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이젠 잊기로 해요'
2026-08-10 06:00:00 2026-08-10 06:00:00
<이젠 잊기로 해요>. 이 곡의 뿌리는 197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년 문화의 상징이자 통기타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이장희가 남긴 수작. 잠들어 있던 노래를 자신만의 색깔로 다시 불러낸 것은 김완선이었다. 몽환적인 목소리를 통해 오래된 멜로디는 새로운 감성을 더했다.
 
1970년대 한국 대중문화는 통기타와 청바지, 생맥주로 대표되는 청년 문화와 유신정권의 통제에서 억압을 견디며 선율을 써야 했다. 1975년 긴급조치 9호 발효 이후 가요 규제는 이장희를 비롯한 당대 청년 문화의 아이콘들이 남긴 명곡들이 ‘퇴폐’와 ‘사회 불안 조성’이라는 모호한 잣대 아래 발이 묶였다. 시대의 숨결을 담아내던 음악들은 그렇게 국가권력으로부터 수몰되는 듯했다.
 
하지만 권력이 입을 막는다고 해서 가슴속 열정의 선율까지 지울 수는 없었다. 정권이 억지로 잊게 하려던 노래들이 훗날 화려하게 부활한 역사적 경험은 음악에 담긴 인적·문화적 교류와 유대감이 결코 외압이나 선언 한 줄로 잘라낼 수 없는 것임을 증명하고 있다.
 
음악은 본래 국경과 시대를 넘어 사람의 마음을 잇는 가장 유연하고도 끈질긴 매개다. 통제와 정화라는 이름의 칼날로 재단하려고 해도 일상 깊숙이 스며든 대중문화의 잔재는 사람들의 입가와 기억 속에 뿌리를 내린다. 과거 독재정권 안에서 대중의 정서를 규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오만함은 결국 세월이라는 시험대 위에서 대중음악의 생명력 앞에 무릎을 꿇었다.
 
반세기가 지난 오늘, 우리 음악이 마주한 억압과 장벽의 양상은 달라졌다. 국가 차원의 검열은 사라졌지만 세계 음악 시장의 중심부라 불리는 서구 기득권은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장벽을 치고 있다.
 
최근 그래미 어워즈가 ‘베스트 아시아 팝’ 부문을 신설하자, 방탄소년단(BTS)이 출품 거부(보이콧)를 선언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서구 백인 중심의 본상 영역에 K팝을 별도의 ‘아시아 범주’로 격리하려는 교묘한 구별 짓기. 그들은 “음악이 지역이나 언어로 구분되지 않길 바란다”며 타협이 아닌 우리들의 무대를 새로 만들고 있다.
 
과거 권력이 대중의 입을 막으려 할 때마다 음악은 민간의 가슴속에서 생명력을 이어갔듯, 오늘날 K팝 아티스트들 역시 서구 기득권이 정해놓은 틀에 연연하지 않고 세계 팬들과 직접 호흡하며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넘어설 수 없는 장벽이라면 아예 넘지 않고 우리만의 방식대로 나아가는 것’. 억압의 시대를 견뎌낸 우리 음악의 유전자는 이제 세계 무대에서도 그 주체성을 발휘하고 있다.
 
<이젠 잊기로 해요>는 이별의 복잡한 내면이 응축돼 있다. 잊겠다는 다짐은 아직 잊지 못했다는 가장 슬픈 고백이기도 하다. 그미 빌보드 뮤직 어워즈나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와 달리 상업적 성공보다 음악적 완결성, 기술적 성취, 예술성에 무게를 둔 가치는 글로벌 무대에서의 위상과 영향력을 말해줬다. 그러나 1950년대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프로젝트를 통해 탄생한 권위 있는 시상식의 가치가 퇴색됐으니 그 빛을 잃고 있다.
 
이규하 정책선임기자 jud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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