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층에 사람이 있어요~” 구조대를 애타게 찾던 투자자들에게 구조대가 도착했다.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코스피 4000. 2025년은 주식시장의 새 역사를 쓴 해로 기록될 것이다. 지수의 앞자리를 바꾸기도 했지만, 그 동력이었던 자본시장 개혁이 모처럼 말이 아닌 행동으로 옮겨진 해이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 한 달 만에 오래 묵힌 투자자들의 숙원이었던 개정 상법이 공포됐다. 법 시행과 함께 기업들의 이사는 최대주주의 호위무사가 아니라 전체 주주들에게 충실해야만 하는 법적 책임을 지게 됐다. 이 법이 어디까지 주주를 보호해줄 것인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법령에 총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박아 넣은 것만으로도 큰일을 해낸 것이다.
이걸로 끝이 아니다. 주주환원 확대를 위한 세제 지원, 공매도 규제 강화, 불공정거래 차단을 위한 원스트라이크아웃제 도입 등이 뒤따랐다. 대주주 양도세 강화 방안 철회, 배당소득 분리과세 등도 정부가 시장의 의견을 수용한 결과다.
시장친화적인 정책이 잇따르면서 시장 참여자들은 이재명정부의 방향성을 신뢰했고 자연스럽게 주가가 올랐다. 4221.87포인트. 지난달 3일 기록한 최고점이다. 작년 말 코스피는 2400에서 0.51 모자란 2399.49였다. 올해에만 75.94%, 1800포인트 넘게 급등했다. IT 버블의 한복판이었던 1999년 82.78% 상승률 이후 최고 기록이다. 그땐 주식 초보였던 필자의 눈에도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래서 오히려 체감상 충격이 더 크다. 아마 정부도 이렇게 단기간에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개혁엔 반동이 뒤따르는 법. 주주 권익을 높이는 모든 결정엔 기업들의 반발이 나왔고 갈수록 노골화되고 있다. 대놓고 자사주를 빼돌려도 손 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걸 온 투자자가 지켜보고 있다. 저평가 상장기업을 저평가된 그 가격 그대로 꿀꺽 집어삼키려 해 주주들은 발을 동동 구르는데 법은 당국은 지켜보고만 있다. 이렇게 흘러간다면 시간은 그들의 편이 될 것이다.
개혁은 속도전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느슨해진다. 당하는 쪽에선 반발이 공고해지고 버티기에 들어가면 투자자가 아닌 다수 국민들의 주목도는 떨어질 것이다. 첫해엔 기대 이상을 해냈지만 또 다른 숙제 거리도 쌓인다.
세밑 칼럼에서는 이듬해 주가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곤 했다. 이번엔 롱, 숏 어디에도 걸지 않겠다. 시장의 체질을 바꿀 수만 있다면 코스피 5000 고지는 당장 못 밟아도 괜찮다. 4000 깨져도 상관없다. 곧 달성할 거라는 희망이 생길 테니까. 4000이냐 5000이냐보다, 대주주 지분 처분 시 같은 가격에 주식을 넘길 수 있게 해주는 ‘동반매도청구권’이나, 주가순자산비율(PBR) 0.8배 미만 기업은 시가가 아닌 공정 가치로 상속·증여세를 산정하는 ‘주가 누르기 방지법’ 등이 더 중요하다. “PBR 0.3배 정도면 적대적 인수합병을 해야지.” 이재명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던 지난해, 국회 토론회에서 한 이 말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9층에서 구조를 외쳤던 삼성전자 주주들은 무사히 구조됐을까? 대다수는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믿고 기다린 사람만이 과실을 얻는 것이다. 지금은 그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강력하게 요구하고 견제하며, 개혁을 이끄는 이들에게 힘을 보태야 한다. 체질이 변하면 5000 시대는 당연하다는 듯 찾아올 것이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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