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기위반 징계'로 충분한데...법정 선 '동성군인 처벌법', 문제는?
1962년 ‘계간죄’에 뿌리 둔 군형법 제92조의6
위헌의견 재판관 4명 “합의한 행위, 징계로 제재 가능”
2026-08-28 19:44:36 2026-08-28 19:44:36
[뉴스토마토 신다인 기자] 군인이 부대 안에서 합의해 성행위를 하면 군기 위반을 이유로 징계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당사자들이 동성이라면 징계로 끝나지 않습니다. 폭행이나 협박이 없어도 군형법상 ‘추행죄’로 기소돼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습니다.
 
지난 2019년 10월1일 국제앰네스티가 군형법 제92조의6(추행)의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의정부지법은 28일 군형법상 추행 혐의로 기소된 전직 군인 A씨의 파기환송심에서 A씨의 항소를 기각했습니다. 이에 따라 항소심에서는 무죄를 받았던 A씨에게 징역 4개월의 선고를 유예한 1심 판단이 유지됐습니다.
 
A씨는 군 복무 중이던 2020년 7월 충남 논산의 한 부대 격리 생활관에서 동료 병사 B씨와 합의해 성적 접촉을 한 혐의 등을 받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폭행이나 협박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A씨는 군형법 제92조의6(추행)에 따라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해당 조항은 군인·군무원 등을 상대로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을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심은 지난 2021년 12월 A씨에게 징역 4개월의 선고를 유예했습니다. 반면 항소심 재판부는 2022년 11월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를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침해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생활관에서의 행위가 근무시간이 아닌 때 두 사람의 합의로 이뤄졌고, 당시 생활관에는 코로나19 격리 중인 두 사람밖에 없었다는 점을 고려했습니다. 성행위가 다른 병사에게 노출되거나 부대 업무에 지장을 줬다는 사정도 확인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 3부(주심 대법관 이흥구)는 지난해 4월 무죄 판결을 파기했습니다. 대법원은 “군기를 직접적·구체적으로 침해한 이상 그 성적 행위가 이루어진 장소가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내밀한 곳이라거나 그 행위가 은밀히 이루어졌다는 사정은 추행죄 성립을 방해하지 않는다”고 판시했습니다. 합의한 성행위라도 군기 유지의 필요성이 큰 공간이나 근무 상황에서 이뤄졌다면 처벌할 수 있다는 취지입니다.
 
이성 간 성행위는 징계…동성 간 행위는 형사처벌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이번 판단에 대해 “사문화된 법을 대법관과 의정부지법 판사가 다시 살려놓은 셈”이라며 “이성 간 성관계는 징계하면서 동성 간 성행위만 형사처벌하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실제 2010년 레바논 파병 부대에서 남녀 군인들의 성관계와 신체 접촉이 적발됐지만, 합동참모본부는 정직 2∼3개월과 감봉 2개월의 징계를 내렸을 뿐 형사처벌하지 않았습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소장이 2019년 6월24일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육군 성소수자 군인 색출 사건 피해자 대법원 무죄 탄원 운동 개시 기자회견'을 열고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사진=뉴시스)
 
64년 된 군형법 ‘추행죄’…폐지 요구 계속
 
군형법상 추행죄는 1962년 ‘계간 기타 추행’을 처벌하도록 한 조항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후 법정형은 1년 이하의 징역에서 2년 이하의 징역으로 높아졌고, 2013년 ‘계간’이라는 표현이 ‘항문성교’로 바뀌었습니다.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고, 처벌할 행위의 정도와 장소·시간 등을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아 자의적인 법 적용을 초래한다는 위헌 논란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2002년과 2011년, 2016년, 2023년 네 차례에 걸쳐 해당 조항을 합헌으로 유지했습니다.
 
헌재의 반복된 합헌 결정과 달리 대법원은 2022년 합의한 동성 간 성행위의 처벌 범위를 좁혔습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영외에 있는 사적 공간에서 성행위를 한 동성 군인들을 군형법상 추행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당시 대법원은 동성 간 성행위 자체가 일반인에게 혐오감을 일으키거나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추행’이라는 과거의 평가를 더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군형법이 군기뿐 아니라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도 보호해야 한다고 처음 인정한 것입니다.
 
위헌의견 재판관 4명 “자의적 법 해석 가능해”
 
헌재는 2023년 재판관 5대4 의견으로 군형법상 추행죄를 합헌으로 유지했습니다. 다수의견은 동성 군인 사이의 합의한 성행위라도 근무장소나 임무 수행 중 이뤄지면 국군의 전투력 보존에 위해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반면 위헌의견을 낸 재판관 4명은 명확성과 기본권 침해 등을 지적했습니다. 이들은 “추행은 피해자 의사에 반하여 이뤄지는 행위인데, 동성 군인 간 자발적 의사 합치가 있었다면 사적 공간이 아닌 곳에서 이뤄진 성적 행위라도 더는 ‘추행’에 해당하지는 않는다”며 “이 조항은 추상적이고 모호하며 포괄적 용어만 사용해 법 집행기관의 자의적 법 해석 가능성을 초래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박한희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군대 내 성폭력은 별도의 조항으로 처벌할 수 있고, 합의한 이성 간 성행위는 징계로 다루고 있다”며 “동성 간 행위에만 징역형이 가능한 형사처벌을 부과하는 것은 성소수자 차별”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군기 위반에는 성별과 성적 지향을 가리지 않고 같은 징계 기준을 적용하고, 합의한 동성 간 성행위를 범죄화하는 조항은 폐지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신다인 기자 shin12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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