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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청와대 인사는 패자부활 무대인가
2016-08-22 10:57:52 2016-08-23 16:16:17
말복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16일, 박근혜 정부는 개각을 발표했다. 중폭의 개각이 있을 것이라는 당초 예상과는 달리 3개 부처의 장관만이 바뀌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도 그 자리를 철옹성같이 지켰다.
 
발표내용을 놓고 진보·보수를 막론한 모든 언론에서 혹평을 퍼부었다.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의 수첩 인사가 바닥이 났다’는 비아냥까지 나왔다. 더욱 실망을 금할 길이 없었던 것은 지난 4월 총선에서 당내 경선도 통과하지 못했던 조윤선 전 여성가족부 장관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내정자로 위풍당당하게 컴백한 사실이다. 민심은 조 내정자를 거부했지만 박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다시 불러들였다.
 
조 내정자는 정무수석으로 있던 지난해 5월 공무원연금개혁안 처리가 지연되자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지난 총선에서 서울 서초갑에 출마를 선언했으나 새누리당 경선에서 이혜훈 의원에 패해 공천을 받지 못했다. 당시 경선룰은 여론조사 지지율이었다. 민심이 조 내정자를 지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본선에 나갈 자격조차 얻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인물을 문체부 장관 내정자로 불러들인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인 민의를 저버린 것이다. 박 대통령은 왜 민심을 거역하고 루이 14세식 통치를 단행하는 것일까.
 
프랑스에서는 정부가 민의를 묻고 정통성을 확보하는 일을 대단히 중시한다. 지난 2007년 5월 실시된 대선에서 승리한 우파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참신한 인재를 불러 모아 새 내각을 구성했다. 임명된 장관 중에는 선거를 통해 국민의 신임을 확인받은 장관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인물도 있었다.
 
사르코지 대통령과 프랑수와 피옹 수상은 민심의 확인을 받지 않은 장관들에게 6월10일 실시된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하도록 했다. 피옹 정부의 2인자로 불리는 ‘지속개발과 성장 그리고 환경 장관’ 알랭 쥐페는 지롱드 지역에 출마했다. 선거 결과 쥐페 장관은 49.07%를 득표해 50.93%를 얻은 사회당 미쉘 들로내 후보에게 석패했다. 그는 패배 직후 떨리는 목소리로 “내일 아침 대통령과 수상에게 사직서를 제출하겠다”고 말했고 실제로 다음날 사임의사를 밝혔다. 발레리 페크레스 당시 교육부 장관은 “지속개발과 성장 그리고 환경 장관은 피옹 정부에서 대단히 중요한 자리”라며 “쥐페만큼 역량 있는 인물을 찾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피옹 정부는 하원의원 선거 전 이미 ‘임명된 장관들이 선거에서 참패하면 장관직에 남아있을 수 없다’는 규정을 공표한 터였다. 하원의원 선거에 나가 패배하면 그것은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함을 의미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규정을 지켜야 했기에 피옹 수상은 쥐페 장관만한 인물을 찾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표를 수리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처럼 프랑스도 장관은 선출직이 아니고 임명직이기에 국민의 신임을 꼭 물어야 할 의무는 없다. 그러나 피옹 정부는 국민의 지지를 얻는 장관들로 내각을 구성해 정통성을 공고히 하고 싶었기에 국민의 지지를 물었던 것이다. 이와 달리 한국에서는 유권자의 지지를 얻지 못해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내 경선조차 통과하지 못한 인물을 내각에 다시 불러들이고 있다. 정부는 정통성은 차치하고 인사를 패자부활의 무대로 이용하고 있는 듯하다.
 
현대 정치는 여론 정치고 전문가 정치다. 여론의 심판을 통해 낙마한 인물을 재기시키고 경험도 없는 부서에 임명해 돌려막기식 인사를 단행한다면 그 정부는 진정 원칙도 없고 정통성도 없는 ‘맘대로 정부’가 아니겠는가. 여론은 중국 양나라 황제 무제(武帝: 502-549)가 공무원의 선출을 위한 하나의 임용 방식으로 사용한데서 기원한다. 무제는 조정의 엘리트를 선출할 때 후보자들의 깊은 지식을 시험하고, 여론을 들어본 후 결정했다. 조정이 정부 관리를 선출하는데 백성의 의견을 듣고 결정한 것은 고대 정치에서도 기본이었던 것이다. 박 대통령이 이제부터라도 여론을 중시하고 정부의 정통성을 확보하는 정치를 해주기를 소망한다.
 
최인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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