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가문의 역사와 일상을 지탱하는 가장 강력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축은 하녀 프랑수아즈(Françoise)다. 그녀는 콩브레의 레오니 고모 집에서부터 시작해 화자의 파리 아파트, 그리고 게르망트 가문의 그늘에 이르기까지 가문의 모든 사소한 비밀과 역학 관계를 지배하는 인물이다. 신분상의 주인은 레오니 고모나 화자의 부모이지만, 집안이라는 물리적 공간과 일상이라는 공정의 실질적 지배자는 프랑수아즈다.
그녀는 글을 읽고 쓰는 일에는 서툴고 대도시의 세련된 문법과 거리가 멀지만, 가문 내부의 갈등, 인물들의 심리적 균열, 그리고 가사 노동이라는 복잡한 프로세스를 완벽하게 통제한다. 프랑수아즈의 지혜는 수십 년 축적된 몸의 감각과 날카로운 관찰력에서 나오는 암묵지(Tacit Knowledge)다. 주인들은 종종 그녀를 무시하거나 통제하려 하지만, 결국 그녀가 구축해 놓은 비공식적 질서와 거버넌스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만 평온한 일상을 누릴 수 있다.
"프랑수아즈는 집안의 법률이자 행정관이었고, 외교관이자 헌법재판소였다. 어머니나 고모가 내리는 결정들은 프랑수아즈라는 보이지 않는 거름망을 거치지 않고서는 단 하나도 온전히 실행될 수 없었다. 그녀는 부엌이라는 자신만의 성채에서 냄비의 끓는 소리와 하인들의 속삭임을 통해 집안 전체의 기류를 완벽히 독점했다. 이사회 격인 주인의 방에서 내려진 엄격한 지시들은, 부엌 계단을 내려오는 순간 프랑수아즈의 묵인하에 교묘하게 수정되거나 혹은 완벽하게 대체되곤 했다. 그녀는 지배받는 자의 외피를 쓴 채, 가문이라는 조직을 실질적으로 통치하는 군주였다."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재구성)
현대 기업 경영의 관점에서 프랑수아즈의 이러한 존재감은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기업의 거버넌스를 논할 때 흔히 주주총회, 이사회, 사외이사, 그리고 감사위원회 같은 제도화하고 문서화한 공식 거버넌스만을 떠올린다. 그러나 실제로 기업의 공정이 작동하고 제품이 생산되며 고객과 접점이 형성되는 현장에는, 공식 조직도나 규정집에는 결코 나타나지 않는 실질적인 의사결정 체계, 즉 '비공식 거버넌스(Informal Governance)'가 존재한다.
21세기 비즈니스 역사에서 공식 거버넌스와 현장의 절연이 가져온 가장 비극적인 사례로 꼽히는 것이 미국 항공기 제조사 보잉이다. 지난 2019년 에티오피아의 항공기 추락 현장에서 보잉 관계자들이 사고기 잔해를 조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 비공식 거버넌스가 기업의 핵심 가치 창출 영역에서 노동의 주체성과 결합할 때, 이것을 더 줄여 '현장 거버넌스(Frontline Governance)'라 부를 수 있다. 행정학에서, 설계된 법률보다 시민과 접하는 최일선 실무자의 재량권이 실제 정책의 실체를 결정한다는 마이클 립스키의 '일선 관료제(Street-Level Bureaucracy)' 이론과 일맥상통한다. 또한 현대 경영학의 리스크 관리 표준격인 '3대 방어선 모델(Three Lines of Defense)'에서, 감사부서(제3선)나 위험을 감독하고 지원하는 전문 조직(제2선)보다 제품을 직접 만들고 고객을 만나는 최일선 사업부서(제1선, First Line of Defense) 내부의 상시적이고 주도적인 거버넌스가 리스크 감지의 핵심이라고 강조하는 흐름과도 정확히 궤를 같이한다.
이사회가 재무제표의 숫자와 세련된 보고서에 매몰되어 있을 때 생산 라인의 베테랑 작업자, 고객의 불만을 직접 받는 콜센터 직원, 물류창고의 반장은 이미 기업의 위기와 기회를 온몸으로 감지하고 있다. 현장의 진짜 목소리와 실무 전문가의 지혜를 경영 의사결정에 통합하지 못하는 기업은, 아무리 화려한 이사회 진용을 자랑하더라도 결국 현장으로부터 절연되어 파멸에 이르게 된다.
공식 구조의 한계와 비공식 조직의 탄생
경영학에서 공식 조직과 비공식 조직의 역학을 본격적으로 체계화한 인물은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엘튼 메이요 교수와 그와 그의 동료들의 호손 공장 실험(Hawthorne Studies, 1924~1932), 그리고 인간관계론을 정립한 체스터 바너드다. 호손 실험은 작업장의 생산성이 공식적인 규칙이나 물리적 조건만으로 설명되지 않으며, 작업자 사이의 비공식적 집단 규범과 인간관계가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특히 연구진은 노동자가 스스로 형성한 비공식 조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바너드는 그의 저서 『경영자의 역할(The Functions of the Executive, 1938)』에서 "공식 조직이 활력을 얻고 유지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비공식 조직이라는 하부 구조가 정렬되어야 한다"라고 설파했다.
현대 제조업과 스마트 팩토리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현장관리(Shop-floor Management)와 린 생산체계의 관점에서 다룬다. 단순히 상부의 작업 지시를 수동적으로 수행하는 것만으로는 공정상의 결함을 효과적으로 발견하거나 대응하기 어렵다. 현장의 숙련 작업자들이 이상 징후를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정해진 권한 범위 내에서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며, 필요시 신속하게 상위 조직으로 전달하고 소통할 수 있는 체계가 구축될 때 품질과 생산성, 그리고 조직의 핵심 역량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보잉의 비극
21세기 비즈니스 역사에서 공식 거버넌스와 현장의 절연이 가져온 가장 비극적인 사례는 단연 미국의 항공기 제조사 보잉이다. 원래 보잉은 '엔지니어의 천국'이라 불릴 만큼 기술적 완벽주의와 현장 중심의 문화가 지배하던 기업이었다. 현장의 숙련된 엔지니어와 정비사는 보잉의 자부심이었고, 이들의 목소리는 경영진에 가감 없이 전달되었다. 그러나 1997년 맥도넬 더글라스와 합병 이후, 보잉의 경영진은 월가 주주 자본주의와 비용 절감, 재무적 지표에 매몰되기 시작했다.
경영진은 본사를 생산 현장이 밀집한 시애틀에서 대대적으로 분리했다. 2001년에는 금융 중심지인 일리노이주 시카고로 본사를 옮겼고, 2022년에는 연방 정부 및 규제 당국과의 관계 조율을 목표로 버지니아주 알링턴으로 재차 본사를 이전했다. 현장과 물리적·심리적 거리를 완벽히 단절하겠다는 경영학적 선언과 다름없었다. 이사회는 금융 전문가와 정계 인사로 채워졌고, 이들의 주된 관심사는 분기별 주가와 자사주 매입, 그리고 비용 감축을 통한 영업이익률 극대화였다.
이 과정에서 현장 거버넌스, 즉 현장에서 수십 년 비행기를 만든 숙련공들의 "이 설계는 위험하다", "공정에 심각한 결함이 발생하고 있다"와 같은 경고는 이사회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하고 묵살당했다. 비용절감과 일정단축을 독촉하는 경영진의 압박 속에서 현장의 경고는 '생산성을 저해하는 징징거림'으로 취급받았다.
결과는 알려진 대로 참혹했다. 2018년 인도네시아 라이온 에어 추락 사고와 2019년 에티오피아 항공 추락 사고로 이어진 737MAX 기종의 연쇄 참사는 MCAS 시스템 설계 오류와 현장 경고 묵살이 낳은 비극이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2024년 1월에는 알래스카 항공 737MAX9 기종이 비행 중 도어 플러그(문짝)가 통째로 탈락해 급격한 기압 저하를 일으키는 사상 초유의 제조 품질 참사까지 이어졌다. 서류상의 컴플라이언스와 ESG 보고서는 완벽했을지 몰라도, 프랑수아즈처럼 현장을 꿰뚫고 있던 엔지니어들의 지혜를 거세해 버린 보잉의 공식 거버넌스는 기업의 존립 자체를 뒤흔드는 신뢰의 파산을 맞이했다.
일본의 토요타는 현장 노동의 가치와 비공식·현장 거버넌스의 지혜를 공식 거버넌스의 핵심 영역으로 끌어올려 성공한 대표적인 모델이다. 지난해 일본 도쿄빅사이트에서 열린 도쿄 모빌리티 쇼 프레스데이에서 취재진이 도요타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토요타의 '안돈'과 현지현물(現地現物)
일본의 토요타는 현장 노동의 가치와 비공식·현장 거버넌스의 지혜를 공식 거버넌스의 핵심 영역으로 끌어올려 성공한 대표적인 모델이다. 토요타 생산방식(TPS)의 핵심 기둥 중 하나는 '현지현물(現地現物)'이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상 위에서 보고서만 읽는 것이 아니라, 직접 현장에 가서 실물을 보고 본질을 파악하라("Go and See")는 철학이다. 이것을 실천적으로 담보하는 장치이자 시스템이 바로 '안돈(Andon)'이다.
본래 일본어에서 안돈(あんどん)은 에도 시대부터 널리 쓰이던, 대나무나 나무로 짠 뼈대에 종이를 둘러싸고 그 안에 등불을 켠 전통 휴대용 등불을 뜻한다. 등불이, 사방이 가로막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서 있는 지점과 그 주변의 위험 요소를 환하게 밝혀 안전한 길을 비추듯, 공정 관리에서도 이상 징후나 숨어 있는 문제를 시각적으로 가시화해 준다는 비유에서 유래했다. 토요타는 이러한 안돈의 시각적 가시성 철학을 현대적 공정 감시 체계로 승화하였다.
토요타 공장의 생산 라인에는 누구나 잡아당길 수 있는 밧줄(혹은 버튼)인 '안돈 코드(Andon Cord)'가 있다. 조립 라인의 최말단 노동자라 할지라도 공정상에 아주 미세한 결함이나 이상을 발견하면 즉시 이 줄을 당길 수 있다. 이 줄을 당기면 머리 위의 '안돈 보드'에 붉은색 등으로 가시적인 비상 알림이 켜지며, 팀장이나 지원 인력이 즉시 현장으로 달려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생산 라인을 정지할 수 있다.
일반적인 주주 자본주의 관점에서 생산 라인을 멈추는 것은 단위 시간당 막대한 손실을 초래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토요타는 현장 노동자의 손끝에 깃든 직관과 책임감을 믿었다. 라인을 일시적으로 멈추는 한이 있더라도 그 자리에서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는 것이, 나중에 결함이 있는 완성차를 리콜하는 것보다 훨씬 비용이 적게 든다는 공정 관리의 진리를 제도화한 것이다. 따라서 토요타에서 현장 노동자는 부품이 아니라, 공정 거버넌스의 주체이자 의사결정권자이다. 공식 거버넌스가 현장의 비공식 거버넌스를 완벽히 포용하고 존중할 때, 기업의 품질과 지속가능성이 어떻게 확보되는지를 보여주는 모범적인 정렬사례로 꼽힌다.
비공식 거버넌스의 포용
현대 기업이 보잉과 같은 파국을 피하고 소설 속 프랑수아즈가 지닌 현장의 통찰을 경영 의사결정에 반영하기 위해서는, 비공식 거버넌스를 공식 시스템 안으로 체계적으로 연착륙하는 정교한 상호작용 기제가 필수적이다. 가장 우선적으로 실행해야 할 처방은 '리버스 멘토링'과 현장 이사회의 활성화를 들 수 있다. 인지적 다양성이 의사결정 집단의 집단 사고와 확증 편향을 무너뜨린다는 현대 인지과학 및 조직 전략 연구를 배경으로 한다. 이사회라는 단절되고 높은 단상에서 내려와, 정기적으로 소통 창구를 실제 현장에 마련해야 한다. 젊은 일선 실무자나 노련한 숙련공이 최고경영진과 직접 대면하여 브리핑을 수행하도록 돕는 리버스 멘토링은, 하부와 격리된 상부 조직의 경직과 맹점을 무너뜨리고 현장 실무의 통찰을 즉각적인 변화의 흐름으로 반영하게 만드는 실증적인 지형 교정 장치로 작동한다.
수직적 관료주의 폐해를 없애려면 현장의 제보자 보호를 뛰어넘는 명실상부한 현장 소리 존중 기제가 정립되어야 한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에이미 에드먼슨 교수가 증명한 '심리적 안정감(Psychological Safety)'의 조직적 효과에 이론적 뿌리를 둔다. 단순한 법적 비리 신고 차원을 넘어, 제품의 미세한 결함이나 품질 저하 우려, 그리고 일선의 비효율 같은 실질적 경고를 불이익이나 보복에 대한 두려움 없이 일선에서 최고경영자에게 올릴 수 있어야 한다. 부정적인 징후에 관한 일선의 목소리가 사내에서 묵살당하거나 조롱 받지 않고 오히려 품질 향상에 기여한 '건설적 목소리'로 보상받을 수 있는 인사 제도 개혁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살아 숨 쉬는 신호들이 위로 정렬될 수 있다.
숙련공의 현장 암묵지를 정교하게 가공하여 기업 전체의 공유 자산으로 구축하는 지식 순환 고리가 상시로 작동하게 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일본의 경영학자 노나카 이쿠지로 교수가 정립한 암묵지와 형식지의 상호 유기적 순환 모델인 'SECI 프레임워크(Socialization Externalization Combination Internalization)'와 비슷한 관점이다. 개별 인간의 몸에 고착되어 있는 비공식 지식을 표출하고 구조화하여 표준 형식지로 승화해야 한다. 이때 핵심은 박제된 매뉴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매뉴얼이 현장의 역동적인 피드백과 만나 끊임없이 개정되고 다시 구성원의 몸으로 체득되는 순환의 시스템을 가동하는 일이다.
보이지 않는 의사결정자
프루스트의 소설에서 미미한 신분이지만 중요한 인물인 프랑수아즈의 위대함은 주인의 권위를 대놓고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실질적 지배력을 통해 가문의 품격과 안정을 유지했다는 점에 있다. 주인들 역시 그녀의 역할을 인정했다. 현대 기업 역시 마찬가지다. 이사회의 권위를 내세워 현장을 통제하려고만 드는 관료주의 거버넌스는 보잉에서 여실히 드러났듯, 필연적으로 현장의 태업과 냉소, 그리고 품질 붕괴라는 부메랑을 맞이하게 된다.
경영학이 발전하고 기업이 대형화할수록 이사회의 언어는 점점 더 화려해진다. 온갖 알파벳 약어로 점철된 지표, 고도화한 리스크 관리 프레임워크, 그리고 화려한 사외이사들의 이력은 그 자체로 완벽한 지배구조의 성채를 이룬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성채는 현장의 콘크리트 바닥에 균열이 가기 시작하면 모래성처럼 허무하게 무너져 내린다. 거버넌스를 통제(Control)와 감시(Monitoring)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면 실패한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어떻게 감시할 것인가, 주주가 경영진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프루스트가 묘사한 프랑수아즈의 지혜는 거버넌스의 본질이 역방향의 경청과 비공식 권한의 실질적 인정에 있음을 시사한다.
[안치용의 Critique: 서류 위의 신기루와 작업복 입은 현자들]
작업복을 입은 현장 노동자의 암묵지는 서류상에 표현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종종 비용이나 단순 노무로 저평가된다. 그러나 기업이 위기에 직면했을 때 그 위기를 가장 먼저 감지하고 마지막까지 버텨내며 시스템을 복구하는 힘은 이사회에 모인 넥타이 멘 신사들이 아니라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입은 현자들의 손끝에서 나온다.
현대의 지배구조 개혁은 사외이사의 비율을 높이거나 주주행동주의의 요구에 영혼 없이 응하는 서류 작업에 그쳐서는 안 된다. 부엌의 냄비 끓는 소리에서 가문의 흥망을 읽어내던 프랑수아즈처럼, 공장의 기계 진동음과 고객의 거친 숨소리에서 기업의 미래를 읽어내는 현장의 비공식 거버넌스에 공식적인 경의를 표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의사결정의 심장부로 수혈하는 것, 그것이 바로 잃어버린 현장의 가치를 되찾는 진짜 거버넌스의 시작이다.
안치용 ESG비즈니스리뷰 발행인 겸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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