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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24일 14:23 IB토마토 유료 페이지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IB토마토 김규리 기자] SK그룹이 전기차(EV) 사업 투자와 관련해 글로벌 변수에 막히면서 조정 국면에 들어섰다. 지난 2022년 전기차 배터리 등 녹색 산업을 강조하며 대규모 투자를 공언했지만, 글로벌 수요 둔화와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가 겹치며 투자 계획을 긴급히 수정해야 한다는 내부 판단이 작용한 모양새다.
SK이노베이션(096770)과
SK아이이테크놀로지(361610), 그리고 SK온이 일제히 투자 계획을 전면 재검토하면서 그룹이 추진하는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도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향후
SK(003600)가 어떤 방식으로 EV 사업의 출구 전략과 재도약 시나리오를 그릴지 시장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사진=SK)
4년 전 투자 계획 절반도 못 미친 EV 청사진
24일 재계에 따르면 전기차 사업과 관련해 대규모 투자를 진행했던 SK그룹 내 일부 계열사들이 투자 계획을 연달아 조정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SK그룹은 지난 2022년 배터리와 분리막을 중심으로 향후 5년간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해 전기차 밸류체인을 그룹의 핵심 성장축으로 키우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021년 7월 발표한 중장기 경영계획 대비 실제 이행 실적이 크게 미달했다며 투자 계획을 대폭 수정했다. 올해까지 5년 동안 30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내놨지만, 실제 투자 집행액은 35조 7000억원으로 당초 계획 대비 20% 이상 확대됐다. 투자 지출은 예상보다 늘었지만, 핵심 사업의 성과는 기대에 한참 못 미쳤다는 평가다.
당초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생산능력을 200GWh로 확대하고 EBITDA(상각전영업이익) 2조 5000억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그러나 4년이 흐른 현재 실제 생산능력은 192GWh에 그쳤고, 올해 3분기 누적 EBITDA는 2810억원으로 목표치의 11%에 불과하다. EBITDA는 감가상각과 같은 회계 요인을 제외한 영업 현금창출력을 보여주는 지표로, 대규모 자본 투자가 동반되는 배터리 산업에서는 투자 효율성을 판단하는 핵심 기준 중 하나다.
분리막을 담당하는 SK아이이테크놀로지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회사는 같은 기간 5조원을 투자해 리튬이온배터리 분리막(LiBS) 생산 설비 40억㎡를 구축하고 올해 EBITDA 1조 4000억원, 영업이익 1조원을 올리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실제 투자 집행액은 2조 2000억원으로 집행률이 절반에도 못 미쳤다. 상업 가동 중인 생산 설비 역시 15억㎡ 수준에 머물렀다. 3분기 누적 기준 EBITDA는 마이너스(-) 625억원, 영업손실은 1706억원을 기록하며 적자 기조가 이어지고 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2023년 하반기부터 본격화된 전기차 전방 수요 둔화와 미국 정책 불확실성, 중국 경쟁사들의 저가 공세 등으로 대외 경영환경이 급변하면서 중장기 목표를 계획대로 추진하기 어려워졌다”며 “전기차 수요 침체로 주요 고객사들이 투자와 생산을 축소하거나 지연했고 이에 연계돼 설정됐던 투자 규모 확대와 생산능력 확충 계획도 하향 조정됐다”고 설명했다.
배터리·분리막 동시 부진…수익성 회복이 최대 과제
전기차 시장 환경 변화의 충격이 본격화되면서 SK그룹도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 EV 캐즘이 장기화되며 완성차 업체들이 투자와 생산을 축소하거나 연기하면서 배터리 수요가 급감했고, 중국 업체들의 공급 과잉과 저가 공세로 분리막 가격도 예상보다 크게 하락했다. 여기에 미국 정권 교체 이후 전기차 보조금과 정책 지원이 축소되며 북미 투자 전략 역시 전면 재검토 대상이 됐다.
SK온 또한 포드와의 북미 합작법인 ‘BlueOval SK’ 사업을 종결하며 대규모 자산 조정에 나섰다.
민원식 한국기업평가 연구원은 “해당 합작 사업 종결로 SK온의 6조원 규모 차입금 감축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유휴 설비 축소와 차입 부담 완화라는 긍정적 효과는 있지만, 연결 기준 순차입금 규모는 여전히 높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중장기적인 신용도 제고를 위해서는 주력 사업인 배터리 부문의 실질적인 실적 개선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SK이노베이션 역시 배터리와 석유화학 부문의 동반 부진으로 재무 지표 압박이 지속되고 있다. 3분기 기준 순차입금은 30조8328억원에 달하고, 차입금 의존도도 43.6%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차입 규모 자체보다도 이를 상쇄할 수 있는 영업 현금창출력이 빠르게 약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순수한 영업 활동을 통한 현금 창출 능력을 보여주는 EBITDA 마진율은 2022년 7.32%, 2023년 4.29%, 지난해 3.3%로 매년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대규모 투자가 집행된 이후에도 수익성이 회복되지 않으면서 차입 부담을 내부 현금흐름으로 흡수하기 어려운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시장에서는 SK그룹이 추진했던 전기차 전략이 성장 중심에서 생존과 수익성 중심으로 전환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공격적인 설비 확장과 시장 선점 전략 대신, 기존 투자 자산의 가동률 제고와 손익 구조 정상화가 최우선 과제로 부상했다는 분석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IB토마토>에 “SK그룹의 EV 밸류체인은 단순한 투자 지연이 아니라 전략 재설계 단계에 들어섰다”며 “배터리와 소재 모두에서 확실한 수익 모델을 증명하지 못하면 추가적인 대규모 투자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규리 기자 kkr@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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