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말 유럽을 뒤흔든 프랑스 혁명의 발단은 '빵'이었습니다.
"우리에게 빵을 달라"면서 베르사유 궁전으로 몰려드는 군중을 향해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던진 말은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되지 않느냐"였습니다. 호화로운 궁전에서 진귀한 음식만 접하며 지낸 왕비는 시민들이 왜 고작 빵을 달라고 시위를 벌이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빵의 의미를 모르는 왕이 다스리는 나라에서는 어떠한 희망도 찾을 수 없다는 절망감은 삽시간에 혁명의 불꽃으로 번졌습니다. 빵은 민중에게 그 어떤 법과 명령보다 더 큰, 절박한 생존의 조건이었던 겁니다.
20세기 초 우리나라에서 공산주의가 빠르게 확산된 것은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자'라는 평등 이상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평생 뼈 빠지게 일하고도 빈곤에 허덕였던 백성들에게는 공산주의나 자본주의의 이념적 구분은 사치에 가까웠을 겁니다. 그저 소원이라면 고깃국에 이밥 말아 배불리 먹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공산주의는 밭을 경작하는 사람이 수확물을 온전히 다 가질 수 있다는 식으로 체제를 선전했습니다. 양반과 일본 지주에게 수탈당하며 밥을 굶어야 했던 조선의 백성들에게 평등한 세상이라는 명분보다 고깃국과 이밥이라는 생존의 열망은 더 강렬했을 겁니다. 그들은 환상을 좇아 공산주의를 추종했고 북으로 갔습니다.
이젠 뜸한 줄 알았는데, 요즘에도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목숨을 끊는, 가족끼리 칼부림을 하는 흉한 소식들이 뉴스에서 들립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다정히 아들딸의 손을 잡으며 과자를 쥐어주던 아버지, 함께 웃으며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던 어머니가 비정한 부모로 변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급여 소득은 원하는 대로 오르지 않는데 물가는 치솟고 빚은 늘어가니 자식들을 배불리 먹이며 키울 자신이 없다는 절망 탓입니다. 흔히 인륜은 천륜(天倫)이라지만 자식과 함께 생을 달리할 수밖에 없는 부모들에게 천륜이란 허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프랑스 혁명과 20세기 초 우리나라에 공산주의가 들어온 배경, 그리고 최근의 비극적 소식들을 보자면, 밥은 단지 한 끼를 때우는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민중에게 밥은 삶의 이유였습니다. 밥을 위해 지엄한 권력에 대항해 혁명을 일으켰고, 동족상잔의 긴 전쟁을 치렀습니다. 말하자면 밥은 민중이 행동하는 기준이자 그들을 움직이는 실질적인 법인 셈입니다. '밥이 곧 법'이라는 명제는 역사의 슬픈 현실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9회 지방선거가 넉 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이제 각 후보들이 출마를 선언하고 각종 선심성 공약과 복지정책을 내놓을 게 뻔합니다. 현 정부를 비판하는 후보도 있을 겁니다. 이들의 방점은 국민 모두가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데 찍혔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밥을 굶는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밥을 먹는 건 너무 흔한 일이라 아예 정책적 논의의 대상에서조차 빠진 것일까요. 민법은 사실관계의 시비를 가리고, 형법은 죄의 무게와 형벌의 정도를 정합니다. 그러나 민중에게는 밥이야말로 민법과 형법보다 더 중요한 살아있는 법입니다.
최병호 뉴스토마토 공동체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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