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생산적·포용금융 압박에 은행 자본규제 강화는 뒷전
2026-07-03 14:21:32 2026-07-03 14:48:28
[뉴스토마토 이종용 기자] 금융위원회가 생산적금융과 포용금융 확대를 전방위적으로 압박하는 가운데 은행권 건전성 규제 강화는 뒷전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고환율과 경기 둔화에 대비하기 위해 추진했던 스트레스완충자본 제도는 2년째 도입이 미뤄지고 있고, 금융안정계정도입 역시 기약이 없습니다. 금융당국이 유동성 확대에 정책 무게를 두면서 자본규제 강화는 당분간 속도를 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스트레스완충자본 도입 2년째 지연
 
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이 스트레스완충자본 제도, 금융안정계정 등 금융시스템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마련이 후순위에서 밀리고 있다는 지적인 나옵니다.
 
스트레스완충자본은 경기 호황기나 금융시장이 안정적일 때 은행이 추가 자본을 적립하도록 하고, 위기 발생 시 적립해둔 자본을 활용해 대출 공급을 유지하도록 하는 경기대응성 자본규제입니다. 현재 운영 중인 경기대응완충자본과 달리 환율 급등이나 특정 위험요인 확대 등 금융시스템 리스크를 보다 탄력적으로 반영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 특징입니다.
 
은행권 입장에서는 사실상 자본 부담이 늘어나는 규제입니다. 위험가중자산(RWA)이 증가하는 만큼 보통주자본(CET1)을 추가로 적립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본을 더 쌓아야 하는 만큼 같은 자본으로 취급할 수 있는 대출 규모는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금융당국은 지난 2024년 은행업감독규정 개정안을 변경 예고했지만, 아직 감독규정에 최종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당초 금융당국은 제도 발표 이후 연말께 스트레스완충자본을 도입할 계획이었으나, 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을 거치며 환율이 1450원을 돌파하는 등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지자 도입을 미뤘습니다.
 
지난해에도 도입 시기를 재검토하기로 했지만, 환율이 1400원 후반에 고착화하면서 논의는 진전을 보지 못했습니다. 정부의 생산적금융 확대 기조에 맞춰 은행들이 대출과 투자 확대를 약속하면서 자본 활용 수요도 커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스트레스완충자본까지 도입할 경우 은행의 공급 여력이 제약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컸습니다. 도입 여건은 올해 더 악화했습니다. 최초 도입이 미뤄졌던 배경인 1450원보다 환율 고점이 100원 이상 높아졌습니다.
 
특히 정책 측면에서도 은행의 자본 수요는 한층 커진 상태입니다. 지난해 발표한 생산적금융 관련 자금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집행되는 가운데, 포용금융 확대를 위해 위험가중치가 높은 중·저신용자와 취약차주에 대한 자금 공급도 늘리고 있습니다. 시장금리 상승에 따른 가계·기업의 건전성 저하 가능성도 CET1비율 관리에 부담을 줍니다.
 
금융위도 건전성 강화를 위한 제도 도입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지만, 생산적·포용금융 확대 기조와 은행의 자본 여력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만큼 구체적인 시행 로드맵을 꺼내기 어려분 분위기입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융위를 중심으로 매년 도입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지만, 시기마다 자본 관리와 관련한 변수가 생기고 있다"며 "당초 도입이 유예됐을 때보다 현재 환율 관리 압박이 더 큰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생산적·포용금융 확대로 위험가중치가 높은 자산을 늘려야 하는 상황에서 정부 기조를 고려해 논의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이라고 말했습니다.
 
최근 금융당국은 은행권에 생산적금융 확대를 지속적으로 주문하고 있습니다. 부동산 중심의 자금 공급을 줄이는 대신 첨단산업과 벤처기업, 수출기업 등에 대한 자금 지원을 확대하는 게 핵심입니다. 포용금융 측면에서도 서민금융과 채무조정, 취약차주 지원 확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원·달러 환율이 1600원에 육박하며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28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는 등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은 서울 명동의 한 환전소 모습. (사진=뉴시스)
 
금융안정계정 도입도 표류
 
이 같은 정책 기조는 은행의 자산 포트폴리오를 보다 위험도가 높은 영역으로 이동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결국 위험가중자산 증가는 불가피한 만큼 자본규제를 추가로 강화하는 방안은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릴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입니다.
 
금융안정계정 도입도 수년째 진전이 없는 상태입니다. 금융안정계정은 정상적으로 영업 중인 금융회사가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나 자본 부족에 직면했을 경우 채무보증이나 자본 확충 등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금융사가 실제 부실화하기 전에 선제적으로 지원해 금융시스템 전반으로 위기가 확산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입니다.
 
현재 예금보험기금은 원칙적으로 부실이 현실화한 금융회사에 대해서만 자금을 투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금융안정계정이 도입되면 아직 정상 영업 중인 금융회사도 지원 대상에 포함됩니다. 글로벌 금융위기나 코로나19와 같은 대규모 금융시장 충격이 발생했을 때 보다 신속한 대응이 가능해집니다. 
 
금융위는 올해 주요 입법 과제로 금융안정계정 도입을 추진하고 있지만 관련 법안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입니다. 재원 마련 방식과 공적자금 투입 가능성 등을 둘러싼 논란으로 법안 처리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금융권에서는 금융안정계정과 스트레스완충자본 모두 금융시스템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핵심 장치지만 현재 정책 환경에서는 우선순위가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고환율이 고착화된 상태에서 현재 상시적 위기 대응 수단이 없는 상태"라며 "유동성 위기가 닥친 후에 대응 수단을 만들려고 하면 많은 시간과 비용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 지수가 표시돼 있다. (사진=뉴시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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