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규하 기자] 우리나라 수출(K-수출)이 다시 한번 기록을 갈아치웠지만 내년 대외 환경의 셈법은 더욱 복잡한 양상입니다. 관세발 인플레이션 장기화 가능성, 미국 경제의 K자형(같은 경제 안에서 위아래로 갈라지는 양극화 현상) 구조 고착, 글로벌 상품 무역 둔화, 인공지능(AI) 투자에 대한 기대·불안이 동시에 교차하기 때문입니다.
23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지난 22일 기준 우리나라 수출이 역대 최대 실적이던 지난해 6836억달러를 넘어섰다. (그래픽=뉴스토마토)
기록 경신했지만 내년 '더 험해'
23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지난 22일 기준 우리나라 수출이 역대 최대 실적이던 지난해 6836억달러를 넘어섰습니다. 정확히 밝히지 않았지만 연간 수출액 7000억달러 달성을 목전에 둔 것으로 풀이됩니다.
강감찬 산업부 무역투자실장은 이날 수출동향 점검회의에서 "우리 수출이 6월부터 6개월 연속 수출 플러스를 기록한 가운데 12월22일까지 누적 수출이 기존 연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인 지난해 6836억달러를 넘어섰다"며 "녹록지 않은 수출 여건 속에서도 우리 기업들이 제품 경쟁력 향상과 시장 다변화 노력을 지속한 결과"라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역대 최대 수출을 구조적 회복으로 보긴 어려운 상황입니다. 더 큰 문제는 내년 K-수출의 리스크입니다. 여러 요인 중 이른바 관세의 '간접효과'로 인한 글로벌 인플레이션에 대한 장기화 위험이 대표적입니다. 김우진 국제금융센터 책임연구원은 "일부 투자은행(IB)들은 기업들의 관세 전가가 누적됨에 따라 높은 인플레이션 관성이 유지되고 수입 중간재 가격 상승이 서비스 물가 상승으로도 이어지면서 인플레이션이 고착화될 우려를 제기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미 연준은 관세를 일회성 물가 충격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수입품 가격 상승이 국산품 가격 인상으로 전이되는 '대체효과'와 전반적인 가격 인상을 자극하는 '편승효과'를 우려한 겁니다. 실증 분석을 보면, 관세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에 미치는 영향 중 대체·편승 효과인 간접효과(1.78%포인트)가 가격 전가 효과인 직접효과(1.68%포인트)보다 더 크게 나타날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지난 6월1일 부산 남구 신선대부두에 컨테이너선이 접안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K자형 고착화…글로벌 상품 무역 둔화
미 경제의 K자형 구조에 대한 고착화 우려도 꼽힙니다. 팬데믹 이후 금융자산과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고소득·자산 보유층의 소비 여력은 확대된 반면, 저소득층은 물가 상승과 신용 부담 증가로 소비가 위축되는 양상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비의 상당 부분이 상위 계층에 집중되는 구조는 단기적으로 성장률을 지지하지만 중저가 소비재와 내구재 수요 둔화, 신용 리스크 확대 등이 중장기적인 경기 취약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는 미국 경기의 외형적 안정성과 달리 수요의 질이 약화하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박미정 국제금융센터 글로벌경제부장은 "K자형 구조는 일시적 현상이 아닌 구조적 전환으로 고소득층이 소비를 지지하더라도 저소득부터 고용 둔화·신용 리스크가 순차적으로 확대될 소지가 있다"며 "AI 관련 주식 등 금융자산에 대한 가계 부의 집중도가 과거보다 높아짐에 따라 금융시장 충격이 실물경제로 전이되는 속도가 단축될 것"이라고 제언했습니다.
글로벌 상품 무역의 둔화도 우려되는 요인입니다. 세계 경제 성장률은 완만한 수준을 유지하더라도 상품 교역 증가율이 크게 낮아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주요 투자은행(IB)들이 전망한 내년 글로벌 성장률은 올해보다 0.2포인트 하락한 3.0%입니다. 최근 5년 누적 하락폭으로 따질 경우에는 0.7%포인트로 과거(1989~1993년) 하락폭 2.6%포인트를 크게 하회한다는 평가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0월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글로벌 저성장…정책 환경 더 격렬"
정만기 한국산업연합포럼 회장은 이날 제80회 산업발전포럼을 통해 "2026년은 글로벌 성장률이 3% 안팎의 저성장이 전망되지만 정책 환경은 더 격렬해질 전망"이라며 "기업 입장에서는 '각국의 변동성이 높은 정책과 정책 불확실성을 기업 전략의 내생변수'로 생각하고 적극 대응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했습니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2026년 수출 증가 품목으로 컴퓨터(7.8), 반도체(5.9), 무선통신기기(5.4), 디스플레이(2.9), 일반기계(2.8) 등이 제시되는 반면, 수출 감소 품목으로 자동차(-1.0), 철강(-2.0), 선박(-5.4), 석유화학(-6.1), 석유제품(-13.3) 등이 제시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중국은 근린 궁핍화 정책의 효과로 상품무역 흑자가 1~11월 중 1조달러를 돌파, 전 세계 역사상 최초 기록을 달성하고 2029년 경상수지 흑자는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에 도달할 것"이라며 "중국의 제조 굴기로 유럽, 동아시아(한국), 멕시코 등이 가장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김종기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26년 정보통신기기 산업은 AI 확산에 따른 스토리지·부품 수요 확대에 힘입어 수출이 SSD(차세대 저장장치)를 중심으로 약 4.9% 증가할 전망"이라며 "생산은 수출·내수 증가에 따라 약 6% 증가가 예상되지만 해외 생산 확대와 미국 관세정책 불확실성은 스마트폰(부품)·SSD 공급망 불확실성, 간접비용·투자 리스크 증가 등 부정적 요인으로 지적된다"고 말했습니다.
세종=이규하 기자 jud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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