 전력 계통과 PUE 계획 심의 등을 통한 수도권 데이터센터 입지 규제, 지역별 전력 자립도와 전력 수요 분산화 효과, 재생에너지 발전량의 충분성 등을 통합적으로 고려한 데이터센터의 배치는 이제 AI 혁신을 위한 필수적인 과제가 되었다.
에너지 관련 법률과 규정 개정을 통해 데이터센터의 효율적 설치 및 운용 기준 적용(PUE 포함), 재생에너지 설치 및 사용 의무화 연계 데이터센터 입지 기준 반영(재생에너지 전력 자립도 포함 제한 지역과 권장 지역 등), 정보 공개와 모니터링 체계 마련 등을 포함해야 한다. 또한 AI 및 데이터센터 관련 법률 제정 과정에서 재생에너지공급과 에너지 효율을 반영하는 지역 분산형 데이터센터 구축 원칙과 시책 조항을 반영해야 한다.
권승문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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