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차량반도체)②공급난 악몽 재점화…각국 '자립형 생태계' 가속
EU·미국은 보조금·법제도 총동원 전략
한국은 민간 중심 '생태계 구축'으로 차별화 모색
2025-10-23 06:00:00 2025-10-23 06:00:00
이 기사는 2025년 10월 21일 17:45  IB토마토 유료 페이지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차량용 반도체는 전기차·자율주행차·스마트카 등 미래 모빌리티의 심장과도 같은 핵심 부품이다. 그러나 국내 기업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3~4%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여전히 메모리 중심의 사업 구조에 머물러 있다. 반면 유럽과 북미 기업들은 전력반도체와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확고한 우위를 점하며 생태계를 선도하고 있다. 이에 <IB토마토>는 국내 차량용 반도체 생태계의 현황과 도전 과제, 해외 주요 사례와의 격차, 그리고 민간과 정부의 협력 방향을 심층적으로 짚어본다.(편집자주)
 
[IB토마토 권영지 기자] 글로벌 자동차 업계가 또다시 ‘반도체 공급망 충격’에 직면했다. 중국 정부가 넥스페리아의 반도체 수출을 전면 금지하면서 코로나19 당시 겪었던 공급난 악몽이 재현될 수 있다는 경고가 업계 안팎에서 잇따르고 있다. 미국과 유럽은 자국 내 반도체 공급망을 강화하기 위해 보조금과 법제도 지원에 속도를 내고 있고, 한국도 민간 주도의 자립형 생태계 구축에 나서고 있다.
 

(사진=넥스페리아 홈페이지 갈무리)
 
넥스페리아발 ‘공급망 충격’…각국 자동차 업계 ‘비상’
 
21일 업계에 따르면 이번 중국발 차량용 반도체 공급망 위기 사태의 진원지는 넥스페리아다. 네덜란드에 본사를 둔 넥스페리아는 폭스바겐그룹, 도요타, 현대차(005380)그룹, BMW그룹, 메르세데스-벤츠그룹 등 글로벌 완성차의 핵심 부품에 들어가는 범용 반도체 시장 점유율 1위 기업이다. 하지만 2019년 중국 윙테크 테크놀로지가 지분 전량을 인수하면서 실질적인 지배권은 중국이 가지고 있다.
 
미국이 지난달 윙테크와 넥스페리아를 제재 리스트에 올리자, 중국은 보복으로 넥스페리아 제품 수출을 금지했다. 넥스페리아 제품의 80% 이상이 생산되는 중국 공장의 수출길이 막히면서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병목’이 현실화되고 있다.
 
유럽의 충격은 특히 크다. 넥스페리아 전체 매출의 22%가 유럽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자동차산업협회는 “재고가 떨어지면 완성차 생산 중단이 불가피하다”고 경고했고, 미국자동차혁신연맹 역시 “미국은 물론 글로벌 자동차 생산 전반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밝혔다. 폭스바겐 그룹과 BMW그룹은 긴급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공급 차질 영향을 점검하고 있으며, 일본 도요타도 부품업체로부터 납품 차질을 통보받았다.
 
자동차 한 대에는 수백~수천 개의 반도체가 들어간다. 넥스페리아의 주력 제품인 다이오드와 트랜지스터는 단가가 낮지만 어느 하나라도 공급이 끊기면 완성차 조립라인 전체가 멈출 수 있다. 시장 점유율만 보면 넥스페리아는 글로벌 19위(1.2%) 수준이지만 범용 반도체·전력반도체 분야에선 각각 세계 1, 2위를 차지하고 있어 영향력이 막대하다.
 
이번 사태는 미중 무역갈등이 다시 고조되는 국면에서 터졌다. 미국이 중국 반도체 기업에 대한 제재 수위를 높이자 중국이 맞대응에 나선 것이다. 이는 2019년 미중 무역분쟁 당시와 유사한 흐름으로, 당시에도 중국 내 반도체 생산 차질로 한국과 글로벌 완성차 업계가 큰 타격을 받았다.
 
한국 역시 중국에 대한 반도체 의존도가 높은 상황이라 공급망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특히 전장부품의 핵심 소재·부품 상당수가 중국산인 만큼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미국은 자국 반도체 업체 보호를 위해 대중 규제 강화를 예고한 상태다.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반도체 공급난은 자동차 생산 차질로 직결됐다. 당시 폭스바겐 그룹은 206만대, 도요타자동차 170만대, 현대자동차그룹 47만대의 생산 손실을 기록했다. 반도체 단가도 팬데믹 이전보다 40% 이상 뛰어올라 제조원가 부담이 커졌다. 이번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비슷한 상황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 자국 중심 ‘공급망 재편’ 가속
 
이런 위기 속에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자국 내 생산력 확대와 기술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인피니언 테크놀로지스는 전력반도체 1위 업체로, 독일 드레스덴에 300mm 웨이퍼 신규 팹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SiC(실리콘카바이드) 기반 전력 반도체와 AI 전력칩을 중심으로 에너지 효율 및 자율주행차 파워IC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또 개방형 표준 RISC-V 기반 차량용 MCU를 도입해 소프트웨어중심차(SDV) 시대를 겨냥한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NXP 반도체는 16nm 핀펫 기반 S32K5 마이크로컨트롤러(MCU)를 공개하며, 세계 최초로 자기저항메모리(MRAM)을 내장한 차량용 MCU를 선보였다. 이를 통해 ECU 통합 및 전장 시스템 단순화를 추진하고, ‘존 아키텍처’ 체제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는 자율주행·전장화 차량 시대의 핵심 기술로 평가된다.
 
온세미는 SiC 전력반도체와 센서 기술을 중심으로 구조를 전면 재편했다. 전기차 부문에선 지커, 켐파워 등과 장기공급계약을 맺고 있으며, 첨단운전자지원시스템(ADAS)와 자율주행에 필요한 고정밀 센서 공급을 확대 중이다.
 
정책 측면에서도 미국과 유럽은 자국 내 공급망 자립에 나서고 있다. 유럽연합(EU)은 ‘EU 칩스법(Chips Act)’을 통해 대규모 보조금과 위기 대응 권한을 부여했다. 스타트업·R&D 시설 지원, 컨소시엄 보조금, 긴급 수출통제권 등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 유럽반도체위원회를 신설해 국가별 중복 지원을 방지하고 공공 주도의 공급망 통합 전략을 시행하고 있다.
 
미국 역시 반도체 및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을 통해 25% 세액공제와 390억달러 규모 보조금을 운영하며 자국 내 생산시설 투자를 촉진하고 있다. TSMC의 애리조나 공장과 인텔, 글로벌파운드리 등이 대표적이다. 이는 AI·차량용 반도체 패키징 공정까지 미국 내에서 처리하는 자급 전략의 일환이다.
 
 
한국, ‘민간 주도·정부 조력’ 모델로 차별화
 
한국은 다른 주요국과 달리 민간 주도형 생태계 조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대모비스(012330)는 지난 9월 오토 세미콘 코리아 협의체를 출범하고 삼성전자(005930), LX세미콘(108320), SK키파운드리, DB하이텍(000990) 등 23개 기업 및 연구기관과 손잡았다. 이는 국내 최초의 민간 주도 차량용 반도체 연합으로, 정부는 인프라·초기 자금 조력자로만 참여한다.
 
한국형 모델은 ‘정부 주도’ 대신 민간의 기술력과 기민한 대응력을 앞세운 구조라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현대모비스는 2030년까지 반도체 국산화율을 10% 이상으로 높이는 목표를 세우고, 가전·모바일 반도체 기술의 차량 적용 확대와 현대차그룹 표준 반도체 개발 등을 추진 중이다.
 
국내 반도체 업계의 글로벌 점유율은 아직 3~4% 수준에 불과하다. 차량용 반도체는 다품종 소량생산 구조와 높은 기술 진입장벽 때문에 후발주자가 빠르게 점유율을 높이기 어렵다. 그러나 전기차·SDV 확산에 따라 시장이 연평균 9%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국산화와 공급망 자립은 한국 자동차 산업 경쟁력의 핵심 과제로 부상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가 반복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미중 패권 경쟁이 장기화될 경우 반도체뿐 아니라 핵심 소재·부품 전반에서 공급망 충격이 재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자동차는 2만개 이상의 부품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한 두개의 부품만 부족해도 완성차 생산에 차질이 생긴다. 최근에는 전 세계적으로 가성비 때문에 특정 글로벌 기업에 제품 공급을 위탁해 해당 기업이 독점적으로 생산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이러한 구조는 결국 공급망 차질이 빚어질 경우 우리 자동차 업계의 완성차 생산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수익성을 떠나서 최소한의 물량이라도 자국에서 자체적으로 생산이 가능하도록 하는 전략을 취해야 한다"라고 진단했다. 
 
권영지 기자 0zz@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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