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제3부 '게르망트 쪽'의 막바지에는 인간의 경박함과 속물근성이 얼마나 잔인한 수준으로까지 치닫는지를 보여주는 강렬한 장면이 등장한다. 화자의 오랜 벗이자 게르망트 공작 부부의 절친한 친구인 샤를 스완이 자신의 시한부 선고 사실을 고백하는 순간이다. 이탈리아 여행을 함께 떠나자는 공작 부부의 제안에 스완은 몇 달 뒤면 자신은 이미 세상에 없을 것이며, 죽음이 임박해 여행을 갈 수 없다고 담담하게 답한다.
이 비극적인 고백을 마주한 게르망트 공작 부부의 반응이 압권이다. 그들의 즉각적인 관심은 죽어가는 친구의 슬픔이 아닌, 자신들이 당장 참석해야 하는 사교계의 만찬 파티에 쏠려 있었다. 더욱 기괴한 것은 파티행 마차에 오르기 직전, 공작이 공작부인의 검은색 구두를 발견하고 불같이 화를 내는 대목이다. 붉은 드레스에 붉은 구두를 맞춰 신어야 한다는 사교계의 미적 규범을 어겼다는 이유였다. 공작은 친구의 죽음이라는 거대한 슬픔은 가볍게 무시하면서도, 부인의 구두 색깔을 맞추기 위해 마차를 멈추고 그녀를 다시 집 안으로 돌려보낸다.
"공작은 하인들에게 소리쳤다. '어서 올라가서 부인의 붉은 구두를 가져오게!' 그리고 스완을 향해 돌아선 뒤, 마치 서둘러 해치워야 할 성가신 의무를 끝내듯 덧붙였다. '자네가 아프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자네는 우리보다 오래 살 걸세. 다만 우리는 지금 저녁 식사에 늦었단 말이네.' 그들에게는 친구의 임박한 죽음보다, 붉은 드레스 아래에 잘못 신은 검은 구두가 사교계의 완벽한 풍경을 망치는 것이 훨씬 더 용납할 수 없는 재앙이었다."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재구성)
소설 속 게르망트 공작 부부의 이 차가운 태도는 현대 자본주의 시장에서 기업들이 수행하는 '보여주기식 CSR'의 이면을 소름 끼치도록 완벽하게 투영한다. 본질적이고 중요한 문제(죽어가는 친구)는 외면한 채, 대중에게 보여줄 화려한 사회공헌 활동이라는 외피(붉은 드레스와 붉은 구두)의 미적 완결성에만 집착하는 많은 기업의 행태는 프루스트가 묘사한 사교계의 장식주의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글로벌 에너지기업 BP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기후변화 방지 캠페인을 후원했지만, 원유 유출사고를 일으켰다. 지난 2010년 6월 4일 미국 루이지애나주에서 작업자가 흡착 장비로 유출된 기름 덩어리를 수거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화려한 자선 뒤에 숨겨진 구조적 무관심: 분리형 CSR의 함정
경영학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은 오랫동안 기업의 평판을 제고하고 이해관계자와 우호적 관계를 형성하는 핵심 전략으로 다뤄져 왔다. 그러나 많은 기업에서 CSR은 본질적인 비즈니스 모델이나 도덕적 거버넌스와 유기적으로 결합하지 못한 채 겉도는 '분리형 CSR(Decoupled CSR)' 혹은 '외재형 CSR(Peripheral CSR)'의 형태에 머무른다.
조직제도이론에서 말하는 '분리(Decoupling)'란, 기업이 외부의 제도적 압력과 평판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표면적으로는 화려한 사회적 책임 활동을 공표하면서도, 내부의 실제 운영 방식과 핵심 비즈니스 프로세스는 과거의 약탈적 관행을 그대로 유지하는 현상을 뜻한다. 이때 기부와 자선 활동이라는 '붉은 드레스'는 기업의 본질적인 경영 체질을 개선하는 도구가 아니라, 단순한 마케팅이나 홍보 수단으로 철저히 도구화한다. 이러한 '분리형 CSR'은 효과를 떠나서 기업 외부에는 고결한 가면을 씌워주고 내부적으로는 심각한 왜곡을 낳는 위선의 온상이 된다.
가면 뒤에서 자라나는 도덕적 해이와 '도덕적 허가 효과'
이처럼 CSR이 기업의 실제 비즈니스 활동과 분리되어 도구화할 때, 이것은 비효율을 넘어 기업 내부에 심각한 도덕적 해이를 촉발한다. 겉돌기만 하는 CSR 활동이 역설적으로 기업 구성원과 경영진에게 일종의 '면죄부'를 쥐여주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브누아 모냉(Benoît Monin)과 데일 밀러(Dale T. Miller)가 연구한 '도덕적 허가 효과(Moral Licensing Effect)'는 이것을 설명하는 핵심 메커니즘이다. 인간은 한 영역에서 선한 행동을 수행해 도덕적 자산(Moral Credentials)을 획득했다고 느낄 때 다른 영역에서 비윤리적이거나 이기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에 대해 스스로 면죄부를 부여하고 죄책감을 덜 느끼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개인 차원의 인지 왜곡은 조직적 차원의 의사결정 프로세스로 고스란히 전이된다. 이사회와 경영진은 대규모 자선 기금 조성이나 환경 정화 캠페인 등의 활동을 수행하고 나면, 자신들이 충분한 '도덕적 예금'을 적립했다고 믿는다. 결과적으로 현장에서 발생하는 심각한 안전 불감증, 협력업체에 대한 납품 단가 후려치기, 혹은 유해 물질 방출 등의 본질적인 리스크에 대해 "우리는 사회를 위해 이토록 훌륭한 일을 많이 하고 있으니 이 정도 사소한 과오나 일탈은 상쇄될 수 있다"는 왜곡된 집단적 신념을 형성하게 된다. 이처럼 도덕적 허가 효과는 비윤리적 의사결정에 따르는 심리적·제도적 비용을 극적으로 낮춰 도덕적 해이를 심화하고, 결국 파국적인 리스크를 방조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러한 기만적 CSR과 이에 따른 도덕적 해이의 대표적인 역사적 사례를 글로벌 제약사 퍼듀 파마(Purdue Pharma)를 소유했던 새클러(Sackler) 가문의 몰락에서 찾을 수 있다. 새클러 가문은 세계적인 미술관, 박물관, 대학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기부하며 '예술과 교육의 위대한 후원자'라는 명성을 쌓아 올렸다. 루브르 박물관의 '새클러 윙',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새클러 윙 등 그들의 이름은 고결함의 대명사였다.
그러나 그 화려한 기부의 성벽 뒤에서 그들이 벌인 짓은 참혹했다. 퍼듀 파마는 중독성이 매우 강한 마약성 진통제 '옥시콘틴(OxyContin)'의 위험성을 은폐하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쳐 수십만 명의 미국인을 약물 중독과 죽음의 위험으로 몰고 갔다. 그들에게 기부는 사회에 대한 진정성 있는 헌신이 아니라, 자신들이 퍼뜨린 죽음의 마약이 초래한 도덕적 파산을 가려줄 '가장 세련된 붉은 드레스'였으며, 자신들의 탐욕에 스스로 도덕적 면죄부를 부여한 최악의 도덕적 해이 사례였다. 대중과 규제 당국이 그들의 자선 활동에 감탄하는 동안, 수많은 가정이 소리 없이 붕괴해 갔다.
마찬가지로 글로벌 에너지 기업 BP의 사례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BP는 2000년대 초반 회사 로고를 초록색 태양 꽃 모양으로 바꾸고 '석유를 넘어(Beyond Petroleum)'라는 슬로건을 내걸며 친환경 에너지 기업으로 대대적인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 기후변화 방지 캠페인을 후원하고 재생에너지 투자를 홍보했다.
그러나 2010년 멕시코만에서 발생한 딥워터 호라이즌(Deepwater Horizon) 원유 유출 사고는 그들이 입었던 친환경 드레스의 실상을 만천하에 폭로했다. 비용 절감을 위해 안전 규정을 반복적으로 무시한 경영진의 방조 속에서 역대 최악의 해양 환경 재앙이 발생한 것이다. 그들의 친환경 CSR은 안전 불감증과 환경 파괴라는 기업 내부의 치명적인 암세포를 가려두기 위한 화려한 분장술에 불과했으며, 겉포장에만 취해 현장의 실제 리스크 관리를 소홀히 한 도덕적 해이의 결과물이었다.
국내에서도 정경유착, 횡령, 배임 등의 스캔들이 터질 때마다 대기업들이 "사회에 수천억원을 환원하겠다"며 공익재단을 설립하거나 기부금을 쾌척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법적 처벌을 피하고 여론의 비판을 잠재우기 위해 급조된 방어벽이자, 마차를 잠시 멈추고 붉은 구두로 갈아 신는 요식 행위와 다르지 않다.
보상적 CSR(Compensating CSR)의 상술
이처럼 본업의 부조리를 덮기 위해 외부의 기부에 골몰하는 현상을 학계에서는 '보상적 CSR(Compensating CSR)'이라 부른다. 도덕성마저 거래 가능한 자산으로 취급하는 극단적인 거래주의적 상술에 기반한다. 죄를 짓고 성당에 가 고해성사를 하며 면죄부를 사듯, 본업에서 유발한 부정적 외부효과와 사회적 고통의 대가를 '자선적 기부'라는 화폐를 지불함으로써 상쇄하고자 하는 메커니즘이다.
보상적 CSR은 고도의 계산된 경영 전략이다. 기업은 자신들의 불법적 초과 이윤의 극히 일부분을 사회공헌에 투입함으로써, 훨씬 더 큰 도덕적 평판 자본을 획득하고자 한다. 이러한 행태가 가능한 근본적인 배경에는 시장의 정보 비대칭성이 자리 잡고 있다.
소비자와 대중은 기업의 복잡하고 다층적인 공급망 내부에서 자행되는 유해 환경 방치, 하도급업체 기술 탈취, 혹은 원가 절감을 위한 위험의 외주화 같은 본질적 실태를 실시간으로 점검하고 감시하기 어렵다. 반면, 대대적인 언론 보도를 타고 화려하게 전달되는 장학금 전달식이나 재난 구호금 쾌척은 대중의 뇌리에 매우 쉽고 직관적으로 각인된다. 보상적 CSR은 바로 이 정보의 불균형과 인지적 한계를 교묘하게 파고든다. 발에서 피가 나고 썩어 들어가는 본질적 상처를 감춘 채, 화려하게 빛나는 붉은 구두의 광채를 뿜어내어 대중의 시선을 현혹하는 기만적인 평판 세탁술이다.
카롤의 피라미드
경영학자 아치 카롤(Archie B. Carroll)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네 단계로 체계화한 유명한 'CSR 피라미드' 모델을 제시했다. 1단계는 경제적 책임(이익 창출 및 생존), 2단계 법적 책임(법률 및 규제 준수), 3단계 윤리적 책임(법적 테두리를 넘어선 사회적 통념과 공정성 준수), 4단계 자선적 책임(기부, 예술 후원 등 자발적 사회공헌)이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Total CSR} = {Economic} + {Legal} + {Ethical} + {Philanthropic}
카롤의 핵심 통찰은 아래 단계의 책임(법적·윤리적 책임)이 견고하게 받쳐주지 않는 상태에서 최상위 단계인 '자선적 책임'에만 몰두하는 것은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과 같다는 점에 있다. 현대 기업들이 저지르는 CSR과 관련한 도덕적 해이는 바로 이 피라미드의 구조적 인과관계를 전도한 데서 발생한다. 2단계 법적 책임(예: 뇌물 금지, 담합 방지)과 3단계 윤리적 책임(예: 노동 환경 개선, 공정 거래)을 무참히 짓밟으면서 챙긴 불법적 초과 이윤을 재원으로 삼아, 4단계 자선적 활동에 투입하여 전체적인 CSR 평판을 인위적으로 왜곡한 행태다. 기초 다지기를 생략한 채 지붕의 미적 완결성에만 매달리는 이러한 구조적 전도는 결국 사소한 외부 충격에도 피라미드 전체가 붕괴하는 파국을 초래한다.
마약성 진통제 사태를 촉발한 제약회사 퍼듀 파마는 수조원대의 벌금을 지불하라는 미 법원의 선고를 받았다. 피해자들이 법원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구두를 갈아 신는 수고를 넘어: 내재형 CSR과 전략적 CSR의 융합
기업은 어떻게 게르망트 공작 부부의 위선에서 벗어나 진정성 있는 사회적 참여로 나아갈 수 있는가. 사실 답은 원론적이고 간단하다. 외부의 눈길을 의식해 덧입히는 외재형 CSR에서 탈피하여, 기업의 비즈니스 활동 자체와 사회적 가치를 한 몸으로 묶어내는 '내재형 CSR(Embedded CSR)'으로 전환이다.
허먼 아기니스와 안테 글라바스가 제시한 내재형 CSR 개념은 기업의 핵심 역량 및 일상적인 경영 프로세스와 사회적 책임 활동이 중단 없이 통합된 상태를 의미한다. 홍보나 기부 부서가 독자적으로 수행하는 '외재형(혹은 주변적) CSR(Peripheral CSR)'과 정면으로 대치된다. 내재형 CSR 하에서는 인사 평정, 제품 개발, 원자재 조달, 마케팅 등 기업의 가치사슬 전반에 사회공헌의 DNA가 완벽히 내재화한다.
이러한 내재형 CSR의 지적 기원은 일찍이 마이클 포터와 마크 크레이머가 제창한 '전략적 CSR' 모델과 깊게 맞닿아 있다. 포터는 단순히 좋은 기업 시민이 되기 위해 기부금을 내는 '반응적 CSR'을 넘어, 기업의 독자적인 경쟁 우위를 강화하는 동시에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전략적 CSR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략적 CSR은 가치사슬 내부의 부정적 영향력을 극적으로 감축하는 '안에서 밖으로의 결합(Inside-out Linkage)'과, 사회적 경쟁 여건을 자사 혁신의 기회로 삼는 '밖에서 안으로의 결합(Outside-in Linkage)'을 동시에 추구한다.
여기서 두 이론의 융합이 일어난다. 아기니스의 내재형 CSR이 지향하는 내부 운영과 조직 문화로 유기적 통합은, 포터의 전략적 CSR이 보여주는 가치사슬 전반의 혁신이라는 구체적인 실천적 방법론을 통해 비로소 실체가 된다.
진정한 사회공헌은 기부금 액수를 늘리거나 재단을 설립하는 화려한 '바깥의 장식'이 아니라, 생산 공정의 탄소 배출을 제로로 만들고 노동자의 안전을 완벽하게 보장하며, 협력사와 거래를 공정하게 유지하는 '가치사슬 내부의 혁신'에서 출발해야 한다. 가치사슬과 통합되지 않은 CSR은 아무리 찬란할지라도 결국 게르망트 공작의 붉은 구두처럼 한순간의 연출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따라서 기업의 사회공헌 부서는 더 이상 최고경영자(CEO)의 개인적 관심사나 스캔들 방어용 자금을 집행하는 외곽 조직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최고마케팅책임자(CMO) 산하가 아닌, 이사회 직속의 ESG 위원회 및 독립적인 외부 이해관계자 자문 그룹과 연계되어야 한다. 사회공헌의 성과 역시 단순한 기부금 총액(Input)이나 수혜자 수(Output)가 아니라, 사회적 투자수익률(S-ROI)과 공동체의 실질적 삶의 질 개선(Outcome)이라는 엄격한 정량적·정성적 기준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투입된 자본 대비 창출된 실질적인 '사회적 순편익'을 증명하지 못하고 단순히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하는 데 그치는 CSR은 자원의 낭비이자 또 다른 형태의 주주 가치 훼손일 뿐이다.
사회공헌의 진정성과 지속가능성
결국 프루스트가 게르망트 공작 부부의 붉은 구두 소동을 통해 폭로하고자 했던 것은 극단적인 이기주의를 우아한 세련미로 포장하는 상류 사회의 영혼 없는 껍데기였다. 현대 기업 역시 마찬가지다. 법적 책임을 소홀히 하고 노동자를 기만하며 환경을 파괴하는 기업이 수행하는 화려한 CSR은 결국 대중의 각성과 제도적 규제라는 메스 앞에서 날카롭게 해부될 운명에 처한다.
성벽 안의 귀족들은 문밖에서 죽어가는 스완의 숨소리를 외면한 채 붉은 드레스의 품격을 논했지만, 그들이 외면한 죽음은 머지않아 게르망트 가문의 신화를 안으로부터 무너뜨리는 도화선이 되었다.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장식용 구두'로 취급할 때, 그 기업의 브랜드 영혼은 안으로부터 썩어 들어가기 마련이다.
기업의 진정한 품격은 위기의 순간에 빛나는 법이다. 눈앞의 단기적 실적과 화려한 언론 보도용 이벤트를 위해 사회적 책임을 도구화하는 유혹을 뿌리치고, 기업 활동의 토대를 제공하는 공동체의 아픔에 귀를 기울이며, 비즈니스의 모든 과정에서 도덕적 일관성을 유지할 때 비로소 기업은 지속가능한 '신뢰 자본'을 획득할 수 있다. 붉은 드레스를 입기 전에 먼저 우리 곁에서 스러져가는 이해관계자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 그것이 바로 '잃어버린 경영'을 되찾는 진정한 사회공헌의 시작이다.
"그 찬란한 붉은 드레스는 저녁 불빛 속에서 유난히 붉게 타올랐으나, 그것은 스완의 야윈 뺨에 흐르던 핏기 없는 어둠을 결코 가려주지 못했다. 오히려 그 눈부신 광채는 그들이 버려두고 떠난 우정의 시신을 더욱 잔혹하고 선명하게 도드라져 보이게 만들 뿐이었다."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중 (재구성)
[안치용의 Critique: 죽음을 외면한 축제는 비극으로 끝난다]
기부는 평판 세탁을 위한 위장술이 될 수 없다. 진정한 CSR은 기업 비즈니스의 원죄를 상쇄하기 위한 거래적 도구가 아니라, 기업 활동의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정적 외부효과를 정직하게 인정하고 이것을 스스로 교정하는 거버넌스의 도덕적 결단에서 시작된다.
보여주기식 사회공헌의 화려한 드레스를 벗어던지고, 마이클 포터가 주창한 전략적 CSR의 지평 위에서 허먼 아기니스의 내재화한 프로세스를 결합하여 기업의 가치사슬 자체를 내재적으로 혁신해 나가는 것만이 지속가능한 기업으로 생존하는 유일한 길이다.
안치용 ESG비즈니스리뷰 발행인 겸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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