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산이 늘었는지, 기업 실적은 어떤지, 국내총생산은 해마다 어떤 숫자를 새로 썼는지, 경제를 논할 때마다 우리는 성장을 말한다. 성장률의 소수점 변화는 뉴스의 헤드라인이 되고 경제 성패의 지표처럼 소비된다.
그러나 그 성장이 우리 일상과 어딘가 동떨어져 있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명나라 말기 문인 홍자성이 <채근담>에서 말한 ‘수중월·경중화(물속의 달과 거울 속의 꽃)’ 구절처럼 분명 눈앞에 있으나 손에 닿지 않고 존재하는 듯 보이나 실체로 붙들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소싯적 따라 부른 ‘한 사람을 위한 마음’ 가사처럼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을까. 차가운 서사의 지표는 최근 발표한 노동자 평균 실질임금 총액을 통해 드러났다.
4월 기준 노동자 평균 실질임금 총액은 337만7000원이다. 1년 전보다 줄어든 것은 물론 10년 전인 2016년 4월 338만4000원보다도 낮다. 10년이 지났지만 노동자의 월급이 사실상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는 건 한국 경제가 멈췄기 때문은 아니다.
생산은 늘었고 산업은 고도화됐으며 기술은 진보했다. 그러나 성장을 일궈낸 노동자가 받아 든 몫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손에 든 지갑의 두께는 시간의 태엽을 거꾸로 돌린 셈이 됐다. 성장의 성과가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이어졌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한국의 실질 성장률은 연평균 10% 안팎을 기록해 왔다. 같은 시기 가계의 실질 가처분소득은 높은 속도로 증가했고 노동자의 실질 보수는 꾸준히 증가했다. 소득이 늘면 소비가 늘고 소비는 다시 생산과 투자로 선순환이 작동되는 시기였다. 당시에는 경제성장이라는 말보다 월급이 오르는 경험을 더 기억했고 더 나은 집으로 옮겨 가는 생활의 변화를 체감했다.
부모 세대보다 조금 더 나은 삶을 기대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성장의 실체’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성장과 임금은 서로 다른 길을 걷는 듯하다. 성장에서 임금으로, 임금에서 소비로, 소비에서 다시 생활로 이어지던 연결 고리가 점차 느슨해졌다. 성장의 숫자와 삶의 체감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기 시작했다.
제조업 중심 성장의 성공이 역설적으로 새로운 한계에 놓였기 때문이다. 제조업은 높은 생산성과 수출 경쟁력을 바탕으로 성장했지만 동시에 노동 투입을 줄이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제조업 일자리 비중은 장기적으로 감소했지만 이를 흡수할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이 충분히 성장하지 못했다. 줄어든 일자리 상당수는 생산성이 낮은 서비스업과 자영업으로 이동했다.
결과적으로 대기업 제조업의 경쟁력과 취약한 내수가 공존하는 등 성장의 숫자와 삶의 체감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에 이르렀다고 평가할 수 있다. 더욱이 성장의 과실이 자산시장 안에서만 순환될 때, 그 바깥에 선 청년들이 체감하는 것은 희망보다 소외에 가깝다. 그 감정은 결국 정치적 외면으로 돌아온다.
결국 경제는 숫자가 아니라 귀착을 본질로 봐야 한다. 성장이 어디에 도달하는가, 누구의 삶으로 돌아가는가의 문제다. 이재명정부의 반도체 전략이 더 큰 성장의 환영을 좇는 일이 아닌 삶으로 증명되는 성장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규하 정책선임기자 jud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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